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스가 다르다 2 (5) >
불과 저번 방송에서, 통조림 고등어 버거가 희대의 충격을 선사하지 않았던가!
역대급 괴식.
지옥에서 온 요리.
할로윈 그 자체.
비린내 가득한 시궁창 역병 요리.
별별 오명을 뒤집어쓰고 방송에서 하차까지 했다.
생선의 ‘ㅅ’자도 꺼리는 지금.
또다시 생선 버거를 만들겠다?
거의 인디아나 존스가 나타났다고 봐야 할 정도의 모험이다.
셰프들은 왕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왕호는 자신 있었다.
‘어차피 최유나 꼬락서니로 보면 승리는 물 건너갔어.’
그럴 바엔 차라리 여기 있는 셰프님들의 인정이라도 받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내 식탁을 부탁해. 오늘 하루하고 말 프로그램이 아니다.
커리어를 쌓으려면, 여기 있는 최고의 셰프들과 앞으로 좋은 대결을 펼쳐야 한다. 계속해서 무시당한 채로 있을 수는 없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프로의 세계니, 실력으로 인정 받으면 된다.
다른 요리 보다,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버린 ‘생선 버거’를 맛있게 요리한다면 존재감을 각인시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MC가 당황했다.
“하하··· 여, 연어 버거!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하네요. 이 요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연어는 오메가3, DHA, 비타민D 등의 몸에 좋은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습니다. 피부 노화 방지와 피로 회복에도 크게 도움이 되죠. 건강을 챙기기 쉽지 않은 배우님에게 이것보다 좋은 재료가 있을까요? 특히, 알래스카 쿠퍼 강에서 거슬러 올라오
는 연어는 몸에 좋은 지방으로 꽉꽉 차 있습니다. 싱싱하니 비린내 걱정도 없죠. 실제로 알래스카와 인접한 시애틀에서는 신선한 연어를 사용한 버거가 명물입니다.”
왕호의 논리 정연한 설명에, MC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의심쩍은 내용이라도, 그 앞에 몇몇 단어만 더 적으면 사람들의 신뢰를 강하게 끌어낼 수 있다.
-뇌 과학 연구에 따르면···
-미 항공우주국이 조사한···
-공자는 말했다···
이런 내용만 살짝 덧붙이면 된다.
왕호는 연어에 함유된 각종 몸에 좋은 성분을 얘기했고,
알래스카산 연어의 특별함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건강식의 도시라는 시애틀의 명물 요리라고까지 언급했다.
단순 연어 버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확실히 신뢰도가 올라간 셈이다.
“오~ 그럼 이 건강한 버거의 이름은 뭡니까 셰프님?”
“연어유희입니다.”
“‘유’는 유나 씨의 유에서 따온 건가요?”
“맞습니다.”
“첫 출연이라고는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언어유희네요. 오늘의 사제 대결이 정말 기대됩니다.”
요리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세트장에 설치된 거대한 디스플레이에 20:00:00이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떠올랐다.
20분의 조리시간을 알리는 무시무시한 카운트다운 숫자!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지만, 요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디쉬를 만들기 넉넉한 시간이다.
“시작합니다~!”
MC의 힘찬 외침과 동시에, 디스플레이의 숫자가 19:59:99로 바뀌기 시작했다.
왕호는 곧바로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어의 꼬리를 집어 들었다.
마치 수술을 앞둔 외과의사 같았다.
오늘 수술할 대상은 알래스카산 연어!
철푸덕-!
널찍한 도마에 통연어를 올려두고는,
챙챙챙-
식칼을 칼갈이와 부딪혀 날을 바싹 세웠다.
고급 해체 스킬로 연어 해체쇼를 보여줄 차례!
연어의 몸에 칼을 대려는 그 순간,
“우오오오!!! 역시 다니엘 킴 셰프님!”
녹화장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왕호도 눈을 돌려 다니엘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와···’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솔솔솔-
소금 통이 저절로 떠오르더니, 공중을 수놓으며 재료 위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마치 눈이 내리듯, 하늘에서 소금이 떨어진다.
역시, 퍼포먼스 요리의 1인자이자 항상 새로운 눈요기를 제공하는 다니엘 킴 다웠다.
최유나도 다니엘 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으로 보아하니, 동영상으로 찍어 자신의 SNS의 올리면 대박이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니엘 킴은 사이코키네틱스 소금 뿌리기 뿐만 아니라, 토치 대신 손가락에서 불을 내뿜어 요리를 시도했다.
슈웅- 화르륵- 사아아-
각종 마법들이 현란하게 요리를 장식한다.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보는 즐거움은 엄청났지만, 요리의 완성은 어쨌든 ‘맛’ 아니던가.
