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4화 (4/219)

<-- 4 회: 1-4( 2. 떽!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것 아냐.) -->

"금방 온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그리고 왜 이곳으로 바로 오지 않고 구조대가 엉뚱한 곳을 헤매게 만들어?"

"그... 그때는 내가 너무 다... 당황했나 봐."

'자식, 왜 이렇게 놀라?'

지훈의 추궁에 크게 당황했는지 현석은 시뻘게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현석의 모습에 그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치솟은 지훈은 애써 모른척하며 계속해서 옆에 붙어있던 수아를 확 끌어안았다.

지금의 지훈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수아와의 재회여서 일분일초도 아까웠다.

"어마!"

"수아야, 다시 보니 너무 반갑다."

"오! 지훈이가 죽음의 문턱을 넘더니 많이 과감해졌는데?"

"얼레, 우리 과의 대표 샌님이 왜 이렇게 화끈해졌어?"

"지훈아, 아는 것 다 아는 나이인데 확 수위를 올려서 확실한 19금 장면을 보여주면 안 되겠냐?"

지훈과 수아는 같은 과 학생들이 모두가 알고 있는 CC였다.

하지만 맹세하건데 지금까지는 팔짱을 끼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것도 수아가 그리하는 것이지 지훈은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많은 이가 옆에 있음에도 이례적으로 지훈이 먼저 수아를 끌어안자 그 사정을 알고 있는 동기들이 깜작 놀라며 짓궂은 농담을 다시 해왔다.

반면 난생 처음 지훈의 품에 안긴 수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지훈을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을 절대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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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떽!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것 아냐.

이른 아침의 소동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서 아침을 먹은 조리학과 학생들은 미리 정한 계획대로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해서 산나물 채취에 들어갔다.

산나물 채취는 조리학과의 오래된 전통으로, 많은 양을 채취하기 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나물을 채취하고 이를 통해서 식재료로 사용 가능한 나물을 배우고 익히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영석아, 우리는 어디로 가면 되냐?"

"우리 조는 계곡의 오른쪽을 따라서 올라가기로 했는데, 넌 따라오지 말고 숙소에 남아있어."

"나 혼자서? 싫다."

"오빠, 그러지 말고 숙소에 있어. 아까 구조대 아저씨들이 지금은 놀라서 아픈 곳이 있어도 모를 수가 있다면서 오늘은 가만히 푹 쉬라고 했잖아."

"수아야, 난 괜찮아. 그리고 난 네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 만약 너와 떨어져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길 걸?"

"오빠, 오늘 이상하다."

"뭐가?"

"평소하고는 너무 다르잖아?"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닌데 조금 이상해."

"수아야, 암벽에 혼자 있으면서 깨달은 건데 인생이란 것이 묘해서 누구라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살기로 했어."

"헤헤~! 그건 좋네."

"가자."

"정말 괜찮겠어?"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계속해서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지훈은 수아와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원들과 함께 산나물 채취에 들어갔다.

'그나저나 무슨 꿈이 이렇게 길어. 게다가 땀까지 흐르는 것이 마치 진짜 같잖아?'

제법 가파른 능선을 따라서 산을 오르다보니 땀이 나는 것은 당연했는데 지훈은 꿈속에서 그런 세세함까지 재현해내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시간의 흐름이 현실과 너무도 똑같아서 마음속으로 60까지 헤아리며 시간의 흐름을 확인했다.

'이건 완벽한 실시간인데 이 정도면 현실이라고 해도 믿겠네.'

뭔가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이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지훈은 힘들어하는 수아를 부축하면서 계속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 저건 화살나무다."

"무슨 나무?"

"수아야, 홑잎나물이라고 들어봤니?"

"살짝 데쳐서 깨소금에 무치거나 참기름과 간장에 버무려 먹는다는 나물?"

"맞아. 저 화살나무의 어린잎이 홑잎나물이야."

"홑잎나물이 나물이 아니라 나무라고?"

"응. 저것 조금만 따가자. 저게 요리를 잘 하면 맛도 괜찮지만 여자와 위가 안 좋은 사람에게 아주 좋아."

"왜?"

"동의보감에도 나온 내용인데 저 잎 안에 있는 성분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어혈을 없애고 생리를 잘 통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거든."

"정말?"

