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39화 (139/149)

< 클래스가 다르다 2 (3) >

“왕호··· 허, 이제는 안 셰프라고 불러야겠어.”

“왕호야!”

케빈 오 셰프와 다니엘 킴 셰프가 왕호를 보고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두 분 다 에셰코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안 셰프가 온다는 얘기를 서 PD한테 어제 전해 들었어. 역시 안 셰프는 금방금방 성장해. 아주 빨라.”

“귀띔 좀 해주지 그랬냐. 나도 깜짝 놀랐잖어.”

두 사람은 왕호를 반기는 입장이었다.

케빈 오야 에셰코의 메인 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왕호의 실력와 인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사람이다.

왕호를 마음에 들어한 나머지,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영입까지 하려 했다.

그런 왕호가 벌써 여기에까지 출연한다니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다니엘 킴도 왕호가 여기 나오는 것이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왕호가 얼마나 급성장했던 간에,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무려 5년을 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제자나 마찬가지다.

물론 직접 가르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두 명의 출연자들은 왕호를 반겼지만, 나머지는 크게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호가 온다는 사실을 고작 하루 전에 통보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낙하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얼마 전에 왔던 또다른 낙하산이 거하게 똥을 싸고 퇴장한 상태다.

그 똥쟁이처럼 커리어도 변변찮은 놈이 갑자기 들어왔으니, 곱게 볼 수만은 없었다.

“안왕호라고 했나? 요새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유명하다며?”

“저번에 그 녀석도 얼굴 반반해서 젊은 애들 한테 인기 좋았잖아. 저 친구도 그런 부류 같은데······.”

“에셰코 우승했으니 그 친구보다는 낫겠죠. 심사위원이 무려 케빈 오 셰프님이신데.”

“그래봤자 일반인들 사이에서 우승한 거지. 게다가 요즘 SNS는 거르는 게 답이잖수. 거기서 인기 많아봤자, 아이돌밖에 더 돼?”

“전공이 양식이라고 들었는데, 요리스쿨은 어디 나왔나? 르꼬르동블루? ICIF?”

왕호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해야 했다.

“유학은 아직 가본적 없습니다. 한국에서 호텔조리과 나왔습니다.”

“흠··· 뭐, 출신이 중요하겠나? 실력만 있으면 장땡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시하는 투가 역력했다.

기분이 썩 달갑진 않았지만, 이정도 텃세야 충분히 예상하고 왔다.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케빈 오와 다니엘 킴이 반겨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실력을 최대한 보여주면 인정하겠지.’

프로의 세계는 결국 실력으로 증명하는 곳.

이곳에 있을 자격만 증명한다면 저들도 분명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셰프들에게 인사를 마친 왕호는 뒤이어 MC 대기실에도 찾아갔다.

똑똑똑-

“안녕하십니까. 안왕호입니다!”

MC들은 셰프들과는 다르게 텃세랄 것이 없었다.

“오! 안왕호 씨! 반가워요~”

“이야~ 유명인사가 우리 프로그램에 다 오고, 이따가 인스타 맞팔 꼭 해줘요!”

진행을 맡은 두 명의 MC와 반갑게 악수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잘 부탁해야죠. 멋진 그림 만들어 봅시다!”

“서 PD가 그렇게 잘 좀 봐달라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저번하고 다르게 이번에는 실력이 출중하다나 뭐라나?”

“저도 그 방송 보고 왔습니다. 누 안 끼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좀 짖궂게 할 건데, 잘 받아쳐줘요. 요리 프로그램이래도 어쨌든 예능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거니까.”

“아 맞다! 오늘 게스트 아직 못들었죠?”

“예.”

“최유나라고 탑 여배우 알아요?”

알다마다.

발음이 좀 뭉개지긴 하지만, 예쁘장한 얼굴과 8등신의 핫바디 몸매로 주류 광고계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배우가 아니던가.

드라마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다시피하는 왕호가 알 정도면 말 다 했다.

길 거리를 거닐다 보면 입간판으로 얼굴을 하도 많이 보는 터라, 마치 옆집 동생처럼 친근할 정도였다.

왕호도 예전에 포장마차 했을 때, 그 등신대 입간판을 지겹도록 봤다.

“요즘 대한민국에 최유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하, 그렇죠. 방송가 소문으로는 성격이 좀 유별나다니까 조금 조심하세요.”

