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37화 (137/149)

< 클래스가 다르다 2 (1) >

*

결국, 클래스가 다른 도시락은 한 전자회사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껄껄, 이 친구 봐라······.”

송 사장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웠다.

송 사장이 핸드폰을 확인한 시간은 공교롭게도 부사장과 간단한 회담을 나누던 때였다.

“자네 딸이 이번에도 큰 건 했구먼?”

송 사장이 맞은 편에 앉은 부사장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

부사장인 조재현은 송 사장의 말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 딸이? 이번에도?’

조재현의 낯빛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몹시 거슬리는 말이다.

몇 달 전, 자신의 딸이 회사로 놀러 왔다.

딸바보인 그는 새로 출시될 신상 스마트폰의 프로토타입을 딸에게 보여줬고, SNS에 중독된 딸내미는 아빠 몰래 시제품을 낱낱이 촬영해 세상에 공개했다.

일반 사원이었다면 바로 해고될 법한 중대한 사안이었다.

아니, 어디 잘리기만 할까? 손해배상 소송을 얻어맞으면 몇십 몇백 억을 물어줘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부사장이라는 위치 덕에 감봉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아니, 다행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송 사장 라인을 잘 타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거늘···

이제 더 이상의 욕심은 물 건너가게 됐다.

계열사 사장의 욕심 말이다.

‘송 사장이 회장으로 올라가면 계열사 하나는 따 놓은 당상이었는데······.’

하, 그나저나 이것이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하지만, 그런 조재현의 걱정과는 다르게 송 사장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네 딸이 이번에 올린 사진들 봤나?”

“아직 못 봤습니다. 또 무슨 사고라도···”

“저번처럼 사고는 아니고··· SNS중독이 이런 것에도 빛을 발휘하는구먼?”

송 사장은 자신의 휴대폰을 조재현에게 건넸다.

조재현은 고개를 숙여 디스플레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엄청난 도시락 사진이 예쁘게 촬영된 사진들이다.

“이건··· 그냥 도시락 사진 아닙니까? 허, 근데 정말 난생 처음 보는 도시락입니다.”

“그냥 도시락은 아니고,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만든 도시락일세.”

“예? 지인이십니까? 어디 호텔···”

“단순 지인 이상이지. 내 생명의 은인이라 보면 되네. 그리고 호텔 출신은 아니고, 그냥 조그마한 구멍가게 하는 친구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걸 왜 큰일이라고···”

“허허, 자네는 계열사 맡기 아직 글렀구먼. 그림이 쫙! 그려지지 않나?”

“예···?”

꼴랑 도시락 하나 보고 그림이라니······.

“지금 이 사진들이 인터넷에 쫙! 퍼지고 있어. 이렇게 나도 확인하지 않았나. 물론, 나는 자네 딸이 저번에 사고 친 것 덕분에 금방 알았지만.”

“죄송합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그때 사건 덕인지 사진이 무척 빨리 퍼졌어. 그 사건으로 자네 딸 팔로워가 많이 늘어서겠지. 우리도 빨리 행동해야겠네.”

“무슨 행동을···”

“딱 보면 떠오르지 않나. 도시락하면 요새 편의점 도시락이 대세지.”

“아, 그럼 이 도시락을 만든 사람을 모델로 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송 사장은 현재 전자회사 하나만을 맡고 있지만, 차기 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이미 확정된 상태다.

그룹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입장에서, 편의점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관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미 계열사 전체는 송 사장을 실질적인 오너로 인정하는 상태.

“이 친구가 우리 냉장고 모델도 했으니, 시너지 효과까지 노릴 수 있지 않겠나?”

“아! 생명의 은인이라는 게··· 그 안 셰프 말씀이셨습니까?”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전자에 몸담고 있는 제가 어찌 저울질할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자네는 이미 전자에선 눈 밖에 나지 않았나. 자리만 보전하는 게 전부지. 밖으로도 눈을 돌려보게나.”

“음··· 정확한 건 리테일 측에 얘기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론이 뜨겁다면 당연히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렇지! 황 회장 그 능구렁이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이 사장 그놈이 채 가기 전에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하네.”

“그 양반들이 탐낼 정도입니까···?”

조재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재벌들이 한낱 요리사를? 굳이?

왜?

“탐낸다기 보다, 사업적으로 봐도 나쁘지는 않잖나. 게다가 그 친구가 저 양반들과 사이가 좋기도 하고. 그러니 뺏길 바에 우리가 낚아채는 게 낫지. 다행히, 자네 딸 계정을 주시하고 있던 터라 우리가 아직 한발 빠르네.”

