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38화 (138/149)

< 클래스가 다르다 2 (2) >

서 PD는 문 PD와 마찬가지로 PJ 방송국 소속이다.

문 PD가 인기 요리경연프로그램인 ‘에셰코’를 연출 중이라면, 서 PD는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단연코 시청률 1등인 ‘내 식탁을 부탁해’를 연출 중이다.

직급으로 따지면 문 PD가 한 단계 더 높다.

게다가 학교 직속 선배이기도 해서, 서 PD는 문 PD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거절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서 PD는 오랜만에 문 PD의 부탁을 받고, 안왕호 셰프를 내식부의 새로운 멤버로 꽂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한 가지 생겼다.

안왕호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꽂아 넣은 젊은 요리사가 사고를 쳤다.

‘하~ 제기랄··· 왠지 먹고 탈 날 것 같더라니······.’

부탁을 한 이가 거물이기도 했고, 대가도 섭섭지 않게 챙겨둔 터라 낙하산 캐스팅을 시도했다.

과감할 정도의 낙하산이었다.

과감했지만, 용돈은 두둑이 챙겼다.

모험을 시도하기엔 충분했다.

젊었지만, 같은 연령대 요리사인 안왕호도 저렇게나 요리를 맛깔나게 하지 않았던가.

이놈도 필시 중간은 할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반반한 외모와 어마어마한 뒷배경으로 인지도를 쌓은 녀석이었다.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다.

“이 미친놈이 통조림 고등어로 햄버거를 만들 줄 내가 알았나?”

서 PD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문 PD가 뜨거운 커피를 살살 불어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내려놓은 문 PD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러게 인마, 검증이라도 해보고 집어넣었어야지. 무턱대고 꽂아 버리면 탈 난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셰프라고 광고하고 다니는데, 기본은 할 줄 알았지 기본은! 세상에··· 그 유명한 셰프들 앞에서 비린내 심하게 나는 음식을······.”

“크크크, 편집 최대한 한다고 했지? 구역질하는 거 다 찍혔더라.”

“하, 지금 웃음이 나와요? 이것 때문에 선배 부탁도 못 들어 주겠고만······. 부탁만 못 들어주면 낫지··· 나 때문에 선배 파일럿도 엎어지고······.”

“괜찮다 인마, 인생수업했다고 생각해. 앞으로 누가 용돈 준대도 덥석덥석 받지 말고.”

서 PD가 꽂아 넣은 젊은 요리사는, 기본이 부족한 친구였다.

고등어의 비린내를 하나도 잡지 못해, 녹화장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었다.

출연자들의 헛구역질은 기본이고, 대부분이 먹다가 몰래 뱉기 일쑤였다.

리액션은 다시 녹화를 땄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편집을 해도 통으로 덜어낼 수 없어서, 몇몇 장면은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나.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 몇몇 장면을 귀신같이 캡쳐해서는, 온갖 곳에 퍼 날랐다.

당연히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수준 미달의 요리사를 검증도 없이 출연시킨 방송국은 비난을 직격으로 얻어맞아야 했다.

국장이 단단히 뿔났다.

-앞으로 누구 캐스팅하기 전에 무조건 나한테 보고부터 해!!!

그 여파로, 다음에 나올 젊은 요리사 왕호의 출연이 전부 펑크 났다.

에셰코를 우승하긴 했지만, 커리어가 아직 검증이 안 됐다는 이유였다.

내식부는 난다 긴다 하는 요리사들이 모인 챔피언스리그나 마찬가지다.

고작 2부리그 우승자를 1부리그도 거치지 않고, 챔피언스리그에 꽂아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대신, 특별 게스트로 한 번 써보고 여론이 좋으면 고정하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출연이 무기한으로 미뤄진 터라, 언제 출연시킬지는 그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것으로 마무리됐으면 선배한테 덜 미안하겠다.

설상가상으로 문 PD가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급식 대체 프로그램의 촬영도 무기한 연기됐다.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젊고 검증 덜 된 안왕호가 메인으로 출연한다는 이유였다.

서 PD가 짜증 섞인 투로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배 것까지 간섭하는 것은 아무리 국장이라도 너무 심한 거 아냐?”

“욕먹는 거 병적으로 싫어하잖냐. 리스크를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애려는 거겠지.”

“에셰코 우승인데 무슨 검증이 덜 됐대··· 쓰읍.”

“네가 꽂아 넣은 그놈도 어디 대회 우승했다며.”

“그건, 지 아빠가 주최한 대회니까 우승한 거지. 그래도 안 셰프는 실력 좋다며.”

“실력은 내식부 나오는 셰프들 뺨 때리지.”

“하, 그러니까 더 미안하네······.”

“괜찮아. 급할 거 없어. 내가 장담하는데 안 셰프 특별 게스트로 한 번 나오면 바로 고정하라고 난리 칠 걸? 그럼, 내 프로그램도 다시 허락 떨어지겠지.”

“으으, 최대한 빨리 넣어보는 걸로 힘 써볼게.”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서 PD의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여보세··· 예! 국장님!”

