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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이쪽 팬트리에는 없는 식자재가 맞은편에는 있었고 반대로 맞은편에는 없는 것이 이쪽에는 있었다.
그러니 참가자에 따라서는 양쪽의 팬트리를 모두 살펴야만 원하는 식자재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이라는 시간제한에 쫒긴 참가자들은 가까운 팬트리만 살폈고 그 안에 있는 식재료만 가지고 요리에 임했다.
'아스파라거스는 반대편 팬트리에 있나보구나. 어! 슈가로프도 있네. 수아에게 이걸 건네줘야겠어.'
스테이크에 곁들일 아스파라거스를 찾던 지훈은 슈가로프라는 서양 채소를 발견한 순간 수아의 게살 프리티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슈가로프를 챙겨서 반대편 팬트리에서 식자재를 찾고 있던 수아에게 다가갔다.
"수아야, 슈가로프 봤어?"
"아니, 없던데?"
"그럴 줄 알았어. 저쪽에는 있어서 가져왔으니까 네가 써."
"고마워. 그런데 오빠 예상대로 양쪽 팬트리의 구성이 조금씩 다른 가봐?"
"그런 것 같아."
"오빠는 뭐 찾는 것 없어?"
"저쪽에는 아스파라거스가 없던데 이쪽에는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 내가 봤어. 이쪽이야!"
수아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아스파라거스를 찾은 지훈은 격려의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자신의 조리대로 갔다.
'저 여자도 양쪽 팬트리를 다 살피는 구나.'
지훈은 다른 시간대의 경험을 통해서 양쪽 팬트리의 구성이 살짝 다르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반면 강유나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양쪽 팬트리를 다 살폈는데 가만 보니 다른 두 명의 해외파도 그러는 것 같았다.
'얼추 비슷해보여서 반대편 팬트리의 구성이 살짝 다르다는 사실은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을 텐데 양쪽을 살피다니, 확실히 해외파는 뭔가가 다르기는 다르네.'
1시간이 지나면 벌어지겠지만 세 명의 심사위원은 요리에 식재료가 부족하거나 또는 다른 식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든 참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필요한 식재료를 구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사람에게는 감점을 줬다.
'나도 이 프로를 시청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몰랐겠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지훈은 어느덧 7~8분이 지났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앞쪽의 무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있는 세 명의 심사위원은 그 와중에도 참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자신들끼리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다.
"양쪽 팬트리를 모두 살피는 참가자들이 있네요."
"안 심사위원님이 예선전에서 극찬했던 젊은 친구도 양쪽 팬트리를 모두 살피는 것 같은데요."
"역시 기본은 갖춰진 친구네요."
"안 셰프님 젊고 잘생긴 남자라고 해서 후하게 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건 여자라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요리 실력이 없으면 내 관심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그 말은 요리 실력이 있으면 계속 후한 평가를 주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프로를 위해서도 젊고 잘생긴 남자가 결선무대에 오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응당 그만한 실력을 갖고 있어야겠죠."
"에고, 안현숙 심사위원을 생각해서라도 저도 저 친구를 후하게 평가해야겠네요."
"두 분이 그렇게 나오시면 저는 무조건 탈락을 주겠습니다."
안현숙 심사위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젊은 남자는 지훈이었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의 심사위원은 안현숙이 지훈에게 호감을 드러낸다고 해도 심사만큼은 냉철하게 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심사와 관련한 농담까지 건넸다.
"농담은 그만하고 계속 지켜보죠. 어! 15번 참가자는 벌써 요리를 시작하네요."
"갈비찜을 하는 것 같은데 핏물도 아직 덜 빠졌을 텐데 벌써 조리에 들어가다니 걱정스럽네요."
"시간제한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 같은데 핏물을 제거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슨 대책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닐까요?"
"지켜보면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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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심사의 시간이 다가왔다.
3명의 요리사는 참가자가 만든 요리를 살짝 맛보며 들고 있던 챠트에 뭔가를 기재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죠?"
"김치삽겹살말이입니다."
"양배추로 만든 김치를 사용했나요?"
"아닌데요?"
"본인이 맛은 봤어요?"
"아직 못 봤습니다."
"한 번 먹어봐요."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맛볼 때마다 매번 다양한 표정으로 반응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 표정만으로는 합격 여부를 추측하기가 어려웠는데 유독 9번 참가자에게만은 질문을 했다.
"어때요?"
"맛있는데요."
"이게 맛있다고요?"
"네."
"이런 게 맛있다니 전칠성씨 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식감은 이게 뭡니까? 김치는 생 양배추처럼 파삭하고 삼겹살은 양념이 너무 많이 배여서 눅눅하고."
"그건 양념을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소모한 통에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시간에 쫓겨서 김치를 덜 조리했죠?"
"그랬습니다."
"전칠성씨, 지금 바로 이 자리를 떠나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키친 마스터 결선에 오를 자격이 없는 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참가자를 탈락시키고 밖으로 내보낸 심사위원은 평가를 계속했다.
그리고 12번 참가자에게는 합격을 했다며 대기석이 마련된 2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는데 그는 미국의 CIA를 졸업한 허영호였다.
30명까지 평가하면서 6명을 탈락시키고 3명을 2층으로 올려 보낸 심사위원은 31번 강유나를 평가했는데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이지훈씨, 단 호박 스테이크에 특이하게도 식초를 가미한 오이 샐러드를 곁들였네요?"
"그랬습니다."
"무슨 이유죠?"
"지금이 장마철이라 식욕이 떨어지고 식중독의 위험이 높기에 식초를 가미한 오이로 샐러드를 만들었습니다."
"오이의 상큼함과 식초의 시큼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면서 식초의 살균효과를 기대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아주 좋군요."
"감사합니다."
질문을 했던 안현숙 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맛을 보는 사이 강레오 심사위원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질문을 했다.
"이지훈씨, 직업이 뭡니까? 지원서에는 경운대학교 조리학과 4학년 재학 중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확실합니까? 혹시 10여 년 전 부터 특급 호텔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제 나이에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강레오 심사위원의 얼굴 표정이 너무도 딱딱했기에 지훈도 자연스럽게 긴장을 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강레오와 허지연의 평은 최고의 극찬이었다.
"이지훈씨 지금까지의 참가자 중에서 최고의 맛입니다. 장담하건데 이걸 뛰어넘을 수 있는 요리가 오늘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합격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지훈씨, 플레이팅도 따로 배웠는가요? 요즘은 조리학과에서 플레이팅까지 가르칩니까? 맛도 최고지만 이 정도의 플레이팅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즐거워지는군요."
"교수님들의 플레이팅을 틈틈이 보고 배웠습니다."
과거로 회귀하기 전에는 한국 최고의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명성을 날렸던 지훈이었다.
그러니 조리학과의 교수들이라고 해도 지훈의 플레이팅 실력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지훈은 교수들의 플레이팅을 보고 배웠다고 대답했고, 그 대답은 자연스럽게 학과의 명예를 드높였다.
참고로 방송을 통해서 지금의 상황을 보게 된 교수들이 자신들을 띄워준 지훈을 더욱 아끼게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카메라, 이걸 똑바로 잡아주세요. 이만한 플레이팅 실력이라니, 이건 외국의 탑 클래스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운대학교 조리학과가 무척 궁금해지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