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회: 1-22(8. 앞으로는 종종 해줄 테니까 꼭 안아줘!) -->
'박현식, 만약 손끝 하나라도 수아를 건들었을 때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술 자체는 즐겨하지 않은 수아가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낼 정도로 취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지훈은 수아가 현식과 같이 있다고 할 때부터 묘한 불안감에 휩싸여서 현재의 위치를 물었고 득달같이 달려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저기구나!'
한 번도 오지 않은 낯선 곳이라 헤매지 않을까 걱정했던 지훈은 수아가 말한 호프집의 간판을 발견하고 달려갔다.
그러다가 저 멀리 호프 집 앞쪽에서 남자에게 업힌 채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여자를 목격했고, 그녀를 본 순간 수아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저긴 모텔!"
대략 60m에 달하는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린 지훈은 수아의 이름을 부르며 모텔에 들어섰다.
모텔의 프런트는 어두침침한 붉은색 빛으로 가득 찼는데 아무도 없었고, 대신 조금 전에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이제 막 3층에 멈춰 섰다.
'3층이구나!'
수아가 3층에 내렸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지훈은 무서운 속도로 계단을 올랐고, 수아를 업은 상태에서 방문을 열고 있는 박현식을 발견했다.
"박현식."
"어! 지... 지훈아."
"이 개자식."
"지훈아, 오해야. 오해!"
"닥쳐!"
"난 수아를 눕히기만 하고 바로 나갈 생각이었어."
"버러지 같은 새끼! 날 죽이려고 하더니 그게 안 되니까 이제는 수아까지 탐해?"
"아냐, 지훈아."
"수아부터 눕히고 얘기하자."
복도를 가로질러서 박현식의 멱살을 잡은 지훈은 주먹을 한 대 날리려 하다가 행여나 수아가 떨어질까 무서워서 차마 날리지 못했다.
그사이 박현식은 열심히 손사래를 치며 변명을 늘어놨고, 수아를 빼앗아서 안은 지훈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왔다.
"지훈아, 난 수아를 위해서 그랬을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어."
"비겁한 새끼, 그랬다면 당연히 내게 먼저 연락을 했어야지. 그리고 내가 전화를 했는데 왜 안 받아?"
"난 전화가 온지도 몰랐어. 그리고 얼른 눕히고 가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어."
"호프에 가서 CCTV를 확인해보면 알겠지. 따라 와!"
"CCTV?"
다른 시간대의 경험을 통해서 박현식이 수아에 집착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지훈은 그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황으로 봤을 때도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그를 압박하기 위해서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그런데 CCTV가 언급된 순간 박현식의 안색이 확연하게 변했다.
그건 지훈의 추측이 틀림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몰랐나 보지? 가보니 가게 곳곳에 CCTV가 달려 있어서 네가 앉아 있던 자리도 전부 촬영되어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지... 지훈아?"
"왜, 켕기는 게 있나보지?"
"나... 난, 수아가 깰까봐 휴대폰 전원을 껐을 뿐이야."
"추악한 새끼, 끝까지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구나."
"자... 잘못했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실토해."
호프 안에 CCTV가 설치되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카운터와 가게 밖, 그리고 통로 주위만 촬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박현식은 자신이 최음제를 탄 것부터 시작해서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 것까지 모두 나왔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기에 지훈이 자신을 성범죄자로 고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모텔을 빠져 나가는 동안 호프에서 벌어진 일을 고백하면서 변명과 함께 통사정을 했다.
"미안해. 어떻게든 수아를 갖고 싶었어."
"짐승만도 못한 새끼! 너 같은 추악한 놈을 친구로 여기고 아꼈다니......"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개자식, 너 같은 놈은 빵에서 푹 썩어야 해."
"제발, 네가 너무 부러워서 그랬어."
"그래서 날 죽이려고 했던 거냐?"
"아냐! 맹세하는데 그날의 일은 사고였어."
"그런 개소리를 누가 믿을 것 같아?"