고작 전화 받는 건데, 서 PD는 병장 앞에 선 일병마냥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러나, 통화를 하면 할수록 표정이 다시 밝아진다.

“헛! 정말이십니까? ···예,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문 PD님이요? 아, 지금 옆에 있습니다. ···예. 제가 대신 전달하겠습니다. ···허,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런 실수 하지 않겠습니다! ···예! 예, 들어가십쇼!”

“뭐래?”

서 PD의 격한 반응에 문 PD는 곧바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안 셰프, 당장 출연시키라는데?”

“응? 국장님이? 그럴 양반이 아니신데······.”

“그러게? 안 셰프 무슨 빽 있어요? 이거, 딱 봐도 푸시 들어온 거 같은데.”

“빽? 음··· 박 배우 정도로는 꿈쩍 안 하겠지?”

“당연하지. 예전 플라톤 고 사장도 겨우겨우 움직인 사람이 우리 국장인데.”

“그럼 난 잘 모르겠다.”

“얼마나 대단한 빽인지, 내식부 고정으로 바로 박으라는 것도 모자라 선배 프로그램도 다시 촬영하라는데?”

“미친!”

벌떡-!

문 PD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몇 방울이 손등에 튀었지만 뜨거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또 놀라게 하네······.’

처음엔 박 배우가 데리고 와서 놀랐다.

고작 푸드트럭 하나 몰고 다니는 요리사가, 박하진과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참······.

그다음엔, 그의 요리실력에 놀랐다.

그저 긍정적인 이미지만 만들어주려고 출연시킨 건데, 실력이 기똥차서 심사위원들의 마음까지 다 사로잡았다.

마지막으로는 그의 행실에 놀랐다.

별다른 빽도 없이, 행실에 따른 여론만으로 플라톤이라는 거대 배경을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다.

더 이상 놀랄 것이 없을 줄 알았건만··· 이건 또 뭐람?

‘도대체 무슨 빽을 언제 어떻게 사로잡은 거야?’

의문이 떠올랐지만 깊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손등에 튄 아메리카노의 뜨거움이 뒤늦게 느껴졌으니까.

“앗뜨뜨!”

*

“이랬다저랬다 나만 피곤하네.”

왕호는 툴툴거리면서도, 아침 일찍 소속사 사무실로 향했다.

송 사장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곧바로 내식부를 촬영하자는 사인이 떨어졌다.

학연 지연 혈연.

‘연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네.’

부조리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 그 혜택을 받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사무실에 도착하자, 오늘 촬영이 없는 박하진을 만날 수 있었다.

“갑자기 시간 빼달라 해서 놀랐죠? 나도 진짜 놀랐네··· 방송국 애들 변덕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건 너무 심했지.”

“괜찮습니다. 어쨌든 좋은 일이잖아요. 저는 커리어 쌓고 대표님은 돈 벌고! 아, 물론 저도 돈 벌고!”

“하하, 왕호 씨가 돈 많이 벌어다 주면 좋죠. 이참에 돈 잔뜩 쌓아서 아이돌 그룹이나 한번 키워볼까요?”

“좋죠. 아이돌은 진리잖아요. 각성자 아이돌 그룹 하면 대박 날 거 같은데요?”

“오케이! 접수완료! 회의 한번 해볼게요. 그나저나, 제대로 된 방송 촬영은 오늘이 처음이네요. 그래서 일찍 오시라 한 겁니다.”

“에셰코 촬영이랑은 조금 다른가요?”

“그건, 아마추어 소시민 느낌으로 간 거잖아요. 메이크업도 따로 안 했고요. 지금은 진정한 프로의 이미지를 갖춰야 할 때죠! 메이크업도 말끔하게 하고 출발할 겁니다.”

말을 마친 박하진은 손가락을 딱! 튕겨 여직원 하나를 호출했다.

또각- 또각-

거의 10cm 넘을 듯한 킬힐을 신은 직원이 왕호를 향해 다가왔다.

화려한 네일아트와 각종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매단 것을 보니, 패션 종사자임에 틀림없었다.

박하진이 일면식 없는 둘을 서로 소개했다.

“자, 인사해요. 이쪽은 우리 코디 실장을 맡고 있는 양 실장. 이쪽은 아시다시피 우리 소속사의 보물 안왕호 셰프님!”

“어머, 반가워요. 실물로 보니까 좀 낫네요?”

“아, 예··· 반갑습니다.”

왕호는 양 실장과 간단히 악수를 나눴다.

박하진이 다시 왕호에게 말을 건넸다.

“아, 왕호 씨도 얘기 들었죠? 급식 바꿔주는 프로그램도 다시 촬영한다고.”

“예. 문 PD님한테 전화 받았습니다.”

“이제 방송 두 개나 촬영하는데, 조만간 코디랑 매니저, 그리고 차량 붙여주겠습니다. 오늘은 양 실장이 메이크업 맡아 줄 거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양 실장님.”

왕호는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호호, 저도 잘 부탁해요. 여름이가 그러는데 꾸미면 훤칠하다지요? 어디 그런가 한 번 확인해보죠.”

