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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지훈과 수아는 지난주에 있었던 최종예선을 통과해서 100명이 겨루는 본선에 진출한 상태였다.
"오빠, 그런데 대파는 왜 이리 많이 사자고 한 거야?"
"내 예상에는 이번 본선 미션에서 대파 썰기가 나올 것 같아."
"지금까지는 무를 썰었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바뀔 것 같아."
"오빠 예상대로 대파 썰기가 나오면 대박이겠는데?"
"내가 문제를 예상해내는 능력 하나는 타고 났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야."
키친 마스터의 본선은 20명의 결선 진출자를 뽑는다.
그리고 결선에 오른 20명부터는 합숙에 들어가면서 매주 대회를 진행하면서 몇 명을 떨어트리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과거로 회귀한 지훈은 본선부터 결승전까지의 모든 미션을 알고 있었다.
대파 썰기도 그중 하나였다.
"대파는 통상적인 어긋 썰기로 해야 할까?"
"그렇게 하면 난이도가 쉬워서 미션이 아니지. 보나마나 특별한 조건을 내걸 거야."
"어떻게?"
"내 생각인데 두께와 길이를 제한할 것 같아. 그래야 썰기가 어려워지면서 참가자의 우열을 가리지."
"하긴 그러겠네. 그런데 어떻게 썰어야 난이도가 올라가지?"
"지금까지의 야채 썰기가 셰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칼질의 숙련도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옆으로 길게, 대략 8cm 길이로 썰으라고 할 것 같아."
다른 시간대에서 대회에 참석했던 수아는 대파 썰기에서 고전을 했다.
그 덕에 한 시간 가까이 대파를 썰었고 막판에야 합격했다.
"그러면 두께는?"
"1mm로 얇게 썰으라고 하겠지.
"대파 썰기를 하면서 길이와 두께까지 일정하게 맞추려면 장난 아니겠다."
"그래야 참가자의 우열을 쉽게 구분하지."
추측을 하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지훈이 말한 것은 실제의 미션 과제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수아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파 썰기에 들어갔고, 실습실에는 도마를 울리는 규칙적인 칼질 소리만 울려 퍼졌다.
"타타탁!"
"오빠, 어때?"
"괜찮은 것 같아."
"내 보기에는 오빠 것보다 칼질도 떨어지고 속도도 느린 것 같은데?"
"난 먼저 길이를 맞춘 다음에 썰었어."
"나도 그래야겠다. 참! 최종 예선대회 방송은 오늘 나가지?"
"응."
"오빠와 나는 본선에 진출했으니까 방송에 나오겠지?"
"시간관계상 100명을 모두 보여주기는 어려울 거야. 그리고 아깝게 탈락한 사람도 보여줘야 하는 만큼 안 나올 수도 있어."
"맞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도 여러 명 참가했던데 그 사람들 때문에도 안 나올 수 있겠다."
"그렇지. 그리고 탈락자 중에 외국인 참가자처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사람도 있어서 우리는 안 나올 수 있어."
"엄마에게 TV에 나올 수도 있으니까 꼭 방송 보라고 했는데, 안 나오면 어떡하지?"
"넌 예쁘니까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나올 거야."
"오빠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니까 꼭 나올 거야."
"어차피 결선무대에 진출하면 실컷 나올 테니까 지금은 본선대회에만 신경 쓰자."
"히힛, 그러겠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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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치기는 했지만 잔뜩 흐린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오전, 지훈은 대회가 열리는 특별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왜 날 힐끔거리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집을 나와서 지하철에 오를 때까지 마주친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자신을 힐끔거리며 바라본다는 것을 깨달은 지훈은 살짝 당황해서 얼굴을 매만졌다.
"저 사람, 키친 마스터에 나온 사람이지?"
"그러게. 키친 마스터의 엄친아 같은데."
"화면만 잘 받는 게 아니라 실물도 괜찮은 것 같지 않아?"
"키도 크고 훤칠한 것이 훈남 포스가 진하게 나는 것이 요리사가 아니라 모델을 해도 괜찮겠다."