“예? 유별나다면···”

“음··· 저희도 아직 만나본 적은 없어요. 전해들은 터라··· 그냥 비위만 잘 맞춰주면 될 것 같아요. 아직 어리잖아요. 어린데 벌써부터 배우니 스타니 하고 대접받았으니······.”

“알겠습니다. 첫방송이니만큼 피해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

MC들과도 인사를 나눈 왕호는,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녹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내 식탁을 부탁해의 포맷은 간단하다.

한 명의 게스트가 나오고, 방송국은 그 게스트의 부엌을 완전히 복제한 세트를 대령한다.

게스트의 집에 있는 식탁, 냉장고, 요리 재료, 인테리어, 조명 등등.

모든 것을 가져온다.

식탁의 분위기를 동일하게 재연하기 위해서다.

8명의 셰프군단은, 게스트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조리도구와 재료들만으로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그것도 단 20분 안에.

게스트의 재료로, 게스트의 식탁에서, 게스트가 직접 할 수 있는 그런 집밥을 먹여준다는 취지다.

녹화는 2주에 한 번 진행된다.

한번 촬영된 분량은 절반으로 나뉘어 2주에 걸쳐 방영된다.

한 회차당 총 4명의 셰프가 요리를 진행하며, 대진표를 짜서 일대일 대결을 하는 구도다.

즉, 한 회당 두 번의 요리 대결을 펼치는 셈.

승리자는 오로지 게스트가 선정하며, 이기게 되면 ‘내슐랭’ 스타 뱃지를 수여받는다.

이 뱃지를 1년간 가장 많이 모은 셰프에게는, 왕중왕 스타 셰프라는 칭호가 부여되는 그런 구조다.

왕호를 제외한 7명의 셰프들은 이미 업계에서 최정상에 위치하다시피하는 인물들.

저런 감투에 크게 연연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승부욕은 다들 지니고 있다.

현재 1위는 압도적 인기와 인지도, 그리고 실력을 지니고 있는 케빈 오 셰프.

포맷 자체가 경쟁이라고 해도 이 프로그램은 예능이다.

대결의 승리자도 게스트 혼자서 정하기 때문에, 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큰 타격은 없다.

게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이기는 것이고, 사람들의 취향은 각자 다르니 말이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셰프들은 전부 나가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이다.

출연하기만 하면 더더더 유명해질 뿐만 아니라, 식당 매출의 급격한 상승으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호감 이미지를 얻는다면 곧바로 CF로까지 노려보는 셈.

그런 프로그램에 왕호가 낙하산을 펼치고 떨어져내렸다.

이곳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

진정한 프로의 세계!

치열한 전장. 배틀그라운드!

에셰코처럼 어중이 떠중이들과 투닥거리는 곳이 아니다.

낙하산이라는 타이틀을 지워버리려면 자리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니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만큼, 엄청난 예능감을 뽐내거나.

솔직히 예능감은 자신 없으니, 실력밖에 답이 없다.

왕호는 정해진 셰프 지정석에 앉아, 큐 시트가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

“녹화 들어가겠습니다!”

탁-!

조연출의 큐 시트가 내려가고, 두 MC의 티키타카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새로운 셰프님이 나오신다면서요?”

“요새 아주 핫한 분입니다. SNS팔로워 숫자로는 여기 있는 모든 셰프님들을 다 이길 거 같네요.”

“그만큼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리죠?”

“그렇죠. 저도 참 좋아하는 셰프인데요. 아까 대기실에서 살짝 인사 나눴는데 역시 소문대로 이야~ 진국이더라구요.”

“식당도 잘 나가서 줄까지 서야 한다는데, 오늘 정말 기대됩니다.”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몬스터를 특별하게 요리하는 셰프. 에이스 셰프 코리아의 우승자 안왕호 셰프입니다!”

짝짝짝짝-

MC가 힘차게 외치자, 일곱의 셰프 전부가 활짝 웃으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왕호는 카메라와 일곱명의 셰프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역시 카메라 도니까 확 달라지네.’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던 하지 않던, 카메라가 도니 격하게 환영해주는 모습들이다.

이미지 관리 조차도 가히 프로급이라 말할 정도!

스타 셰프가 되기 위해선 당연히 갖추어야할 덕목 아니겠나.

“이렇게 위대한 셰프님들과 같이 요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맛있는 요리, 그리고 재밌는 방송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빈말은 아니다.

