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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의 심사위원들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다는 점과 이지훈씨처럼 실력이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기대가 됩니다."
"기대가 큰 만큼 어제는 설레는 밤을 보내겠네요?"
"그럼요. 드디어 시작이라는 생각에 설레서 잠을 설쳤어요."
"끝으로 두 분이서 다정하게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걸어주시겠습니까? 이 부분은 녹음이 안 되니까 어떤 얘기라도 상관없습니다."
"지훈씨, 우리만 유독 질문이 많은 것 같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요."
지훈과 수아가 방송국 로비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촬영하게 한 피디는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그리다가 후배 피디를 불렀다.
"준영아, 이 테이프 바로 편집실로 갖고 가서 잘 따."
"계획대로 러브라인을 그리면 되죠?"
"그래. 그리고 조금 약하다 싶은 부분은 자막을 넣어서 잘 살려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촬영을 해서 몇 장면 더 떠야지 않을까요?"
"그건 버스 안에서 촬영하는 것을 사용하면 될 거야. 좌석배치는 잘했지?"
"염려 마십시오. 번호를 배정해서 이지훈씨와 강유나씨가 함께 앉도록 했습니다."
"방송에는 호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함께 앉는 것처럼 나가야 하니까 연출 흔적이 안 드러나게 했겠지?"
"신경 써서 잘 했으니까 그 점은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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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소에 당도한 첫날은 합숙소 규칙부터 시작해서 결선대회 일정과 진행방식 또 방송 스케줄을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을 오후 내내 진행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 이후에는 참가자들의 자기소개 시간과 서로가 친해지고 의기투합하는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덕분에 따로 술 한 잔 하기로 했던 지훈과 수아 그리고 강유나의 개인적인 약속은 흐지부지 해졌고, 둘째 날부터는 빡빡한 일정의 합숙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결선 1차 대회는 튀김요리와 햄버거 만들기라는 것이 미리 공개되었고 허지연 심사위원의 주도 하에 튀김요리 강습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그사이 TV에서는 지난주에 끝난 본선 대회가 방송되었는데 강유나의 키스 사건이 꽤나 비중 있게 방송되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의도대로 오해가 풀린 장면은 방송에 끝까지 안 나왔고, 덕분에 편집된 화면만 본 시청자들은 지훈과 수아의 관계를 의심했다.
게다가 다음 편 예고에서는 다정하게 방송국에 함께 들어서는 지훈과 유나의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더더욱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지훈아, 시청자 게시판에 온통 너하고 강유나씨 얘기뿐이다."
"성훈 형님도 그게 오해라는 것은 알고 있잖아요?"
"알고 있지. 하지만 그러니까 더 재미있잖아?"
"형은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수아와 유나 누나에게 미안해요. 제작진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이런 식의 편집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합숙 5일차 저녁이 되면서 20명의 참가자는 많이 친해져서 지훈은 이전의 시간에서 친분을 나누었던 박성훈과 친해졌다.
아울러 지훈과 수아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참가자 모두가 알게 되었고, 지훈은 자신보다 4살 연상인 강유나를 누나로 불렀다.
그리고 강유나와 수아는 늘 붙어 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올렸겠지."
"그래도 합숙 첫날 여자 친구와 함께 참가했다고 밝혔는데 이렇게까지 하면 안 되죠. 그나마 수아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떨어져 있었다면 오해를 했을 것 아니에요?"
"제작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마음 놓고 연출을 하는 것 아닐까?"
지훈과 유나는 어찌 보면 키친 마스터의 비주얼 담당이었다.
물론 수아도 결코 뒤지지 않은 미모를 갖고 있지만 화려하면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강유나 덕에 가려지고 있었다.
특히 외국 생활을 많이 한 강유나는 몸에 달라붙은 의상을 주로 입어서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덕분에 얼짱 셰프에 이어서 이제는 베이글 셰프라는 별명까지 얻은 상태였다.
아무튼 방송사가 작정하고 지훈과 유나를 러브라인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확실하게 밀어대고 꾸며대는 통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어서 게시판은 둘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글들로 도배되었다.