왕호는 다니엘 킴에게서 눈을 거두곤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마법이 부럽긴 했으나, 왕호는 마법사가 아닌 요리사.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왕호는 잘 갈린 칼로, 연어의 비늘을 거침없이 벗겨냈다.
슥슥슥-
연어를 뒤집어가며 비늘을 다 벗겨냈다.
피와 내장은 현지에서 다 빼놓은 터라, 할 필요가 없었다.
비늘이 다 벗겨지자 놈의 아가미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는 가운데 뼈가 닿을 때까지 칼을 들이밀어 슥삭슥삭 썰어냈다.
이제 연어를 뒤집어서 살짝 기울인다.
“기울이면 결을 따라 자르는 데 힘이 덜 들어가서 쉽습니다. 시청자분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방송멘트도 잊지 않았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세상 어느 시청자가 손질 안 된 연어를 가져와 해체하겠는가.
거의 망언에 가까운 멘트였다.
왕호는 손바닥으로 연어의 대가리를 살짝 누르고, 아까 잘라놓은 아가미 부분에 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놈의 척추뼈를 따라 칼을 그대로 긁어내렸다.
칼 옆면이 뼈에 닿으며 드드득- 거리는 소리가 녹화장을 울렸다.
왕호가 듣기엔, 뼈에 붙은 살까지 반듯하게 썰어내며 생겨난 아름다운 소리였다.
반듯하게 자르지 않으면 연어에 구멍이 생긴다.
“결을 맞추면 칼이 저절로 살을 바르기 때문에 힘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엔 정말로 연어의 살코기가 스무스하게 잘려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툭-
이렇게 연어의 한쪽 면이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그러자, 선홍빛의 아름다운 연어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스탭들이 감탄한다.
다니엘 킴을 볼 때는 화려한 마법에 감탄했다면, 왕호를 볼 때는 알래스카에서나 볼 법한 업자급의 해체실력에 감탄했다.
슥슥- 챙챙-
왕호는 해체 과정을 진행할 때마다, 칼을 계속해서 닦고 갈았다.
아직 해체는 다 끝나지 않았다.
다시 대가리를 잘 잡고, 칼을 이번엔 척추뼈 아래쪽으로 푸욱- 꽂았다.
그리고 스으윽- 내려 뼈를 발라낸다.
“칼을 너무 깊게 쓸 필요는 없습니다.”
관통하다시피 살짝만 넣어도, 뼈를 깔끔하게 발라낼 수 있다.
“결을 따라 힘들이지 않게 자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슥- 슥-
왕호는 꼬리까지 칼을 가져가며 뼈를 발골했다.
그러자,
“헉!”
연어 대가리와, 그 대가리에 덩그러니 달린 척추뼈가 살과 분리되어 나왔다.
마치, 피라냐가 다 발라먹고 뼈만 남겨둔 생선 같았다.
살은 거의 붙어있지 않았다.
“오오오~!”
짝짝짝-
진귀한 광경에 두 MC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뱃살 부분에 있는 잔가시만 제거하면 됩니다.”
스윽- 스윽-
잔가시가 떨어져 나가며, 광고에서나 보던 완벽한 연어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자를 때 살을 버리지 않게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이 뱃살에서 풍부한 맛이 나니까요. 저도 이 부분을 사용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부분들만 깔끔하게 정리했다.
꼬리까지 자르며 해체 완료.
한 몸이었던 연어가, 두툼한 연어 살코기 두 덩이로 다시 태어났다.
왕호는 손질된 연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며 물었다.
“최유나 씨는 빅맥을 더 좋아합니까 아니면 해피밀을 더 좋아합니까?”
“네?”
“패티 2장 들어간 든든한 버거랑, 주니어 버거 중에 어떤 걸?”
“아~ 그렇다면 빅맥이죠!”
최유나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버거가 크면 먹는 모습이 안 예쁘겠지만, 요즘엔 텉털한 이미지가 대세지.’
접수 완료!
왕호는 버거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주섬주섬 꺼냈다.
다니엘 킴만 불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왕호도 불 친화력 특성이 올라가며, 마나를 불로 치환할 수 있게 됐다.
다니엘이 마법 스킬을 사용해 불을 소환한다면, 왕호는 마나 자체를 운용해 불을 발현하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화르륵-
왕호의 손에서 불길이 튀어나오며, 왕호가 쥐고 있던 그릴이 자동으로 달궈지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면 되지만, 예능에 나왔으니 출연료 값은 해주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이야~ 안왕호 셰프님도 각성자셨죠? 퍼포먼스도 대박입니다!”
“역시, 다니엘 킴 셰프님의 제자답습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곧 청출어람 하겠는데요?”
