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회: 1-8 -->
"지훈 오빠, 이것들도 재료로 사용해서 많이 만들어 주세요."
"야, 산열매가 부족해서 이것들을 전부 요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선배님, 산열매 대신 과일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지. 그런데 과일이 있어?"
"제가 먹으려고 싸온 사과가 몇 개 있는데 그걸 드릴게요."
"아! 저도 바나나 몇 개 가져왔는데 그걸 드릴게요."
"누구, 과일 갖고 온 사람 또 없어?"
"배를 하나 가져왔는데 그것도 드릴까요?"
"좋지. 그런데 누가 과일 가는 것은 거들어주면 안 될까?"
"제가 할게요."
"저도 할게요."
그렇게 지훈의 조가 다시금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조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MT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캠프파이어와 술자리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는 화장실에 숨어 든 박현식이었다.
'호~! 이것도 괜찮은데, 이크! 내가 이럴 때가 아냐.'
다른 이들이 캠프파이어와 술자리를 준비하는 틈을 이용해서 지훈의 레시피 노트를 훔친 그는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서 그것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훈의 레시피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기발함과 참신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이걸 내가 그냥 독차지 해버릴까?'
원래의 계획은 노트 안의 내용을 모두 촬영한 후에 레시피 노트를 이용해서 수아와 지훈의 사이를 이간질 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레시피의 내용이 워낙 좋다보니 그것을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아냐, 수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어차피 노트를 촬영해놓으면 이 레시피들은 나도 사용할 수 있어.'
샘솟는 욕심을 겨우 억누른 박현식이 다시금 촬영을 하고 있을 무렵 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아무 변화가 없지?'
추측대로라면 배꼽 부위가 간질거리면서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음양오행의 기운이 분출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조금 전과 어떤 차이가 있어서 그러지?'
지훈은 모르고 있지만 그에게 깃든 음양오행의 기운은 마음이 움직였을 때 절로 분출된다.
즉, 남을 위한 마음과 정성이 담긴 행위를 하면 기운이 알아서 분출되는데 마음이 움직이면 요리가 아닌 다른 행위를 해도 기운이 분출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 쉽게 얘기하면 아까는 각 조별로 우열을 가르는 대회였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온 신경을 집중했을 뿐만 아니라 정성이 가득 담겼다.
반면 지금은 요리에 빠져들지 않고 일종의 관찰자의 자세로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니 정신이 분산된 것은 당연했고 기운이 분출될 리 만무했다.
'내가 착각을 했나. 하긴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음양오행의 기운이라니, 그런 것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
자신이 착각을 했다고 여긴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요리에 완전 몰입했다.
어릴 적부터 미치도록 요리를 좋아했던 그는 요리를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웠고, 자신이 만든 요리를 다른 이가 맛있게 먹으면 큰 행복을 느꼈다.
지금껏 아무런 반응도 없던 배꼽 부분에서 솟구친 따뜻한 기운이 손끝을 통해서 빠져 나간 것은 그때였다.
'어! 또 그러잖아?'
착각인줄만 알았던 일이 다시금 벌어지자 지훈은 어떤 경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고민을 해봐야 지금 당장 원인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다시금 요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똑같은 경험을 몇 번이나 한 후에 대략적이나마 어떤 경우에 기운이 분출되는지 짐작해냈다.
'단순히 요리를 한다고 해서 기운이 분출되는 것은 아냐. 그보다는 정성을 기울여야 해!'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기운이 분출되는 조건을 어느 정도 파악한 지훈은 더욱 맛있어진 샐러드를 예쁘게 플레이팅 했다.
###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캠핑장에는 동그랗게 원을 형성한 조리학과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MT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동석 오빠, 술만 마시지 말고 이것도 드세요."
"어! 김치찌개네, 언제 끓였어?"
"안주가 너무 부실한 것 같아서 남은 재료를 모아서 대충 끓였어요. 맛은 별로겠지만 그래도 속은 풀어줄 수 있을 거예요."
"냄새는 좋은데?"
"드셔 보세요."
"잘 먹을게, 혜미야."
"어때요?"
"오! 국물 맛이 끝내주는데."
"정말요?"
"그래. 아주 잘 끓였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조리학과 학생이라고 큰소리쳐도 되겠다."
"헤헤헤~! 그 정도에요?"
"그래. 아주 훌륭해! 내가 끓이는 것보다 더 맛있다."
"에이, 아무렴 그러겠어요? 아무튼 칭찬해주셔서 고마워요."
"고맙기는 내가 더 고맙지. 혜미, 너도 한 잔 받을래?"
"오빠가 주시니까 받을게요."
"한잔 쭉 들이켜."
"오빠, 건배해요?"
"그럴까? 건~배!"
조금 전까지 자리를 함께 했던 교수님들이 숙소로 들어가면서 캠프파이어의 분위기는 무척 자유스러워져서 조별로 얘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캠프장을 벗어나는 이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캠프장을 벗어나는 이들은 하나같이 남녀 커플이었는데 그중에는 지훈과 같은 조인 동석과 혜미도 끼어 있었다.
"동석 오빠, 오빠가 하는 구이요리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명색이 특급 셰프를 꿈꾸는 사람이 구이요리만 잘하면 안 되는데 다른 요리는 약한 것 같아서 걱정이야."
"오빠, 실력이 어때서요?"
"아직, 많이 부족해."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는 몇 가지는 오빠가 지훈 오빠보다 더 잘하는 것 같던데요."
"정말?"
"네. 다만 지훈 오빠가 플레이팅을 워낙 잘해서 더 돋보이는 것 뿐이에요."
"혜미야, 빈말이라고 해도 고맙다."
"빈말 아닌데... , 나는 예전부터 오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그럼요. 그리고 아까 장기자랑 시간에 춤추는 오빠의 모습도 너무 멋졌어요."
"춤은 내가 걸 그룹을 좋아해서 따라하는 정도야."
"그 정도면 거의 전문적인 백댄서라고 해도 되겠던데요?"
"좋아한 만큼 많이 따라 해서 그래. 하지만 걸 그룹보다 너에게 더 관심이 있어.
// 사실 나는 작년 가을에 복학해서 널 처음 볼 때부터 자꾸 눈길이 갔었어. 이번 MT에서도 너와 한 조가 되려고 내가 얼마나 공들였는지 아니?"
"어! 몰랐어요. 왜 그랬는데요?"
"왜 그러기는, 이번 기회에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지. 사실 졸업반이 되다 보니까 너와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잖아?"
"그래서 지금은 어때요?"
"너와 친해지다니 너무 좋다. 만약 이번 MT를 참가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아."
"오빠, 그것 알아요?"
"뭐?"
"내가 누굴 위해서 김치찌개를 끓였을 것 같아요?"
"설마 나를 위해서?"
"찌개를 오빠 앞에 갖다 놓은 이유가 뭐겠어요?"
"오! 감격인데. 나를 위해서 찌개를 끓여주는 여자는 우리 엄마 이후로 네가 최초이다."
"핏, 거짓말?"
"거짓말 아냐. 맹세할 수 있어! 정 못 믿겠으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두근거리는 내 심장에 손을 대봐."
"그것, 거짓말을 해서 그런 것 아니에요?"
"혜미야,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믿어줄래. 널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이 갔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방금 전의 얘기까지 나는 진실만 얘기했어."
"가만있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