눈 앞의 셰프들은 요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보아온 유명한 셰프들.

언젠간 저들처럼 높이 올라가겠다 다짐하며, 숱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왔다.

그들과 나란히 선 지금. 감개무량하기도 했고, 무척이나 영광스럽기도 했다.

왕호의 FM스러운 인사가 끝나자, 두 MC가 이번엔 짖궂은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안왕호 셰프님은 다니엘 킴 셰프님 레스토랑에서 5년을 근무하셨다고 하네요.”

“오~ 그러면 거의 제자나 마찬가지겠네요?”

“다니엘 킴 셰프는 케빈 오 셰프님이 발굴해냈으니, 3대가 한 자리에 모인 거나 마찬가지죠.”

“앞으로 있을 사제더비가 정말 기대되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안왕호 셰프와 다니엘 킴 셰프의 대진을 정말 보고싶습니다.”

MC들은 다니엘 킴에게 왕호에 관해서 물어봤고, 왕호에게도 다니엘 킴이 어떤 사장이었는지 질문했다.

다니엘 킴은 왕호를 자신의 제자 중 단연코 으뜸이라 추켜세웠다.

실상은 둘이 마주친 적은 크게 없지만, 왕호도 좋게좋게 얘기해줬다.

온갖 거짓이 판치는 방송!

고마웠던 점은, 케빈 오가 왕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호의 소개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스트를 모시고 녹화를 뜰 차례다.

“그럼,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드라마, 영화 섭외 1순위의 여배우! 흥행보증수표! CF퀸! 신이내린 핫바디! 최유나 씨입니다!”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세트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며 최유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최유나는 몸매의 굴곡이 잘 드러나게 짝다리를 짚고, 한쪽 골반에 손을 걸친 특유의 포즈로 카메라를 맞이했다.

그 모습에, 셰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리에만 10억 짜리 보험이 들려 있는 명품 바디를 눈앞에서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왕호도 속으로 감탄해 마지 않았다.

아침에 본 양 실장님도 운동을 꾸준히 해서 한 몸매 했는데, 이건 클래스가 전혀 다른 라인이었다.

동양인의 한계를 넘어 버린 몸매!

마치,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로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감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바로 MC의 충고가 떠올랐다.

‘성격이 유별나댔지.’

최유나가 자리에 앉자, 그녀의 근황 토크가 시작됐다.

왕호는 간단히 리액션만 하며, 냉장고 속 재료가 공개되기만을 기다렸다.

저기 있는 재료만으로 요리를 해야 되니 말이다.

하지만 냉장고가 공개되기 전에, 잠깐의 쉬는시간이 주어졌다.

“15분 정도 쉬고 다시 녹화하겠습니다!”

서 PD가 외치자, 카메라의 빨간 불이 다 꺼졌다.

2주에 걸쳐 방영되는 만큼, 6시간을 넘게 녹화한다.

8명의 셰프들은 프로 방송인이 아니니만큼, 여러번의 휴식시간을 필요로했다.

‘미리 확인하면 반칙이려나?’

왕호는 입맛을 쩝 다시며, 대기실을 향해 걸어나갔다.

코너를 돌아 복도로 진입한 그 순간,

또각- 또각-

“안왕호 셰프님!”

약간은 앵앵거리는 하이톤의 음성이 등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최유나가 생긋생긋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 반갑습니다.”

왕호도 웃으며 최유나를 맞이했다.

복도에는 둘 밖에 없는 상황.

최유나가 다가오자, 장미향의 진한 향수가 절대후각을 지닌 왕호의 코를 강하게 찔러왔다.

“셰프님! 완전 팬이에요! 같이 셀카 찍어도 되죠?”

“그럼요! 제가 더 영광입니다.”

덥석-!

최유나가 왕호의 팔을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기며 한손으로는 핸드폰을 45도 각도로 치켜들었다.

물컹-

자연스레 왕호의 이두박근이 최유나의 가슴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여우짓의 정석!

최유나는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왕호의 표정을 슬쩍 훑었다.

‘응?’

최유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왕호의 반응은 그녀가 생각한 종류가 아니었다.

왕호는 의심가득한 눈으로 최유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 아뇨.”

왕호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최유나가 고개를 돌려, 핸드폰의 렌즈를 응시했다.

‘이 사람 고자야? 아님, 천석오빠처럼 남자 좋아하나?’

< 클래스가 다르다 2 (3)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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