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42화 (142/149)

< 클래스가 다르다 2 (6) >

댕~!

머리에 종이 울린다.

충격적이다.

신선한 맛.

건강한 맛.

본래 건강한 맛이라 함은, 맛대가리 없는 맛을 우회적으로 돌려 말할 때 쓰는 말이다.

허나, 이 맛은 건강하지만··· 맛있다.

보인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저 힘찬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왜 맛있다고 말해버린 거야?! ···근데 맛있긴 진짜 맛있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고, 이미 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맛있어!’라고 이미 말을 뱉어버린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 생각보다 맛있네요······.”

“어떤 맛인가요?”

MC의 아주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최유나는 머릿속으로, ‘생선 특유의 향이 살짝 있긴 하지만, 학창시절에 먹던 새우버거 같은 맛이에요.’ 라는 답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정작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진짜 부드러워요······.”

‘아이씨···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최유나가 당황했다.

신인 때야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카메라가 집중되면 당황한 나머지 정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내뱉곤 했다.

허나, 지금은 감정 컨트롤이 능수능란한 주연급 여배우.

감독이 큐 사인을 내리면, 1초 만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신인으로 돌아간 것마냥, 감정을 곧이곧대로 표출하는 상황.

그냥 입을 꾹 닫고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최유나의 간단한 맛 표현이 끝나자, MC와 셰프들에게도 시식타임이 주어졌다.

우적우적-

연어 버거를 먹는 MC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 최유나 씨 표현이 정확하네요. 정말 부드러워요. 마치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은··· 따뜻하게 구워진 연어라서 따뜻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이라 해도 믿겠네요. 혀에 닿자마자 살살 녹습니다 아주!”

“맞습니다! 거기에 아삭한 채소의 식감도 일품이네요. 게다가 이 연어 향은 대체··· 비린 맛은 하나도 없고 맛깔나는 연어의 풍미만이 가득하군요!”

놀란 것은 셰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추어 CLASS가 아니다!’

확실히 클래스가 달랐다.

에셰코를 우승하긴 했다지만, 그래도 이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번의 그 젊은 녀석처럼, SNS 홍보로 유명해진 겉만 번지르르한 녀석 같았다.

‘연어 해체 솜씨는 거의 30년 차 셰프 수준이고··· 맛을 살리는 기본기도 제대로군.’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제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저 상황에서 연어로 버거를 만들 생각을 다 하다니, 깡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긴, 서 PD가 이 상황에서 또 실력 없는 낙하산을 들일 이유가 없지.’

대부분의 스타 셰프가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 존재했다.

특히, 장준환 셰프가 그러했다.

그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기본기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 자리에 나란히 설 순 없지.’

현재, 상당수 요리사들의 진짜 실력은 미디어에 의해 부풀려진 상황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다니엘 킴 셰프.

다니엘 킴 셰프의 요리를 처음 먹었을 때, 그는 상당한 충격을 얻어맞아야 했다.

요리를 왜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니 말 다 했다.

그 정도로 형편없었다.

미디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여기까지 올라온 셈이다.

왕호라는 저 젊은 녀석도 다니엘 킴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요리를 먹어보니, 다니엘 킴보다는 실력 있지만 어쨌든 저 친구도 각성자다.

에셰코도 우승하고, 레이드 개인방송인가를 한 대서 팬층이 상당히 두텁다.

실력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두 번은 필시 우연이리라.

장준환은 케빈 오 조차도, 사람들의 인기에 의해 실력이 고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왕호를 섣불리 인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케빈 오 셰프님을 존경하고 인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100퍼센트 실력으로만 붙으면 내가 한 수 위다!’

장준환은 매스컴에 나와 인기를 끌어모으는 재주가 없다.

그저 묵묵하게 요리만을 해 나갈 뿐이다.

케빈 오는 미디어의 인기에 힘입어 대한민국 최고 스타 셰프라는 칭호를 얻었다.

사람들은 케빈 오를 한 수 더 높게 치지만, 개인 레스토랑으로 미슐랭 별을 획득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오로지 장준환뿐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미디어의 인기를 고려하지 않은 객관적인 평가나 마찬가지.

즉, 세계에서는 자신을 더 쳐준다는 말 아니겠나?

‘저 친구는 근본이 부족해.’

저 녀석은 세계적인 요리학교를 나오지도, 그렇다고 세계적인 호텔에서 근무했던 것도 아니다.

국내파에, 고작 다니엘 킴 레스토랑에서 5년 근무한 것이 전부.

물론, 형편이 어려워서 유학길을 떠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핑계지.’

장준환은 가진 것 하나 없이 말도 하나 통하지 않는 프랑스로 유학길을 떠났다.

접시만 3년을 닦았으며,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날이 없다.