“허허, 이것 참··· 현아 그 녀석이······. 일단, 리테일 측에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자네 딸한테는 안 셰프 동생이랑 계속 단짝으로 지내라고 하고. 그 친구와 사이가 돈독해지면 혹시 아나? 자네에게 계열사 한자리 주어질지? 난 아직 그 친구한테 기대하는 게 많아. 다시 되찾은 생명이 언제 또다시 죽을지 모르니······.”

꿀꺽-

조재현이 군침을 삼켰다.

이미 이곳 전자에서의 야심은 물 건너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때문이다.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대형 사고를 터트려버렸다.

하지만, 그런 딸 덕에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그 요리사가 대체 뭐라고······. 딸한테는 단단히 일러둬야겠네. 단짝 친구랑 계속 단짝으로 지내라고.’

부사장 조재현은 조현아의 아버지였다.

‘단짝’이라는 말 자체가 조현아의 허언증이라는 사실은, 아직 그도 모르는 일이었다.

*

송 사장의 생각은 마냥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편의점을 맡고 있는 리테일 계열사에서 조금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리테일 사의 박 상무는 지금 송 사장의 집무실에 와 있는 상태였다.

“내부 회의 결과 모델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송 사장과 마주한 박 상무가 중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뜻밖의 얘기에, 송 사장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이유는?”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옆 동네만 봐도 최고의 스타셰프라는 케빈 오 셰프, 요식업계의 1인자인 백주부, 푸근한 엄마 이미지의 여배우, 인기 절정의 여자 아이돌을 모델로 쓰고 있습니다.”

“그들과는 싸움이 안 된다?”

“셰프라는 호칭을 달고 출시할 거면, 그만한 커리어가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케빈 오 셰프의 도시락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데, 그가 심사위원으로 있던 경연대회 출신의 것이 팔리기나 하겠습니까?”

“흠··· 일리 있군.”

송 사장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왕호를 써먹고는 싶은데, 내부회의 결과가 부적격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오너라도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완전 무시하면서까지 무대뽀로 나갈 순 없다.

“냉장고 모델 때와는 상황이 좀 다르군.”

“그건··· 사장님께서 강력히 원하기도 했고, 그 제품 자체가 몬스터 요리 컨셉으로 나온 거라 들었습니다.”

“맞네. ···결국, 그놈의 커리어가 문제라 이거지?”

송 사장은 박 상무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 사장은 여기서 포기할 위인이 결코 아니다.

“셰프라 하기에는 아직 아마추어이지 않습니까. 차라리 요식업 사장 이미지에 더 가깝죠.”

“그럼, 그 케빈 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만 있다면 모델로 써도 된다 이 말이지?”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 정도 커리어를 쌓으려면 30년은 더 일해야···”

“생각보다 간단할 것 같아. 케빈 오 그 친구도 스타셰프지?”

“예. 인기만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당연히 요리 방송에도 나오겠네?

“요리 프로그램으로 최고 시청률이라는 ‘내 식탁을 부탁해’에 고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그 프로그램에 케빈 오와 동등한 위치로 안 셰프를 꽂아 넣으면 되겠구먼.”

송 사장의 집착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커리어가 후달리다면, 만들어주면 그만!

케빈 오와 나란한 자격의 “이미지”만 만들어 준다면, 자연스레 판매 경쟁력도 생기지 않겠나.

“그, 그렇게 되면 다시 한번 재고를 해봐야··· 한데,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내식부는 유명 셰프만 나가는 곳인데······.”

“대한민국에서 내가 못 할 것이 뭐가 있겠나. PJ 측에 부탁하면 금방 될 걸세. 안 셰프 그 친구를 설득하는 게 더 문제지······.”

박 상무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니, 당황을 넘어 황당무계했다.

도대체 저 요리사가 뭐길래 이렇게도 집착한다는 말인가.

방송국에 압력까지 넣어가며 키우겠다니······.

어쨌든, 그렇게만 된다면 도시락 모델로 경쟁력은 충분할 거다.

아니, 자격만 나란해지면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아진다.

과연 그렇게 될지가 의문이지만.

*

‘뭐지?’

갑작스레 송 사장이 연락을 걸어왔다.

왕호는 살짝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엉덩이 무거운 양반께서 직접 보자니··· 무슨 일이야?’

장사를 마무리한 왕호는, 늦은 저녁 한 고급 요정에서 송 사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하하, 안 셰프! 내 생명의 은인!”

덥석-

송 사장은 왕호를 보자마자 반갑게 일어서서는, 다짜고짜 손을 맞잡았다.

