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7화 (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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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로 전체 회의가 열렸는데 논의 끝에 참가 안하기로 했어. 최소한 순위권에는 들어야 하는데 만약 초반에 떨어지면 호텔의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어서, 그게 걱정스러운가봐."

"당연히 그렇지. 막말로 입상하면 본전이고 그렇지 못하면 망신만 당하잖아."

"너희는?"

"우리도 마찬가지야. 케이블 채널이지만 이번 대회는 무려 4개사가 공동으로 방송한다고 해서 참가를 적극 고려했다가 막판에 포기하기로 결정했어."

"호근형 호텔은 어쩌기로 했어요?"

"호근형이 근무하는 호텔은 수석 셰프가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권레오 셰프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연히 참가하겠지."

"아니, 우리도 이번에는 참가 안한다."

"왜요?"

"우리 수석 셰프님도 원래는 참가자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권레오 셰프에게 어떤 얘기를 듣고 와서는 참가 안하기로 했어."

"어떤 얘기요?"

"이번 대회에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쟁쟁한 세프가 3명이나 참가한다고 하더라고."

"외국의 셰프가 참가한다고요?"

"그건 아니고 유학 가서 현지에 정착한 한국 셰프가 3명이나 대회에 참가를 하는데, 다들 스팩이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대체 어떤 사람들인데요?"

"르꼬르동 블루 출신이 한 명 있고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일본의 츠치 요리학교 출신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 명문 학교를 나와서 현지에서 정착을 했을 정도면 제법 잘 나갈 텐데 요리 대회 때문에 일부러 한국까지 온다고요?"

"그건 아니고 다들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1등 상금이 5억이나 되니까 그걸 노리고 참가를 하나봐.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쟁쟁한 세프 밑에서 제대로 배워서 현지에서도 이름이 꽤나 알려진 사람들이래."

"그 사람들, 대회에 나가서 상금도 타고 이 기회에 자기 이름도 알릴 생각인가 보네요."

"맞아! 그런 것 같아."

"아후~! 호근형 얘기를 들으니까 국내파를 대표해서라도 대회에 참가해서 국내 대학 졸업자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데요."

"야, 국내파와 해외파를 따지게 우리가 축구 대표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슬슬 주막을 마감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어디 가서 한 잔 더 할래?"

"호근형이 쏘는 거죠?"

"교수님이 쏘시겠지."

"암튼 우리는 공짜라는 얘기인데 좋습니다."

"지훈아, 너도 갈래?"

"그래. 귀한 레시피도 공개했는데 같이 가자."

"선배님들 죄송합니다만 저는 여기서 후배들과 뒷정리를 해야 해서 다음으로 미룰게요."

"지훈아, 6년 만에 봤는데 아쉬워서 어쩌냐?"

"다음 기회가 있겠죠."

"근사하게 한 턱 낼 테니까 언제 시간 나거든 내가 일하는 호텔로 놀러와."

"알겠습니다.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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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주막의 뒤편으로 향하는 지훈의눈빛은 유난히도 빛이 났다.

마치 밤하늘의 별을 품은 것 마냥 반짝이는 눈으로 동그란 달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뭔가를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그거야! 내가 키친 마스터에 참가하는 거야.'

키친 마스터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요리 대회 프로그램이었다.

1회 때부터 케이블 방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이 프로는 올해부터 4개의 케이블 채널이 동시에 중계할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였다.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파이널 5에 진출만 해도 상금을 받을 수 있어. 바보같이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지?'

키친 마스터는 우승 상금 5억을 비롯해서 총 상금 10억이 걸려있는 만큼 순위권 안에만 들어가면 유학비용을 조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이번 대회의 시험 내용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박현식, 네가 내게 도움을 줄 때도 있구나.'

원래의 시간에서 지훈은 TV로 중계되는 키친 마스터의 본방을 시청했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씩 방송되는 재방송까지 꼬박꼬박 챙겨봤다.

이는 셰프에 대한 열망이 그때까지는 강하게 남아 있었기에 그런 점도 있지만 가장 친한 친구였던 박현식과 사랑하는 수아가 그 대회에 참가했기에 응원하기 위해서 그랬다.