"그건 더 말이 안 되죠. 내일 방송국에 가면 피디님을 만나서 얘기해야겠어요."
"피디도 시청률 때문에 그러는 건데 네가 이해해. 어쨌든 이 기회에 너도 유명해지고 좋잖아?"
"불편해서 그렇죠."
만약 수아와 지훈이 실제 연인 사이임을 방송국 관계자들이 빨리 알았더라면 러브라인의 여주인공역은 수아가 맡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합숙 첫날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피디는 고민 끝에 계획대로 기존의 편집영상을 그대로 내보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너무 늦게 알게 된 통에 현실적으로 편집을 수정할 수가 없어서 그냥 내보냈는데 시청자의 반응이 좋게 나오자 지금의 구도를 강행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
막말로 담당 피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시청률이었다.
"마냥 계속 그러겠어? 어느 정도 하다가 말겠지. 참! 내일이 대회라, 다들 연습한다는데 넌 안 갈래?"
"저도 가야죠."
박성훈과 함께 조리시설이 마련된 실습실로 내려간 지훈은 몇몇 여성 참가자들이 웅성거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중에는 수아도 있었는데 그녀는 정미선 참가자와 함께 울고 있는 권준희를 달래고 있었다.
현역 군인인 권준희는 조리부사관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신분의 참가자였다.
"수아야, 왜 그래?"
"장철우씨 때문에......"
"그 사람이 왜?"
"왜기는, 빤 한 것 아니겠어? 이번에도 그 친구가 잘난 척하면서 상처가 되는 막말을 막 퍼부어댔겠지."
"준희 언니, 진정하고 화 풀어. 철우 아저씨도 악한 마음에 그런 것은 아닐 거야. 그리고 수아 언니가 따지러 갔으니까 분명 사과를 받아 올 거야."
5일을 늘 붙어서 지내다 보니 이따금씩 참가자들끼리 의견충돌을 하거나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장철우가 압권이었는데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여러 참가자들과 다퉜는데, 대부분은 그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거나 남을 깔보며 막말을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선씨, 장철우가 이번에는 뭐라고 했어?"
"처음에는 사소한 의견 차이였는데 나중에는 준희 입맛이 너무 싸구려라면서, 군대에서 짬밥이나 만들 것이지 왜 대회에 나와서 대회의 격을 떨어 트리냐면서 핀잔을 줬어요."
"참나, 지는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런 막말을 해?"
"그러게요. 외국 유학이 벼슬이라도 되는지, 너무 잘난 척 하는 것이 완전히 재수 없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 유나가 착해. 유나는 같은 해외파이면서도 그런 같잖은 척은 안 하잖아?"
"어디 그 뿐인 줄 아세요?"
"또 왜?"
"툭하면 대회의 우승은 자기 거라면서 다른 이들은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나 소모품이라면서 얼마나 우리를 업신여기는데요."
"나쁜 새끼, 요리를 만들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할 것인데 어디서 그런 밥맛이 튀어 나왔는지 모르겠네. 퉤! 지훈아, 꼴 보기 싫으니까 네가 꼭 우승해라."
"할 수 있다면 해야죠."
"지훈아, 누구라도 그 사람을 제치고 우승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그 사람, 말하는 것 보면 아무래도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미선씨, 뒤에 뭔가가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 방송국 피디와 단둘이서 한참을 쑥덕거리는 것을 제가 봤어요."
"그거야 그럴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우승을 자기가 차지할거라면서 호언장담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은연중에 방송국 고위 인사와도 잘 아는 것이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
"꼭 뒷말을 해야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이번 대회는 방송국과 놈이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거야?"
"저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에이, 심사위원들이 있는데 아무렴 그러겠어?"
"그럴까요?"
"그렇고말고! 세 분 심사위원들이 어떤 분인데? 그러니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는 거야."
"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면 되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심사가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우리는 심사위원만 믿고 노력하면 되는 거야!"
정미선의 말대로라면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장철우로 이미 정해져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세 명의 심사위원을 가슴깊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박성훈은 그럴 리가 없다며 일언지하에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