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32화 (32/219)

<-- 32 회: 1-32 -->

"청색 공을 뽑은 분은 왼편에 서주시고 붉은색 공을 뽑으신 분은 오른쪽에 서주십시오."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이 같은 팀원으로 지금부터는 철저히 팀별제로 움직이겠습니다."

"각 팀은 최소 3가지 이상의 요리를 해야 합니다."

팀 구성이 끝나면서 지훈은 수아와 장철우 그리고 정미선과 박성훈과 같은 팀이 되었는데 이 상황을 지켜보던 피디는 팀이 갈린 지훈과 유나가 서로 경쟁을 하게 되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른 스태프들과 수군거렸다.

짐작이지만 그는 팀 대결 외에도 승부를 통해서 운명이 엇갈리게 된 지훈과 유나의 관계도 부각시킬 것 같았다.

"지금부터 20분을 주겠습니다. 여러분은 팀별로 상의해서 메뉴 선택과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시면 됩니다."

"팬트리를 살피고 메뉴를 선택하려면 빨리 움직이셔야 할 것입니다."

"팀 미션인만큼 이번 대회는 팀원의 단합이 중요합니다."

"다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대회가 시작되자마자 장철우가 나섰다.

그는 어린이라면 고기와 단 음식을 좋아할 것이 틀림없다면서 스테이크와 과일 퓌레 그리고 컵케이크를 만들자면서 다른 사람의 얘기도 안 듣고 바로 팬트리로 향했다.

"장철우씨, 잠깐만요."

"왜?"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장철우씨 의견대로 하는 것이 좋겠지만 여기는 특별한 곳인 만큼 메뉴를 달리하는 것이 어떨까요?"

"특별한 게 뭐가 있는데?

"여긴 심장병 아이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잖아요."

"그게 어쨌다고?"

"육류와 컵케이크는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많아서 심장에 무리를 줍니다. 그래서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은 메뉴를 선택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장철우의 주장에 이견을 제시한 것은 지훈이었고, 다른 팀원들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장철우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훈의 의견이 합당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깔보는 장철우는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불쾌한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심장병에 좋은 메뉴를 선택하자니, 무슨 약초라도 사용하자는 겁니까? 그런 약초가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는데 무슨 수로 구하자는 것입니까?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이 심사에 70점이나 반영된다고 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꼭 약초가 아니어도 심장병에 도움이 되는 식자재는 많습니다."

"뭐가 있는데?"

"먼저 오메가3와 칼륨과 알긴산을 보유한 연어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체내 지방수치를 낮춰주고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해서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막아주는 만큼 심장병에 좋습니다."

"오! 괜찮은데."

"연어 스테이크라면 아이들도 좋아할 거야."

"또 표고버섯은 엘리다테닌 성분이 있어서 혈액순환을 돕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마늘은 혈전 억제 작용이 있어서 심장병에 아주 좋습니다."

"그렇다면 표고버섯과 다진 마늘로 소스를 만들어서 연어 스테이크를 만들면 되겠네."

"나는 찬성. 수아는?"

"저도 아이들 건강을 생각하면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의 건강까지 생각하자는 지훈의 의견에 다른 팀원들이 동의하자 장철우의 안색은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서기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끝까지 투덜거렸다.

"고작 그런 것들로 좋아질 심장병이면 아이들이 병원까지 입원하겠어? 그리고 고작 한 끼 먹는다고 해서 심장병이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닌데 왜들 난리야?"

"요리는 정성과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요?"

"그건 능력 없는 낙오자들이나 하는 소리고? 다른 요리는 내가 하자는 것으로 하겠다고 하면 나도 양보하지."

"양보가 아니라 팀원들이 논의를 해서 함께 결정해야죠."

"그래서 우리 팀이 지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일 질 거냐고?"

"좋습니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좋아! 어디 맘대로 해봐."

"지훈아, 연어스테이크는 결정 났고 다른 두 가지는 어떤 것으로 하지?"

"검은 콩을 이용한 달 마크니를 하면 어떨까요? 검은 콩과 당근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식이섬유도 풍부해서 심장병에 좋은 효과가 있거든요."

"달 마크니라면 일종의 커리 요리 아냐?"