"그것만이 아냐. 홑잎나물에 들어있는 싱아초산나트륨은 항암 효과도 뛰어난데 특히 위암에 좋다고 하니까 네가 많이 먹어."

현실속의 수아가 지금으로부터 7년 후에 위암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린 지훈은 그녀에게 홑잎나물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 그거야 몸에 좋은 거니까 그렇지."

"알았어. 나물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날 생각하는 오빠의 성의를 생각해서 홑잎나물은 특별히 먹어볼게. 그런데 그런 것까지 줄줄 꾀고 있다니, 우리 오빠 대단한데?"

훗날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푸드 테라피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지훈은 나물을 비롯해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자재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꾀고 있었다.

아니, 거의 모든 식자재의 특성과 효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의 일이기에 그 사실을 모르는 수아는 지훈의 속마음도 모르고 그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나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나물류는 식감이 안 좋은 점도 있지만 솔직히 맛도 별로잖아?"

'맞아. 그랬었어!'

"수아야, 나물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데? 그리고 조금만 신경 써서 요리하면 식감만이 아니라 맛도 좋아. 특히 너는 도라지나물과 취나물 그리고 민들레를 많이 먹어야 해."

"도라지는 그 특유의 향이 싫던데?"

"그래도 몸 생각해서 먹어. 그리고 익숙해지면 도라지 향이 얼마나 향긋한데?"

"어쨌든 맛은 없잖아?"

지훈이 말한 것들은 하나 같이 위에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는 식재료로, 꾸준히 먹으면 위암을 예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싫다고 하니 답답해지는 것은 지훈이었다.

"내가 오늘 저녁에 나물 요리를 직접 해줄 테니까 먹어봐."

"오빠가 직접 해준다고?"

"그래. 오직 너를 위해서만 하는 요리이니까 이 기회에 조리법을 배워서 너도 종종 해먹어."

"싫어."

"왜?"

"나물 요리는 오빠가 해준 것만 먹을 거야."

"야, 나물요리가 몸에 좋다니까."

"몸에 좋은 게 어디 나물뿐이겠어?"

"피부에도 좋아서 절로 피부미인이 될 수 있는데?"

"오빠는 지금 내 피부가 안 좋다고 타박하는 거야?"

"내가 언제?"

"말하는 게 그렇잖아?"

"그게 아니라......"

"야! 둘 다 그만해라."

"지훈아, 죽다 살아나서 성격이 확 바뀐 것은 알겠는데 너무 눈꼴 시리니까 어지간히 해라."

"니미럴, 애인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냐?"

"이지훈, 염장 좀 작작 질러라."

"흐미, 내가 이래서 가급적이면 커플이 포함된 조에는 안 오려고 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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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살짝 기울기 시작한 오후 4시 무렵, 조별로 흩어졌던 경운대학교 조리학과 학생들이 다시금 민박집에 모였다.

그중에는 수아와 함께 여러 가지 나물을 한 아름 채취한 지훈도 끼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20여 년 전 과거로 돌아오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지훈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계속 지내다 보니 꿈이라고 여기기에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이게 꿈이야, 현실이야?'

꿈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이 이상했기에 깊은 고민에 빠진 지훈은 자신의 팔뚝을 스스로 꼬집기까지 했다.

'큭! 아픈데, 정말 현실일까?'

"오빠, 뭐해?"

"뭐가?"

"왜 팔을 꼬집고 그래?"

"그냥."

"오빠, 오늘 정말 이상하다?"

"내가 왜?"

"너무 잘해주니까 다른 사람 같잖아."

"내가 언제는 안 그랬어?"

"그걸 말이라고 해? 늘 무뚝뚝하고 날 보고 웃어준 적도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 이잖아."

그토록 그리워했던 수아를 다시 만났으니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수아의 얘기를 들어보니 과거의 자신은 안 그랬던 것 같았고, 그럴수록 더더욱 잘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나? 암튼 죽다 살아났으니까 앞으로는 쭉 그렇게 할게. 대신 너도 한 가지 약속을 해줘."

"오빠가 그렇게 해준다면 뭐든지 해야지, 뭔데?"

"내가 권하는 음식을 꾸준히 먹겠다고 약속해."

"또 나물 얘기야?"

"그것도 있고 그라비올라 건잎차와 알로에 겔 그리고 무와 마를 자주 먹어. 아! 건강검진도 정기적으로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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