그런 그에게 형편이 부족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왕호에게는 동생을 보살펴야 했던 더 깊은 사정이 있었지만, 장준환이 거기까지 알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장준환을 제외한 나머지 셰프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실 최유나 씨 말 대로, 햄버거 자체는 대표적인 정크푸드 아니겠습니까. 쇠고기를 갈아서 만든 패티 대신, 생연어를 살짝 구워서 만드니 풍미도 매우 뛰어나고 건강에도 무척 좋은 요리가 됐네요.”

“연어가 무척 싱싱해서 그런지 전혀 비리지 않아요. 한가지 묻고 싶은데, 트러플 오일이나 캐비어 같은 고급 재료들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질문까지 하는 셰프도 있었다.

왕호는 셰프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세상 어떤 가정집에 트러플 오일이나 캐비어가 있겠습니까. 연어가 통째로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그나마 연어는 손질된 걸 마트에서라도 팔기나 하지······.’

이렇게 말하려 했으나, 방송을 위해 참았다.

“연어가 너무 싱싱해서 연어 본연의 맛을 살리려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방송이 게스트의 식탁을 차려주는 방송이라지만, 원래 취지는 밥 먹기 힘든 게스트에게 집밥을 차려준다는 취지다.

허세 부리려고 일부러 사놓은 트러플이나 캐비어를 굳이 쓰고 싶진 않았다.

이번엔 가만히 듣고 있던 장준환이 나섰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재료가 나빴다면 저번 요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 같군요. 특별한 조리법이랄 것이 없으니······.”

셰프들의 맛 평가도 모두 끝나자, 대결의 승리자를 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최유나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승리자가 결정된다.

삑-

최유나는 버튼을 눌렀고, 결과는···

“다니엘 킴 셰프가 안왕호 셰프와의 첫 번째 사제 대결에서 승리하는군요!”

다니엘 킴의 승리로 돌아갔다.

“다니엘 킴 셰프의 손을 들어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MC가 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니엘 킴 셰프의 요리가 더 맛있어서도 아니다.

진짜 이유는 왕호가 자신의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먹자마자 왕호의 손을 들어줄 뻔했다.

맛의 수준이 확연히 달랐으니까.

이 이유를 합리화하기 위해, 최유나는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하려 했다.

‘안왕호 셰프님의 요리도 분명 괜찮았지만, 다니엘 셰프님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가 뭐랄까··· 좀 더 멜로우하고 밸런스가 좋다고 할까요? 특히 트러플 오일의 리프레쉬한 향이 블랙푸딩과 어우러져···’

평소에 이런 허세 가득한 맛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터라, 이번에도 머릿속으로는 미사여구가 술술 튀어나왔다.

그러나···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거야!’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두, 둘다 맛있었는데··· 그냥 취향 차이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MC들이 당황한 최유나를 거들었다.

“취향 차이라··· 인정합니다.”

“그렇죠. 취향은 존중해야죠. 제 입엔 안왕호 씨 버거가 더 맛있었습니다.”

그제야 셰프들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장장 7시간이 넘는 녹화가 마무리됐다.

최유나가 끝나고 또다시 무슨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고개를 푹! 숙이며 녹화장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이번 녹화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왕호에게, 셰프들이 말을 건넸다.

“흠··· 생각보다는 잘 하네? 연여 해체도 인상 깊었고···”

“처음에 했던 말은 그냥 잊어버리게. 저번에 그 친구랑 같은 부류인 줄 알았네.”

“앞으로 좋은 대결해 봅시다! 시간 있으면 내 식당에도 한번 놀러 오시고.”

평가가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뀐 터라, 왕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장준환은 별다른 인사 없이, 쌩하고 왕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까칠하시네······.’

비록 까칠하지만 존경하는 셰프 중 하나다.

그래도 이곳에서 실력으로는 거의 으뜸이고,

각성자가 득실거리는 스타 셰프 판에서, 케빈 오 셰프와 함께 유이한 비각성자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나.

꼭! 친해지고 만다!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

녹화가 끝나자마자, 왕호가 내식부에 출연한다고 하는 기사가 연예면을 장식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

-내식부 정신 못 차렸네. 저번에 그렇게 욕먹어 놓고 또 젊은 놈 쓰냐?

-와, 벌써 저기에 나오다니 정말 기대돼요! 본방사수 합니다!

의심하거나 기대하거나.

두 경우 모두 방송국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시청률이 늘어나니까.

그렇게 의심 반 기대 반 속에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왕호가 출현한 방송이 전국으로 송출됐다.

확실히 저번 방송보다 눈에 띄게 시청률이 상승했다.

방송이 끝나고, 내식부에 관한 종합 기사가 연예 뉴스 Top 10에 올랐다.

댓글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ㅋㅋㅋㅋ 저기서 생선 버거를 할 생각을 다 하네. 진짜 깡 미쳤다 역시 킹왕호시다!]

[-해체 퍼포먼스 진짜 눈 호강 제대로 했다. 앞으로 셰프들은 마법으로 현혹시킬 생각 말고 저런 기본기나 제대로 좀 보여주시길!]