"맞아요. 그리고 커리의 주원료인 강황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주니까 그것도 심장을 편안하게 해줄 거예요."

"좋기는 한데 아이들 중에 커리를 싫어하거나 맵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어쩌지?"

"그래서 달 마크니를 하자는 거예요. 달 마크니는 다른 커리 요리와는 달리 냄새가 강하거나 맵지 않고 고소하거든요. 그리고 팥을 갈아서 넣으면 단맛이 은은하게 나서 좋아할 거예요."

"지훈아, 설마 팥도 심장에 좋은 거니?"

"맞아요. 팥은 사포닌 성분이 풍부해서 독소를 배출시키고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를 갖고 있어요."

푸드 테라피스트로 활동했던 지훈의 입에서 전문지식이 막힘없이 술술 나오자 팀원들은 감탄하기 시작했고 그 장면은 방송카메라에 빠짐없이 잡혔다.

잠시 후, 메뉴 선택을 마무리한 지훈의 팀원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고 관련 식자재를 가져와서 요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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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놈, 네놈이 책임지겠다고 했겠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일로 심통이 났음에도 장철우는 내색하지 않고 요리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고 속으로는 엄청난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네놈은 조만간 책임지겠다는 말을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장철우는 실수를 가장해서 자신이 맡은 요리를 의도적으로 망칠 생각이었다.

물론 담당 피디와 상의해서 그 부분은 방송에 안 나가게 할 생각이었다.

그럴 경우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도 상대 팀의 음식을 선택할 것이 분명했고, 시합에 패한 자신의 팀은 탈락자를 가리는 탈락미션을 해서 세 명을 떨어트려야 했다.

장철우는 그때 책임지겠다고 했던 부분을 언급해서 지훈이 스스로 미션을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나도 탈락미션에 참가하는 만큼 내가 고의로 그랬다고는 아무도 생각 못할 거야.'

지훈이 스스로 미션을 포기한다고 해도 두 명의 탈락자를 더 뽑아야 했고, 장철우도 당연히 탈락 미션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탈락미션에서 떨어질 리는 절대 없었다.

이는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허지연 심사위원이 자신과 한 배를 탄 운명이라 그랬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그녀는 이재철 전무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장철우와 함께 TJ그룹이 추진하는 외식업체에 몸을 담그기로 이미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러니 웬만큼 실수하지 않고는 자신이 탈락을 하는 불상사는벌어질 수가 없었다.

'맛을 어떻게 망친다.'

장철우가 맡은 음식은 디저트로 제공되는 생과일을 이용한 한천 푸딩으로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게 자연스런 달콤함을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옳지! 쑥 조청을 몽땅 들이붓는 게 좋겠어.'

사람의 미각은 참으로 오묘해서 너무 달면 되레 쓰다고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필요 이상의 단 맛이 느껴지면 오히려 뇌에서 거부신호를 보내는데 장철우는 그 점을 이용해서 음식을 망치기로 작정했다.

게다가 푸딩은 달콤한 음식인 만큼 단 맛을 끌어내기 위해서 조청을 사용했다고 하면 다들 납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쑥은 몸에도 좋은 것이기에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넣었다고 하면 변명으로도 충분했다.

'거기다가 냄새까지 나서 아이들이 싫어할 거야.'

쑥은 제법 강한 특유의 향을 갖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향은 아니었다.

그러니 많은 양의 쑥 조청을 사용하면 그 향기 때문에도 아이들이 선뜻 집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설령 다른 팀원들이 문제를 삼으면 깜박한 통에 실수로 조청을 반복해서 사용했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큰 스푼을 이용해서 상당한 양의 조청을 여러 숟가락 집어넣은 장철우는 계속해서 요리에 집중 하는 척 하다가 자리를 잠시 비웠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자리로 돌아와서는 다시금 여러 숟가락의 조청을 집어넣었다.

'큭큭, 쑥 향기가 벌써부터 올라오네. 잘 됐어!'

제법 강렬한 쑥 향이 피어나기 시작하자 장철우는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같은 시각, 정미선의 도움을 받으며 달 마크니를 만들던 지훈은 벌써부터 소문을 듣고 식당으로 몰려온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는지 하나같이 안색이 창백했는데 기대감과 호기심이 잔뜩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과 마주한 순간 더더욱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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