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23화 (23/219)

<-- 23 회: 1-23 -->

그건 이전의 시간에서 이루지 못한 셰프의 꿈을 이루되, 푸드 테라피스트 시절의 경험을 충분히 살려서 의식동원醫食同原을 실현하는 셰프가 되자는 것이었다.

즉,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건강까지 챙기는 셰프가 되겠다는 것이 과거로 회귀한 지훈의 목표였는데 음양오행의 기운을 이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지훈 오빠, 빨리 와."

"벌써 와서 옆에 있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가 수아의 잠꼬대에 정신을 차린 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며 대답을 했다.

물론 자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대답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그런데 수아는 꿈을 꾸는 것인지 신기하게도 지훈의 대답에 반응을 했다.

"오빠, 어디가면 안 돼! 꼭 옆에 있어야 해."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수아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어디가지 말라는 부탁을 들은 지훈은 침대 밑에 앉아서 쿨쿨 자고 있는 수아의 볼을 어루만졌다.

'수아가 더 이상 속도 안 쓰리고 피부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던데 그것도 음양오행의 기운과 관련이 있을 거야.'

축제 때 지훈이 만들어준 샐러드를 먹고 위염이 완쾌된 수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신기해서 그 사실을 지훈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음양오행의 기운이 치료의 효과도 갖고 있음을 몰랐던 지훈은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우연의 일치이거나 기분 탓이라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수아에게 일어난 변화도 자신이 갖고 있는 기운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 어쨌든 잘된 일이야. 앞으로는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요리를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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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때문에 새벽녘에 눈을 뜬 수아는 붉은 조명 아래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낯선 이곳이 자신의 원룸이 아닌 것을 깨달은 그녀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어제 박현식 선배와 술을 마셨었는데... 설마!'

어제 저녁의 일을 떠올린 수아는 다급히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피다가 침대에 머리를 박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오빠~!"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모텔에 있으며 지훈이 불편한 자세로 한 방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 수아는 안도감부터 느꼈다.

'오빠가 연락을 받고 찾아와서 날 이곳으로 데려왔나 보네.'

대략적인 상황을 추측한 수아는 불편하게 자고 있는 지훈을 침대로 올리기 위해 다가갔다가 바닥에 놓여 있는 수건을 발견했다.

'오빠는 날 챙기다가 잠들었구나.'

수건에 물기가 남아있는 점과 침대 맡에 머리를 두고 있는 자세로 미루어 지훈이 자신을 챙기다가 그대로 잠들었음을 깨달은 수아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자고 있는 지훈을 깨웠다.

"오빠, 침대로 올라와서 자."

"으~응."

"오빠, 몸 상해. 어서!"

"엉, 알았어."

비몽사몽간에 침대 위로 올라간 지훈은 누군가가 자신의 품안으로 파고들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두 팔로 껴안은 상태에서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이는 다름 아닌 수아였다.

"깨어났구나."

"오빠, 언제 온 거야?"

"너, 전화 받고 왔지."

"현식 선배는?"

"그 자식은 경찰에 넘길까 하다가 그냥 보내줬어."

"경찰에 왜 넘겨?"

"아! 너는 아무 것도 모르겠구나."

"오빠,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줘. 내가 어쩌다가 모텔에 왔고, 경찰 얘기는 또 뭐야?"

의식을 차리기는 했지만 몽롱한 상태에서 박현식의 얘기를 꺼낸 지훈은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지난밤의 일을 수아에게 모두 들려줬다.

박현식이 자신에게 약을 먹였으며, 강제로 욕을 보일 생각에 모텔로 데려왔다는 말을 들은 수아는 크게 흥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악랄하고 치사한 짓을 하다니, 정말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네. 오빠, 그런 나쁜 놈을 그냥 보내주면 어떡해?"

"나도 처음에는 경찰에 넘길까도 생각했어."

"그렇게 하지, 왜 안했어?"

"사실 CCTV는 거짓말이라 확실한 증거가 없었거든. 그리고 이번 일이 알려지면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날 것이고, 그러면 너에게 득 될 것이 없어서 그랬어."

"그래도 그런 나쁜 사람은 벌을 받게 해야지."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통에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그런 뻔뻔한 사람이 설마 자살을 하겠어?"

"그 자식, 지난번 교통사고로 신경을 다쳐서 후각을 상실한 통에 거의 모든 미각을 상실했데."

"그 사람이 후각을 잃었다고? 그리고 후각을 잃었다고 미각을 상실한다는 게 말이 돼?"

"후각을 잃으면 미각도 잃어. 그건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런 거야? 그러면 셰프는 못 하는 거야?"

"억지로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아무 맛도 못 느끼는 사람이 요리에 열정을 담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만든 요리가 과연 맛이 있을까?"

"그러면 그 사람이 평소와는 달리 이번 기말고사를 망친 것도 그 때문이야?"

"맞아!"

"아무리 그래도 그런 추악한 짓을 하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

"나도 법의 처벌만 면제해줬을 뿐, 용서 한 것은 아니어서 다시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

"허~참!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화가 나네. 그 사람이 오빠 오기 전에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 했는데?"

"자기가 모든 비용을 부담할 테니 함께 르꼬르동 블루로 같이 가자는 거야. 그리고 귀국해서는 마스터 셰프 자리를 나에게 주겠다는 거야."

"넌, 뭐라고 했어?"

"뭐라고 하기는 당연히 거절했지."

"그래도 좋은 기회이지 않았을까?"

"뭐! 오빠, 진심으로 그러는 거야?"

"큭! 농담이야, 농담."

"기분 나쁘니까 농담이어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게는 오빠뿐이란 걸 알면서도 그래?"

"오! 그런 말을 너에게 직접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데."

"앞으로는 종종 해줄 테니까 꼭 안아줘!"

1년 넘게 애인으로 지냈지만 단둘이서 침대에 누운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키스와 그 이상의 스킨십까지는 종종 나누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선은 넘지 않았다.

이는 아직 학생이란 점도 있지만 그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보다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여겨서 그랬다.

그리고 오늘 서로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한 키스가 시작되었고, 서로를 가리고 있는 허물이 스르륵 벗겨지면서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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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두 조각 낼 것 같은 요란한 괴성이 들려왔다.

하늘은 순식간에 먹장구름으로 뒤덮였고 온통 칠흑 같은 짙은 어둠사이로는 갑자기 피어오른 샛노란 섬광이 까만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이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닭똥 같은 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오빠, 비 온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다더니 처음부터 무섭게 쏟아지네."

"이번 주는 계속 장마라고 하던데 본선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열리겠지?"

"어차피 실내에서 열리는데 상관없지."

"혜미와 동석 오빠는 뭐하고 있을까? 거기도 우기라는데 우리처럼 주구장창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겠지?"

"스콜이라고 해서 매일 같이 한바탕 무섭게 쏟아지고는 이내 그친다고 하던데? 아까 블로그 보니까 열대 과일로 커팅을 한 사진을 올렸던데 봤어?"

"봤어. 오빠, 우리도 대회 끝나면 국내여행이라도 갖다 올까? 개강이 9월 초이니까 시간은 있잖아."

"좋지! 이왕이면 우리도 해외 배낭여행을 가는 게 어때? 여행비용은 상금의 일부를 쓰면 되잖아?"

"그건 대회 끝나고 상금 액수 보고 결정하자."

"이번 대회 우승은 반드시 내가 차지할거니까 나만 믿어."

모텔에서 첫날밤을 보낸 지 어느덧 10일이 지나서 7월 초가 되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통에 더욱 가까워지고 자연스러워진 지훈과 수아는 이틀 후로 다가온 본선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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