[-아 진짜 먹고 싶다··· 왕호네 식당가면 저 메뉴 파나요?]

[-최유나 냉장고 상태 대체 무엇? 허세 너무 심한 거 아냐? 트러플 오일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캐비어랑 통짜 연어는 에바 참치지ㅋㅋㅋ]

[-확실히 역병 고등어 버거랑은 온도 차이가 다르네요. 셰프들까지 남김없이 다 먹어버리네요.]

[-근데 최유나 연어 버거는 다 먹고, 다니엘 킴 거는 남겼으면서 왜 다니엘 승리?]

[-그냥 짬 많으면 승리 주는 거임?]

[-장준환 말 못 들었음? 재료빨이라잖아.]

[-장준환 진짜 까칠하더라 역시 미슐랭 셰프··· 졸라 멋있어.]

[-장준환이 레시피 별거 없다고 그랬는데, 솔직히 시청자 입장에서는 따라 할 수 있어서 진짜 좋았네요. 요새 어려운 것들만 해서 진짜 공감 안 갔었는데 안왕호 셰프님 감사합니다!]

[-위엣 분 의견에 저도 동감합니다. 세상 어느 집이 캐비어를 쌓아두고 먹습니까? 방송 초창기 때는 따라 할 수 있는 메뉴 많이 하시더니 요새는 허세만 가득 차 가지고··· 저는 마트에서 연어 사 와서 직접 해볼 겁니다.]

부정적인 의견은 많지 않았다.

굳이 찾자면, 장준환의 의견에 동조하는 정도?

첫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즉, 왕호의 커리어에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는 얘기다.

지인들은 왕호의 첫 방송을 격하게 축하했고, 그중에는 한여름도 있었다.

카페에서 만난 한여름은 민트초코 카페라떼를 홀짝이며 왕호를 축하했다.

“오빠! 완전 멋있었어~! 최유나 연어 버거 먹고 동공 풀리던데 진짜 맛있어 보이더라.”

“그래? 난 져가지고 욕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취향 차이라잖아. 근데 오빠 꺼 그렇게 맛있게 먹어놓고 승리는 엄한 데 주는 건 뭐람. 역시 최유나 허세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응? 여름이 너도 최유나 성격 알아?”

왕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여름이의 말투는 마치 최유나를 잘 아는 사람의 것 같았다.

“당연히 알지~ 얼마 전에 나 영화 촬영 들어갔잖아!”

“응 로맨틱 코미디물이라며.”

“거기 여주가 최유나야. 나는 서브 여주고.”

“진짜?”

“내가 말 안 했었나? 어쨌든··· 나도 몰랐는데 허세 대박이더라고.”

“허세만 있으면 차라리 낫지···”

왕호는 녹화장에서 최유나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원래 뒤에서 남들 호박씨 까는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거는 왠지 공유하고 싶었다.

한여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다.

“걔 거기 나가서도 그 지랄··· 아니, 이상한 짓 하네. 완전 여우라니까?”

“촬영장에서도 그래? 아··· 당연히 그러겠네.”

“하··· 오빠한테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걔 때문에 조금 힘든 부분도 있어······.”

여름이는 만날 때마다 항상 웃는상이다.

덕분에 만나면 상대방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여름이가 지금 잔뜩 울상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가슴속에 담아둔 것이 많은 것 같았다.

왕호에게는 괜히 힘들어 보일까 봐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것이고.

“오빠도 알다시피 촬영장 스탭들이 대부분 남자잖아. 작가님은 여잔데 아무래도 촬영장에는 잘 안 나오시니까······.”

“거기서도 여우짓 하겠네?”

“꼬리를 아주 살살 흔드는데, 이놈의 남정네들이 구별을 못 해······. 자기만 이쁨받으면 상관없겠는데, 나랑 나하고 같이 출연하는 여자애들 조금만 이쁜 애들 있으면 막 모함하니까 그게 조금 그렇지······. 스탭들, 특히 감독님이 최유나 편만 드니까 어쩔 수

없지 참는 수밖에···”

아무 정보 없이 여름이의 말만 들었으면, 얼마나 힘든지 체감을 못 했겠지만 왕호는 이미 최유나의 이상함(?)을 경험해봤다.

“진짜 힘들겠네···”

“헤헤, 괜찮아! 오빠 말대로 긍정 마인드 장착해서 충분히 극뽁! 하고 있으니까~!”

여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왕호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오랜 시간 여름이를 보아온 왕호가 볼 때는 조금 어색한 웃음이었다.

분명 억지로 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왕호의 귓가로 최유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몇 주 전 녹화할 때 들었던 제안이다.

-밥 차 끌고 촬영장 한 번 오면 되는데. 감독님한테도 점수 좀 따게~

이 말이 갑자기 왜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유나 덕에 여름이를 도와줄 방법이 생각났다.

왕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 클래스가 다르다 2 (6)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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