“저도 반갑습니다. 송 사장님. 그간 몸조리는 잘 하셨습니까?”

“자네 덕에 아주 쌩쌩하네! 급작스러웠을 텐데 와 줘서 고맙네. 일단 앉게나. 할 얘기가 많아.”

왕호는 송 사장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그리고, 송 사장이 얘기하는 내용을 가만히 앉아 경청했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러니까, 저를 편의점 도시락의 모델로 쓰고 싶다구요?”

“하하 그렇네. 자네가 어제 만든 동생의 도시락 아주 감명 깊게 봤네. 클래스가 다르다고 칭찬이 자자하더구먼.”

“그래도 그것만으로 저를 그렇게 중요한 모델로 쓰겠다니···”

“대우는 케빈 오 도시락이 받는 정도로 대해주겠네. 업계 최고지.”

파격적이다.

솔직히 매우 솔깃한 제안이다.

자신의 얼굴을 걸고 판매하는 만큼, 극도의 부담감만 덜어낼 수 있다면 말이다.

“흠··· 제 얼굴을 걸고 판매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레시피는 제가 정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일세! 아이돌 모델이 아니라 ‘셰프’로서 계약하자는 걸세. 당연히 매출에 비례하는 로열티도 제공될 거네. 레시피는 우리 연구진들과 상의해서 해야겠지만, 전권은 일임하겠네.”

“공장도 다 둘러볼 수 있을까요? 제가 청결에 민감한 터라···”

“당연한 권리지! 자네의 이름을 걸고 내는 제품인데, 하자가 있으면 되겠나.”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네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제안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거 한 가지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식품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면 제 아이덴티티인 버프는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상관없네. 애초에 그걸 제외하고 계산기 두드려본 것이니까.”

얼굴을 걸고 판매한다는 부담감.

그건 이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이름을 건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런칭 준비 중이다.

어차피 이름 팔릴 건데, 좀 더 팔리면 뭐 어떻나.

만약, 김 비서의 빅픽쳐 프로젝트를 수락하기 전이었다면 엄청나게 고심했을 거다.

아마 고사했을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왕호는 송 사장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분위기가 밝게 흘러가자, 송 사장은 완전히 쐐기를 박기 위해 한 가지 조건을 더 제시했다.

“만약 자네가 우리 모델을 하겠다면, ‘내 식탁을 부탁해’에 자네를 바로 꽂아주겠네. 그럼, 케빈 오 셰프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겠지.”

상당히 고마운 제안이다.

하지만···

“사실 이미 내식부에는 나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응?”

왕호의 뜻밖의 고백에, 송 사장은 어리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어리둥절함도 잠시··· 이윽고,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내 안 셰프 자네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먼! 그럼 그렇지! 방송국에서도 자네를 놓칠 리가 없지! 그나저나 대단하구먼, 벌써 스타셰프들이나 나가는 방송에 나가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원래는 벌써 나갔어야 했는데, 절 캐스팅하는데 조금 꺼리는 게 있나 봅니다.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고정출연은 아마 힘들 거라고 연락 받았구요. 나가도 특별 게스트로 나가겠죠.”

“하하, 방송국놈들이 원래 좀 그렇지. 허구한 날 약속 바꾸는 놈들 아닌가. 고정출연까지는 내가 힘 써줄 수 있네. 아직 연락 온 곳은 없지?”

“도시락 모델 말입니까?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도시락을 어제 만들었는데······. 솔직히 제가 더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이걸 다 결정하셨습니까.”

“하하하, 나도 운이 좋았지. 과거의 실수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 누가 알았겠나. 어쨌든, 할 생각 있다면 꼭 우리와 하게나.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하지 않았나.”

“최고 조건이라는데 당연히 먼저 연락하신 송 사장님과 해야죠.”

그래야 추후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양쪽의 기분을 다 맞춰줄 수 있다.

이미 계약했다고 하면, 나중에 제안한 곳에서도 서운해하지 않을 거다.

상도덕에도 맞고 말이다.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왕호는 상도덕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왕호는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남자.

서울 빌딩 숲에 치여 멍드는 사이에도, 결코 질서를 놓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에 이은 편의점 도시락이라······.’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개된다면 아마 요식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거다.

‘아직 내 수준으로는 과분한 것들이야······.’

돈이야 앉은 상태에서 건물주마냥 왕창 벌어들이겠지만, 문제는 커리어다.

김 비서의 말대로 커리어를 늘리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마 방송이 되겠지.

< 클래스가 다르다 2 (1)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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