"너희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너, 키친마스터 안 봐?"
"그게 뭔데?"
"몇 개 케이블 방송사가 공동으로 방송하는 요리 대회 있잖아? 그게 요 몇 년 사이에 얼마나 인기 있는데 아직까지 안 봐?"
"그런 프로도 있었어? 난 몰랐어. 그런데 저 사람이 거기에 나오는 거야?"
"그러니 우리가 아는 거지."
"꽤 괜찮아 보이는데 다운해서 봐야겠다."
"야! 이왕 볼 거면 본방을 사수해."
최종 예선 때부터 방송사의 촬영이 시작되었고, 방송사는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편집의 묘미를 발휘해서 참가자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사는 지훈의 캐릭터를 장철우와 함께 훈남이나 엄친아로 묘사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제법 괜찮은 명문 대학의 조리과에 재학 중인데다가 외모도 받쳐주기에 그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시간대에서 장철우와 함께 훈남이나 엄친아 캐릭터를 부여받은 것은 박현식이었다.
하지만 운명이 비틀린 이번 대회는 그가 불참하면서 그 캐릭터는 지훈의 몫이었다.
'아! 방송을 보고 그러는구나.'
바람결에 들려온 대화소리를 들은 지훈은 사람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방송의 영향력을 여실히 실감했다.
'이제 몇 코스 안 남았네.'
어느덧 대회장에 가까워진 지훈이 마음을 다잡고 있을 무렵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이 지하철에 올랐다.
'어! 강유나잖아.'
늘씬하고 볼륨감 있는 몸매를 드러낸 통에 지하철에 탄 뭇 남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모으는 이는 르꼬르동 블루 출신으로 다른 시간에서는 이번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 강유나였다.
그러니 이번 대회 우승을 노리는 지훈에게 그녀는 최고의 경쟁자였다.
'방송 보니까 여전히 도도했어.'
강유나는 대회 참가자중 최고의 경력을 갖고 있는데다가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실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최종 예선 때부터 우승을 목표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음을 당당하게 밝혔는데, 그러다 보니 방송사는 그녀를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각시키면서 실력을 갖춘 도도녀의 캐릭터를 부여했다.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도도함이 지나치게 강조되나 보니 인기만큼이나 적잖은 안티를 양산했고, 대회가 방송이 되는 동안 계속해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강유나씨, 미안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은 제가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요리 실력을 비롯해서 플레이팅 실력까지 겸비한 지훈은 대회의 미션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남들과는 달리 비범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남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회는 공정치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과거로 회귀한 이상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연이라 할지라도 힘을 얻은 이상 그건 자신의 능력이었다.
'한 가지 약속드리자면 나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내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미안한 감정을 자신과의 약속으로 억누른 지훈은 지하철에서 내리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다가갔고 그 와중에 강유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안녕하세요. 이지훈씨 되시죠?"
"안녕하세요. 그런데 절 아세요?"
"방송에서 봤어요. 참! 저는 누구인지 알고 계시죠?"
"저도 방송에서 봤습니다."
"실력이 아주 좋던데 앞으로 잘해 봐요."
"네?"
"오늘 대회가 끝나면 며칠 후부터는 합숙인데 잘 지내자고요."
"아! 네."
방송에 나온 것처럼 실력에 자신이 있는 강유나는 20명을 뽑는 결선 무대 진출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녀는 지훈도 결선무대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건 달리 말하면 자신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기에 지훈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씩 웃었다.
"방송에서 훈남이나 또는 엄친아라고 소개하던데 실제로 보니 웃는 모습이 귀엽네요."
"강유나씨도 아름다워서 벌써부터 팬클럽이 생겨나는 것 같던데요?"
"저도 인터넷에서 그런 소문이 떠돈다기에 알아보고 해당 카페에 명예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팬클럽 얘기는 귀엽다는 말에 인사차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어서 조만간 그녀의 팬클럽이 생겨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강유나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벌써부터 팬클럽이 생겨난 것 같았다.
다만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이 방송에 나온 것처럼자기주장은 강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