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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학생들은 내놓고 박현식을 비난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4학년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년 전체로 퍼져갔다.
후일담이지만 박현식은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동창들만이 아니라 모든 동문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박현식은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학과실에 나타나서 지훈의 답안지를 살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나타나기 무섭게 썰물 갈라지듯 멀찍이 떨어지는 후배들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지훈의 답안지를 평가 절하했다.
"자식, 잘난 척 할 생각에 참으로 구구절절이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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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축제가 다가왔다.
비록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저학년을 중심으로 축제 분위기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는 조리학과도 마찬가지였다.
실로 20여년 만에 젊음의 축제를 다시 즐기게 된 지훈은 괜히 신이 나서 주막 운영에 자원했다.
"수아야, 같이 하자."
"4학년이 무슨 주막 운영이야?"
"우리 조리학과의 명성을 믿고 찾아오는 학우들을 실망시켜 줄 수는 없잖아?"
대학 축제 기간에는 술과 음식을 판매하는 주막이 학과별로 운영된다.
물론 모든 학과가 주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리학과는 그 특성상 학교 측의 지원 하에 가장 큰 규모의 주막을 운영한다.
그리고 주막에서 판매하는 음식도 기껏해야 파전이나 순대를 파는 다른 학과와는 달리 자신들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제대로 된 요리를 팔았다.
덕분에 수많은 주막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고, 그 장면이 종종 방송에 나왔다.
사실 학교 측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런 일은 1~2학년이 하는 거잖아?"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래. 내년이면 졸업이라 아무리 하고 싶어도 두 번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텐데 함께 하자."
"후배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다들 엄청 환영하던데, 왜 싫어해?"
"그건 오빠 앞에서만 그러는 거고 속마음은 다를 걸."
"아냐. 학생회장 말로는 우리가 참가한다고 하니까 후배들 반응이 장난이 아니래. 심지어는 조금 전에도 찾아와서 꼭 참여해달라는 부탁까지 했어."
"우리 같은 노땅들이 끼어드는데도 후배들이 더 좋아한다고?"
"그래. 이 기회에 너의 솜씨를 직접 보고 배우겠다는 후배들이 줄을 섰데."
"나보다는 오빠겠지."
"어쨌든 하는 거다. 졸업하기 전에 좋은 추억하나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함께 떠올릴 수 있어서 좋잖아?"
"오빠가 그렇게 원한다면 할게."
"헤헤~! 고맙다."
멋쩍어하는 수아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지훈은 기쁜 마음에 그녀를 끌어안으며 가볍게 포옹을 했다.
MT를 다녀온 이후부터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자주해서인지 수아도 스스럼없이 지훈의 품에 안겼는데 어느 순간 낮은 비명을 터트렸다.
"아~!"
"왜 그래?"
"갑자기 속이 쓰려서, 위염이 도졌나봐."
"너, 또 자판기 커피 마셨니?"
"자판기 커피는 먹어본지 오래됐어."
"그럼 왜 갑자기 배가 아픈 건데?"
"위염이 도졌다고 말했잖아."
"너, 위염을 앓고 있었어? 혹시 너도 다른 여자애들처럼 아침을 거르고 다니니?"
"아침에는 입맛도 없고 시간에 쫓기기도 해서 거의 밥을 안 먹고 다녀."
여자들은 다이어트의 압박도 있지만 치장하고 꾸미는데 시간이 많이 들다보니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람이란 것이 규칙적인 식습관을 안 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어서 젊은 여자들 중에는 크고 작은 위장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아도 그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이런! 수아야, 아무리 바빠도 아침은 꼭 먹고 다녀."
"귀찮고, 혼자라 입맛도 없어서."
"그래도 꼭 먹어. 위염을 우습게 여기고 계속 방치하면 나중에는 큰 병으로 발전해."
지훈은 푸드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면서 현대의학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을 많이 접했다.
그 중에는 위암 환자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위염이 위궤양으로 발전했고 그게 다시 위암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그러니 수아가 장차 위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훈은 그녀의 위염을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무슨 큰 병?"
"위염이 심해지면 위암을 불러올 수 있어."
"에게, 고작 위염이 위암으로 커진다고?"
"우습게 들리겠지만 허튼 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임상사례를 통해서 입증된 사실이야."
"오빠, 무섭게 왜 그래?"
"네가 걱정되어서 그렇지. 앞으로는 꼬박꼬박 아침을 먹겠다고 약속해."
"노력할게."
"노력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해."
"오빠, 이럴 때 보면 너무 이상해. 꼭 내가 위암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더라."
"그만큼 위염이 무서운 병이라 그래."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사실을 얘기하며 수아와 함께 위암을 예방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적당한 말로 대충 얼버무린 지훈은 늦기 전에 자신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위암에 좋은 음식들을 해줘야겠어.'
현대 의학에서 포기 판정을 받은 말기 암 환자들은 궁여지책으로 식이요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푸드 테라피스트였던 자신이 말기 암 환자들을 종종 접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고, 그 과정에서 지훈은 기적적으로 암을 완치한 이도 여럿 봤다.
'아직은 위염이기 때문에 식습관을 바꾸고 위에 좋은 음식을 자주 먹게 하면 완치시킬 수 있을 거야. 아!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어.'
수아가 위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지훈은 마음만 앞선 채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했다.
그러다가 사흘 후로 다가온 축제에서 주막의 메뉴에 위에 좋은 음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수아에게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수아야,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우리 주막의 주제를 힐링 주점으로 잡으면 어떨까?"
"힐링 주점,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다친 몸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건강한 음식들을 안주로 내놓는 거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술도 과실주나 전통주를 판매하는 거고."
"다친 몸을 치료해줄 수 있는 음식이 뭔데?"
"간단해. 위염에 좋은 양배추와 브로콜리 샐러드와 피부 트러블을 없애 주는 피망과 시금치 페스트를 사용한 감자 파스타. 또 변비에 좋은 다시마 말이와 사과 퓌레, 이런 식으로 메뉴를 개발하는 거야."
"그러니까 식재료의 효능을 감안해서 몸에 좋은 음식들을 메뉴로 내놓자는 거야?"
"그렇지.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스트레스 해소나 집중력 강화를 주제로 하는 메뉴도 만들 수 있을 거야."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시간이 없는데 학생회장을 만나러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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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무대가 설치된 운동장에는 수십 개의 주막을 비롯해서 수많은 부스와 홍보대가 자리 잡았다.
1~2학년을 중심으로 각종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고 주막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정력에 좋은 다진 마늘 부추전 세 장, 추가입니다."
"선배님, 피부 미인을 위한 피망과 시금치 페스트를 사용한 감자 파스타도 추가입니다."
"수아 누나, S라인을 만들어주는 실곤약 골뱅이 무침을 빨리 달래요."
"다 됐어."
조리학과의 주막은 지훈이 제안한대로 힐링 주점을 표방했다.
다만 메뉴의 네이밍은 톡톡 튀는 후배들의 의견대로 약간 변경했고 메뉴도 몇 가지는 추가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어서 항상 손님들로 만원이어서 인근의 잔디밭에 매트를 깐 간이주점까지 생겼다.
'이건 수아를 위해서 만들어야겠어.'
빠른 손놀림으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을 척척 소화한 지훈은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듬뿍 넣고 숙성시킨 매실로 상큼함을 더한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위에 좋은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수아에게 아주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