'수아는 아깝게 탑 10에 못 들었고, 녀석이 그때는 파이널 3까지 진출했었지.'

무슨 계기로 현식이가 키친 마스터에 참가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일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박현식이 선배들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키친 마스터의 얘기를 듣고 참가를 결심했을 것 같았다.

'선배들이 말한 그 세 명중 두 명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었지.'

이번 대회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해외파 셰프가 3명이나 참가하고, 끝내는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중 한명은 건방진 태도로 일관하다가 20명이 진출하는 결선무대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우승자도 대단했지만 그 여자도 정말 대단했었어!'

이전의 시간에서 이번 대회 우승자는 미국 CIA 출신 남자 셰프였는데 지훈의 기억 속에는 그 사람보다도 준우승을 차지한 르꼬르동 블루 출신의 여성 셰프가 더 강하게 남아 있었다.

절대미각을 갖고 있는 그녀는 프랑스 내에서도 꽤나 유명한 셰프였는데 결승전에서는 그녀의 스승이자 프랑스 최고의 셰프인 뽀이도퀴시가 직접 방한해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게다가 미모도 뛰어나서 대회를 계기로 그녀의 팬클럽이 생겨났고, 이후에는 인기를 발판으로 CF도 여러 개 찍었다.

'우승자는 대기업이 세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었지.'

당시 결승에서 우승한 이는 장철우 셰프였는데, 그는 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대기업이 설립한 외식업체로 진출해서 얼굴마담 노릇을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활동은 그리 활발치 않았고 몇 년 후에는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아무튼 그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요리를 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박현식도 그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 많았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해. 그런데 녀석도 이번 대회에 참가할까? 아마 하겠지.'

중간에 주막을 떠나버린 것이 변수이지만 이전의 시간에 그랬던 것처럼 박현식도 키친 마스터에 참가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참가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가 파이널 3에 진출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녀석은 그 대회를 계기로 부쩍 성장하면서 더더욱 교수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했을 거야.'

4개 방송사가 동시에 방송을 하면서 이번 대회는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덕에 현식은 탑 10에 든 순간부터 졸지에 학교를 대표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교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문 선배들에게도 자기 이름 세 글자를 뚜렷하게 각인 시켰다.

그리고 그 효과는 평생을 가서 훗날 동문 전체를 포괄하는 커다란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박현식, 이번에는 어림없다!'

"오빠,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엉?"

"아까부터 쭉 지켜봤는데 뭔 생각을 하기에 계속 혼잣말을 하는 거야?"

"수아야, 우리 키친 마스터에 참가하자."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던 지훈은 수아가 다가오자 키친 마스터와 관련한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수아는 이미 그 대회 참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어! 오빠도 그 대회에 나가려고?"

"이번에는 우승 상금 5억에 총 상금이 10억이라고 하던데, 그 대회에 입상만 하면 유학비용은 만들 수 있을 거야."

"오빠도 르꼬르동 블루에 가려고?"

"셰프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세계 제일의 요리학교에 가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

"정말이지, 마음 변하면 안 돼?"

"당연하지. 사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망설였던 거지, 나도 르꼬르동 블루에 가고 싶었어."

"다음 주부터 원서 접수를 받고 1차 예선은 6월 첫 주에 하고 2차 예선은 6월 셋째 주인데, 기말고사와 겹치니까 준비를 잘 해야 할 거야."

"우리 둘이서 함께 준비하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러게. 오빠가 같이 참가한다니까 벌써부터 힘이 나는 걸?"

"아까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이번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쟁쟁한 셰프도 여러 명 참가한데. 그러니 기대한 성적을 올리려면 열심히 준비해야 할 거야."

"당연하지."

"참! 만약 내가 입상을 해서 상금을 받게 되면 우리의 유학비용은 내가 부담할게."

"오빠,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왜냐하면 우승은 내가 할거 거든."

"그래, 난 준우승에서 만족할 테니까 우승은 네가 해라. 대신 한 턱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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