"정말이야. 내가 엎어진 것도 우연이었고, 그 이후의 일은 너무도 당황해서 그랬어. 그때의 나는 겁에 질려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 나도 내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어."
MT때의 일을 실토하면 살인미수자가 되기에 박현식은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지훈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지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 미각을 잃은 것을 얘기하면 녀석의 마음이 약해질지도 몰라.'
위기를 벗어나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박현식은 갑자기 울음까지 터트리며 지훈의 용서를 구걸했다.
"지훈아,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주라! 사실 셰프가 되고자 했던 평생의 꿈이 사라진 통에 견딜 수가 없었어. 어차피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에 죽기 직전에 수아를 갖고 싶었어."
"고작 기말고사를 망쳤다고 그런 악독한 짓을 해? 네놈은 끝끝내 변명뿐이구나."
"변명이 아냐. 나, 지난번 교통사고로 신경을 다쳐서 후각을 상실했어. 그리고 지금은 미각까지 잃어서 셰프가 될 수 없어."
"뭐?"
"난 이미 유서까지 작성했고 수아를 얻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생각이었어. 기말고사를 망친 것도, 그 와중에 휴학을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야."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박현식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빌었다.
반면 미각을 상실했다는 말을 들은 지훈은 적잖은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과거로 오면서 운명이 바뀐 건가?'
이전의 시간에서 미각을 잃은 통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지훈은 5년이나 방황했었다.
그러기에 박현식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가 얼마나 큰 절망을 느끼고 있을 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희한하게도 둘의 운명이 바뀐 것이 자신의 회귀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졌다.
한편 지훈의 심경에 변화가 있음을 감지한 박현식은 더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고, 끝내는 지훈의 선처를 이끌어 냈다.
"박현식, 오늘의 일은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다시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지... 지훈아, 저... 정말?"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미각을 잃어도 푸드 스타일리스트나 테라피스트는 가능하다."
"고... 고마워, 지훈아."
+++++++
8. 앞으로는 종종 해줄 테니까 꼭 안아줘!
미각을 잃었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서 박현식을 곱게 돌려보낸 지훈은 수아가 염려스러워 모텔을 찾았다.
약에 취한 수아는 여전히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거친 숨을 토해낼 뿐만 아니라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알송알 맺혀 있었다.
'욕실에 수건이 있겠지.'
수건을 빨아서 가져온 지훈은 걱정스런 마음에 수아의 이마에 난 땀을 조심스럽게 훔쳤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배꼽 부근이 간질거리는가 싶더니 음양오행의 기운이 분출되었다.
'어! 요리를 안했음에도 기운이 분출되네?'
지금까지는 요리를 할 때만 기운이 분출되었다.
그래서 음양오행의 기운은 요리를 할 때만 분출된다고 여겼는데 오늘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수아야, 괴롭더라도 조금만 참아. 자고 나면 다 괜찮아 질 거야."
기운이 분출되는 동안에도 수건을 계속해서 놀리며 정성스레 땀을 닦아내던 지훈은 어느새 수아의 숨소리가 차분해지면서 더 이상 식은땀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양오행의 기운이 몸을 안정시켰나 보네. 어! 그러고 보니 음양오행의 기운이 치료의 효과도 있는 것 아냐?'
지금까지는 음양오행의 기운이 단순히 음식의 맛을 좋게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사람의 건강에도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맞아!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것인데 사람의 몸에도 좋은 것이 당연해. 아! 내가 지금껏 그 생각을 왜 못했지?'
품고 있는 기운의 또 다른 효과를 우연히 찾아낸 지훈은 푸드 테라피를 떠올렸다.
건강한 식자재를 이용해서 건강의 해법을 제공하고 나아가 다치고 병든 몸을 치료케 하는 것이 푸드 테라피였다.
'음양오행의 기운과 푸드 테라피스트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한다면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지도 몰라.'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음을 깨달은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만의 특별한 목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