말을 마친 양 실장은 왕호의 몰골을 위아래로 쓰윽 훑었다.

“흠··· 옷이야 방송국에서 요리사복 맞춰준다고 했으니까, 메이크업이랑 헤어만 하면 되는데··· 머리 꼬라지가 좀······.”

“꼬, 꼬라지요? 그렇게 심합니까?”

“아, 말이 격해서 죄송해요. 그런 남자 헤어는 진짜 오랜만에 봐서요. 대장금인 줄 알았잖아.”

“대장금이라··· 자주 듣습니다.”

“확! 자르면 좋겠는데··· 어때요?”

“이게 위생 때문에··· 아, 지금은 물론 필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앱솔루트 클린 스킬. 즉, 자동 청결 스킬 덕에 이제는 머리를 길게 묶을 필요가 없지만 거의 10년을 유지해온 헤어스타일이다.

갑자기 자르기 위해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뭐, 좋아요. 도전정신 막 샘솟네요. ···따라와요 환골탈태하러 가게.”

양 실장은 몸을 휙 돌려, 메이크업실로 향했다.

또각- 또각-

카리스마 쩌네 이 언니······.

자신감이 온몸에서 뿜뿜 흘러나온다.

운동 열심히 한 몸매도 자랑하고 싶었는지, 착! 달라붙는 원피스로 몸을 치장해놨다.

왕호는 불안감 반 기대 반 심정으로, 양 실장의 뒤를 따라갔다.

.

.

.

“이제 좀 봐줄 만 하네.”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을 마친 양 실장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호는 눈앞에 있는 거울을 쳐다보며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수랏간 최고상궁은 어디로 가고, 웬 머리긴 배역을 맡은 배우 하나가 놓여 있다.

남자의 외모는 8할이 머리빨!

게다가 요즘은 남자도 메이크업 하는 시대!

멋들어진다!

멋이란 게 흐드러진다!

예전, 여름이가 헤어살롱에 데려갔을 때보다 한 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다.

그때는 헤어만 했지만, 지금은 메이크업까지 완료한 상태.

남자 메이크업답게 티 나지 않고 은은하게 피부 트러블을 말끔히 감춰냈다.

피부 톤도 한 층 되살아났다. 눈썹 라인도 깔끔하게 정리됐다.

헤어 스타일링 또한 그때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와··· 양 실장님 대박! 청담동 헤어살롱 원장님보다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왕호는 거울 속에 비친 양 실장을 향해, 쌍 따봉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엄지척을 받은 양 실장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쳤다.

“호호, 용케도 알아보네요? 사실, 청담에서 내가 꽤 유명했죠. 하진 씨와의 의리 때문에 이쪽으로 온 거예요.”

“의리가 으리으리하시네요.”

“의리 빼면 시체죠. 튀김도 김마으리!를 제일 좋아해요 호호.”

“언제 한번 떡볶이 국물이랑 같이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오~ 약속했어요? 머리 자르면 더 멋있을 텐데 쩝··· 그 마음의 준비 완료되면 바로 말해요. 확! 쳐버리게.”

“예. 양 실장님에게 꼭! 맡기겠습니다.”

“긴 머리지만 지저분하지 않게 귀 뒤로 넘기는 스타일링 한번 해 봤어요. 괜찮죠?”

“연예인 같습니다.”

“근데, 왕호 씨한테는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릴 거예요. 눈썹 라인이 좋거든요. 이탈리아 축구선수들 머리 알죠? 그거 하면 딱인데 정말······. 뭐, 오늘은 이걸로 만족!”

왕호는 양 실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소속사를 빠져나왔다.

곧 매니저와 차량을 붙여준댔지만, 지금은 혼자다.

에셰코 우승 상품으로 받은 다이나믹 해치백의 운전대를 잡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제세공과금을 낼 때는 피가 빨리는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공짜!

장사를 안 할 때는 트럭을 모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평소에는 박 여사님이 잘 타고 다닌다.

‘이제 돈 들어올 구멍도 많은데, 세컨 카나 하나 살까?’

프랜차이즈와 도시락이 런칭되면 꽤나 많이 들어올 거다.

어머니에게 주다시피한 애마를 뺏어 타기 보다는, 하나 사는 게 더 나을 거다.

행복한 상상을 하며 방송국에 도착한 왕호는, 서 PD와 간단히 면담하고는 곧바로 대기실로 향했다.

내 식탁을 부탁해의 출연 셰프는 왕호를 포함해 총 8명.

다들 요리계에서 한 가닥씩 하는 스타 셰프들.

커리어도 없고 낙하산이다 싶은 왕호를 곱게 보는 이는 많지 않을 거다.

대기실에서라도 싹싹하게 굴어 친해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똑똑똑-

가볍게 대기실의 문을 두드린 왕호는, 2초 정도 기다리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셰프님들! 후배 요리사 안왕호라고 합니다!”

각 잡아서 인사를 박은 왕호는, 고개를 들어 일곱 명의 셰프 군단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 클래스가 다르다 2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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