치이이익-
왕호는 달궈진 그릴에, 연어와 양파를 올렸다.
연어는 살짝 굽고, 양파는 고소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살려 그릴드했다.
연어가 너무 싱싱해 비린내를 따로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레몬즙을 살짝 뿌려 굽는 걸로 끝냈다.
왕호가 최유나에게 버거의 취향을 물어본 것은, 별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승리는 물 건너 갔지만, 그래도 요리를 대접해야 할 손님 아니겠나.
취향에 맞춰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관심병도 병이다 이것아.’
힐링도 해줄 겸 말이다.
조리가 다 완성됐으니 이제 합치기만 하면 끝이다.
참깨빵 위에 연어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빠빠빠라빠-
버거가 합쳐지는 장면을 보자, 스태프들의 뇌리에서는 햄버거 CM송이 절로 흘러나왔다.
‘여기에 싱싱한 토마토까지 더해서!’
완성.
[힐링 요리 “관심병을 완화시킬 연어유희”를 제작했습니다.]
-관심병을 완화시킬 연어유희-
[관심에 목마른 여배우 ‘최유나’를 위한 요리.]
[신선한 알래스카산 사카이 연어로 만들어진 건강한 버거 요리다. 비린내가 하나도 없다.]
[연어 패티가 2장이나 들어가 든든하다.]
[오메가3, DHA가 가득 들어있어, 심장질환 및 성인병 예방과 두뇌 발달에 탁월하다.]
[맛깡패의 기운이 담겨있다.]
[몸에 좋은 지방이 꽉 차 있는 산란기 직전의 연어 뱃살을 사용했다. 향이 매우 좋다.]
[고소한 양파와, 아삭한 양상추, 싱싱한 토마토를 넣어 식감이 뛰어나다.]
[효과 : 포만감이 가득 찹니다. 면역력이 상승합니다. 지구력이 30% 상승합니다. 최대체력이 50% 상승합니다.]
[버프 : “SNS는 인생의 낭비”, “피노키오”가 발동됩니다.]
[SNS는 인생의 낭비 – 결핍된 관심 욕구가 잠시 해소됩니다. 관심을 얻기 위한 무리수를 남발하지 않습니다. 이 버프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피노키오(보조) – 허언증이 잠시 치유됩니다. 이 버프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최유나의 재료로만 사용해, 재료의 마나 캐퍼서티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래서 버프의 효과가 그리 뛰어나진 않았으나, 어쨌든 힐링을 위한 버프까지 걸렸다.
‘됐다!’
서 PD는 왕호의 능숙한 솜씨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 녀석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군!’
왕호가 생선 버거를 만들겠다고 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PD인생 이대로 종 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능숙을 넘어선 완벽의 해체 기술과 거침없는 요리 과정을 보자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중간에 연어 손질 쉽다는 얘기만 안 했어도 완벽했을 텐데 쩝. 자기한테나 쉽지 저걸 누가 따라 해······.’
시청자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으나, 크게 욕먹을 부분은 아니다.
최유나가 맛있다고만 해주면 게임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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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킴의 요리를 먼저 먹어본 최유나는 속으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화려하기만 하지, 맛은 그냥 시중에서 파는 맛이네······.’
그저 그랬다.
그래도 그에게 승리를 주어야 하기에, 괜히 오버해서 리액션했다.
“와~ 역시 다니엘 킴 셰프님! 영국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을까요?”
배우답게 탄탄한 연기력에서 나오는 가식!
진짜인지 가까인지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최유나의 시식이 끝나자, 왕호도 다니엘 킴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쩝쩝-
다니엘 킴의 요리를 먹는 왕호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자리했다.
그의 요리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넘었어.’
요리 실력보다 퍼포먼스로 스타 셰프의 위치에 오른 다니엘 킴 답게, 음식의 맛은 그리 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미 뛰어넘었다.
뿌듯했다.
다른 셰프들은 이미 이런 맛에 익숙한지, 가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왕호의 요리를 시식할 차례.
최유나는 밑밥부터 먼저 깔았다.
“와~ 햄버거가 정크푸드라서 저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근데 이건 정말 건강한 버거라서 정말 기대돼요!”
이제 한입 베어 먹고 살짝 실망한 듯한 표정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헛구역질하려다 참는 거야. 그러면 인생 너무 불쌍해지니까.’
왕호를 향해 살짝 미소를 날려준 최유나는, 입을 크게 벌려 연어 버거를 덥석 물었다.
앙-! 우물우물-
이제 살짝 실망한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자동적으로 동공이 커져버렸다.
동공의 확장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생리반응이다.
“마, 맛있어!”
설상가상.
말까지 제멋대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 클래스가 다르다 2 (5)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