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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최음제는 광고와는 달리 정신을 몽롱하게 하면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서 상대의 저항의지를 무력화 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최음제라는 이름보다는 강간제라는 이름이 더 적당했는데 박현식은 수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서 그걸 그녀의 술잔에 탔다.
한편 박현식의 제안을 거절한 수아는 MT때의 일을 언급하며 의심 가는 점을 노골적으로 물었다.
"선배, 지훈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나요?"
"수아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아마 너도 어떤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그건 날 모함하려는 자들이 악의적으로 퍼트린 유언비어야."
"선배가 구조대를 늦게 부른 것도, 그리고 구조대를 엉뚱한 것으로 안내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건 내가 술에 취한 상태였고 마음이 급해서 서두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솔직히 그때의 나는 지훈이가 걱정스러워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
"설령 그렇다고 해도 구조대는 바로 불렀어야죠."
"바로 불렀지."
"지훈 오빠 말로는 몇 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던데요?"
"그 시간에 구조대가 달려오려면 시간이 걸리지. 그리고 몇 시간은 절대 아니었어. 아마 그건 지훈이가 착각했을 거야.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 처하면 감각에 문제가 생기잖아?"
"내 기억에도 지훈 오빠가 꽤나 오랫동안 안 보였는데요?"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거기까지 오르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래. 수아야, 부탁하는데 너만이라도 내 말을 믿어줘. 내가 그동안 잘난 척을 자주해서 많은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것은 아는데, 그렇게 형편없는 놈은 아니야."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던 박현식은 천연덕스럽게 준비한 거짓말을 해댔다.
너무도 억울하다며 제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박현식의 모습을 본 수아는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아무렴 친구 사이에 그랬겠어. 아! 몸이 왜 이렇게 나른하고 잠이 쏟아지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러나? 세수라도 하고 와야지 안 되겠어.'
얘기하는 틈틈이 술을 마셨던 수아는 몸이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밀려오자 최음제의 약효가 발휘되는 줄도 모르고 막연히 술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정신을 차릴 생각에 세수를 할 생각으로 화장실을 찾았고, 그곳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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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야, 내 말을 믿어주는 거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선배 말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네요."
"정말이라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믿어줄래?"
"먼저 선배가 지훈 오빠를 찾아가서 중간고사와 관련한 일부터 사과를 하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때의 일과 관련해서 해명을 하세요."
"그렇게 하면 믿어줄래?"
"내가 믿어주는 것보다는 당사자인 지훈 오빠가 믿어주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나요?"
"그 녀석이 의외로 속이 좁은 놈인데 믿어줄까?"
'남들은 몰라도 그놈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아는데 믿어주겠어? 어림도 없지.'
"선배, 지훈 오빠는 절대로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선배가 진심으로 얘기하면 믿어줄 거예요."
"아... 알았어."
'빌어먹을, 놈에게 단단히 빠졌구나. 그나저나 슬슬 약효가 발휘되어야 하는데 왜 이리 반응이 늦어.'
"참! 프랑스는 가는 것은 어쩔래?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널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로 만들어서, 부와 명예를 안겨줄 수 있어."
"선배, 그 얘기는 끝난 거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마세요."
"수아야, 이건 최고의 기회야. 성공하고 싶으면 내 제안을 거절하지 마."
"전 관심이 없네요. 그리고 누구의 도움이 없이 내 노력으로 성공하고 말겠어요."
"수아야,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슬슬 반응이 오는 구나.'
알코올과 결합된 최음제가 활발한 반응을 일으키면서 수아는 점점 밀려오는 수마를 견디지 못해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죠."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하지 않아."
"선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잠이 너무 쏟아지는 것이 잠시만 눈을 붙일게요."
"그래. 내가 있으니까 날 믿고 자."
'큭큭, 어서 자라. 그래야 널 잡아먹지!'
"선배, 미안해요."
"아냐. 신경 쓰지 말고 자."
'낄낄, 이지훈! 오늘밤이 지나면 수아는 내 여자가 되어있을 거다.'
어떻게든 수아와 하룻밤만 보내면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너무도 많았다.
막말로 그녀의 나체 사진을 찍어서 협박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녀를 붙잡아 둔 후에는 충분한 재력을 이용해서 그녀의 환심을 얻어내면 상황 종료였다.
"수아야, 계속 잘래?"
"응, 피곤해."
"그래, 더 자."
'확실하게 하려면 더 깊은 잠에 들게 해서 아예 업어가는 것이 좋겠지.'
약기운에 취한 수아는 비몽사몽간에도 의식은 남아 있었는지 말투가 어눌하기는 했는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긴 현식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녀가 깊은 잠에 빠져들기를 기다렸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수아의 핸드폰에서 유행하는 최신가요가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이크!'
술을 마시다가 멜로디에 깜짝 놀란 박현식은 수아가 깰까 무서워서 비호처럼 휴대폰을 재빨리 집어 들고는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꿨다.
'우리 오빠?'
액정 화면에 나타난 문구와 익숙한 번호를 통해서 전화를 걸어온 이가 지훈임을 확인한 박현식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미소를 그렸다.
'이지훈, 늦었다!'
혹시라도 멜로디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꽉 움켜진 현식은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파워버튼을 눌러서 스마트 폰의 전원을 끊어버렸다.
'이지훈, 혼자서 안달을 해봐야 소용없을 거야.'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을 수아의 가방 속에 집어넣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선 박현식은 카운터로 가서 미리 계산을 끝냈다.
'이 근처 어디에 모텔이 있지?'
원래의 계획은 수아를 차에 태워서 한강 변의 근사한 호텔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수아가 깨어나기라도 하면 그때는 그야말로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었기에 급한 대로 인근의 모텔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아저씨, 이 근처에 모텔이 어디 있죠?"
"조금 전부터 여자 친구가 자는 것 같던데 술이 약하나 봐요?"
"오늘 종강해서 쫑파티 한답시고 일찍부터 술을 마셔서 그래요."
"우리 가게에서 오른쪽으로 40m만 내려가면 무인텔이 있을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저, 잠시만 나갔다 올 테니까 여자 친구 좀 봐주세요."
"걱정 말고 다녀와요."
가게 밖으로 나온 박현식은 치밀하게 모텔의 방까지 미리 잡은 후에 호프로 돌아왔다.
"수아야, 피곤한 것 같은데 가서 자자."
"으~음."
"오빠가 업을 테니까 업혀."
"아~항, 싫어."
"어서, 오빠만 믿어!"
"으~음! 지훈 오빠, 어디야? 빨리 와."
"간다."
애인행세를 하며 다른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긴 박현식은 도와주겠다는 호프 종업원의 친절도 뿌리치며 수아를 업고 모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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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네온사인의 화려한 불빛이 어둠을 장식하는 저녁이 되었다.
계속해서 수아와 통화를 시도하던 지훈은 술집을 비롯한 유흥업소가 즐비한 거리에 당도하자 택시를 멈췄다.
"아저씨, 여기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학생, 고마워요."
급하게 택시에서 내린 지훈은 수아가 말한 호프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아야, 왜 전화를 꺼놓은 거니?'
동석 커플과 쫑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지훈은 키친 마스터와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 웹 서핑을 하다가 수아의 전화를 받았다.
수아는 술에 취했는지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현식과 함께 있으며 MT때의 일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조만간 박현식이 사과를 해올 것이니 그때는 사과를 받고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