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회: 1-16(6. 아~우! 냄새, 오늘은 유난히도 지독하네.) -->
"아닙니다.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앉아서 같이 먹자. 이런 일은 나도 함께 하는게 당연한데 사정상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넉넉히 시켰으니까 함께 먹자. 다른 친구들도 부르고."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앉아."
"아닙니다. 일을 해야 해서."
"그러면 조금 후에라도 와서 먹어.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하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마음에는 없지만 인심 후한 선배 노릇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재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때문에 요리를 푸짐하게 시킨 박현식은 후배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계기로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은 후배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이는 손님으로 주막을 찾은 다른 후배들도 마찬가지여서 박현식의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다.
'쓰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왜 안 오는 거야?'
아직 자신과 관련한 소문을 모르는 박현식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자 짜증이 솟구쳤지만 가식적인 미소를 그리며 후배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뭔가 재미나는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들던 그들은 박현식이 다가오는 순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웃음을 그쳤다.
"무슨 얘기를 하기에 다들 웃는 거냐?"
"별 거 아닙니다."
"4학년 동기들이 오려면 같이 한 잔 하려고 했더니, 다들 바쁜지 안 오네."
"어!"
"돈은 내가 낼 테니 함께 마시자."
후배들과 몇 마디 주고받던 현식은 빈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박현식이 다가올 때부터 살짝 경직되었던 후배들은 그가 주저앉을 생각으로 의자를 차지한 순간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인상을 심하게 찌푸렸다.
"왜들 그래?"
"선배님, 거기는 문호 자리에요."
"여자 친구가 찾아 왔다고 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조금 있다 다시 올 거예요."
"의자야,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 가져 오면 되잖아?"
명백한 축객령이었음에도 눈치 없는 박현식은 버티고 앉았고, 불편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후배들은 정중앙에 앉아 있는 2학년 대의원에게 눈짓을 했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이 자리는 저희 2학년끼리 의기투합을 하려고 만든 자리인데 사정을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선배님, 부탁합니다."
"선배님,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랬구나, 알았어!"
후배들에게 까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러워진 박현식은 밀려오는 짜증을 겨우 참아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고 청승맞게 혼자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기도 뭐해서 주막을 빠져 나갔다.
우연의 일치인지, 몇 걸음 앞서가며 통화를 하던 학생회장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그때였다.
"주막은 잘 되고 있는데 박현식이가 와서 기분 잡쳤다."
-박현식 선배가 주막을 왔다고? 그 사람은 자기와 관련된 소문도 모른데?
"그런 얘기가 돌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까 쪽 팔린 줄도 모르고 기어왔겠지."
-박현식 선배 때문에 주막 분위기가 한 순간에 꽁꽁 얼어붙었겠는데?
"그랬지. 너는 그런데 박현식에게 말끝마다 선배라고 하냐?"
-4학년이니까 그렇지.
"걔는 사람 새끼도 아냐! 그러니까 선배라고 부르지도 마. 얘기 들어보니까 4학년 선배들 중에서는 박현식이가 지훈 선배를 일부러 밀었다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더라."
-설마 그랬겠어?
"어쨌든 구조대를 엉뚱한 곳으로 유도한 것은 일부러 그랬을 거야."
-그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더라.
"더 가관인 것은 그래놓고도 지훈 선배를 모함하는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트린 점이야. 그것만 봐도 그 자식은 인간망종에 쓰레기가 틀림없으니까 아예 상종을 말아야 해!"
아무래도 자기 이름이 언급되다 보니 박현식은 학생회장의 통화 내용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엿들음으로서 자신과 관련된 소문의 내용을 대충 짐작해냈다.
'그것들을 전부 어떻게 알았지? 그럼 아까 2학년들도 그것 때문에 날 일부러 피한 것 아냐?'
이제야 자신이 철저히 왕따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 박현식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학생회장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번 MT때의 일이 생각나서 망설여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의 일이 다시 화제가 되면서 자신이 지훈의 구조를 의도적으로 방해한 일이 밝혀질까 두려웠다.
'씨불, 더럽게 꼬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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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우! 냄새, 오늘은 유난히도 지독하네.
9시가 넘어서면서 모든 주막은 주객으로 넘쳐났다.
그중에는 교수들을 비롯해서 정장을 차려입은 졸업한 선배들도 간혹 끼어 있었는데 이는 조리과도 마찬가지여서 김현 교수와 박휘순 교수 앞에는 일곱 명의 졸업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배님들, 더 필요하신 것 없습니까?"
"선배님들, 필요한 것은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대신 가실 때 아주 두둑하게 내놓고 가셔야 합니다."
"샐러드가 맛있던데 그것 하나 더 줄래?"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지훈 선배, 속이 편안해지는 양배추와 브로콜리 샐러드 주문 들어왔습니다."
"김 교수님, 샐러드가 아주 괜찮던데 언제 이런 레시피를 만드셨습니까?"
"교수님, 제가 일하는 호텔에서도 똑같은 샐러드를 만들고 싶은데 레시피를 저희에게도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조리학과를 졸업하면 각종 외식 업체부터 시작해서 급식업체에 취직해서 셰프의 길을 걷는다.
즉, 축제를 맞이해서 학교를 찾은 선배들은 다들 셰프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들은 지훈이가 만든 요리가 워낙 맛있다 보니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호텔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선배는 샐러드를 잘 만드는 김현 교수가 해당 요리의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여기고 그것을 알려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4학년 지훈이가 직접 만든 거야."
"교수님 도움 없이 학생이 직접 만들었다고요?"
"요즘 애들은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아니? 그러니 너희들도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
"이야, 살아남으려면 그래야겠는데요."
"교수님, 그래도 그런 재능 있는 친구가 우리 후배라니 기분은 좋은데요."
"교수님, 이걸 만든 지훈이가 누구입니까?"
"06학번이라 너도 학교 다닐 때 봤을 걸."
"그때는 까마득한 후배라 예쁜 여자 후배 아니면 신경도 안 써서 몰라요."
"그런 녀석이 아직까지 장가도 안 가고 뭐한 거냐?"
"빡세게 일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죠."
간만에 만난 옛 제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교수들은 적당한 시기에 선배들에게 지훈을 소개시켜줬다.
"선배님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06학번 이지훈입니다."
"어서 와라."
"아! 너였구나."
"어! 기억하시네요."
"2006년도 MT때 아마 우리 조였지?"
"맞습니다."
지훈을 기억하고 알아보는 이는 00학번 이영호 선배로 꽤나 유명한 호텔에서 일하는 선배였다.
그런데 이영호를 바라보는 지훈의 눈빛에서는 묘한 그리움이 일렁거렸다.
'이 교수님, 간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이영호는 원래의 시간에서 5년 후에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후각을 잃은 지훈에게 플레이팅을 비롯해서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기본을 완성시켜준 고마운 은사님이었다.
아울러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하면서 상처 입은 지훈의 영혼을 치료해준 소중한 은인이었다.
"지훈아, 선배들이 네가 만든 샐러드가 무척 마음에 든다면서 내가 개발한 메뉴인줄 알고 레시피를 알려달라지 뭐냐?"
"하늘같은 선배님들이 제 레시피를 사용해주시면 제가 더 영광이죠."
선배들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자신을 한껏 낮춘 지훈은 그 자리에서 레시피를 공개했다.
덕분에 술자리는 더 화기애애해졌는데 얘기 도중에 키친 마스터라는 요리대회 프로그램이 언급되었다.
"영호야, 너희 호텔에도 키친 마스터에 셰프를 참가 시켜달라는 협조 공문이 왔지?"
"왔지."
"어쩌기로 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