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회: 1-33 -->
'내 몸속의 기운이 저 아이들의 병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주면 좋을 텐데.'
그간의 경험을 통해 지훈은 음양오행의 기운이 음식의 맛을 높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강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자신이 품고 있는 기운이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며 정성껏 요리를 만들었다.
사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목격했을 때부터 대회의 승패보다는 아이들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부탁이니까 제발 많은 기운이 스며들어 주게 해주십시오.'
음양오행의 기운이 많이 스며들면 들수록 건강에 좋은 것은 당연했기에 지훈은 부디 많은 기운이 요리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거짓말처럼 배꼽 부위에서 기운이 솟구친 것은 그때였다.
'그래.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거야. 더, 더!'
꿀렁 꿀렁~!
기운이 솟구친 것을 느낀 지훈은 최대한의 기운을 끌어내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배꼽에서 분출된 기운이 이번만큼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고,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모든 기운이 남김없이 몽땅 요리에 스며들었다.
"휴~우!"
늘 그렇지만 몸 안의 기운이 빠져나가면 허전함과 함께 공복감이 몰려온다.
덕분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냈던 지훈은 음양오행의 기운이 다시금 급격하게 모이는 것을 느꼈다.
'어! 왜 그래?'
신기하게도 음양오행의 기운은 소모되기가 무섭게 다시 차올랐는데 이번에는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이전보다 더 커지는 것 같은데?'
늘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다시 모여든 기운은 팥알만 했던 이전의 크기를 회복했음에도 더 커지더니 종내에는 메추리알 크기로 커졌다.
'역시 이전보다 더 커졌잖아.'
추측이지만 음양오행의 기운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커지는 것 같았고, 배꼽 밑에서 느껴지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단전 같았다.
'이게 단전이라면 더 커질수록 더 많은 기운을 쏟을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효과도 좋아지겠지.'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단전을 키우기 위해서도 기운을 다시 쏟기로 작정한 지훈은 정신을 집중했다.
'제발!'
음양오행을 기운을 품고 있었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의지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요리에 정성을 기울이다보면 기운이 알아서 분출되었다.
하지만 아까의 기분이라면 자신의 의지대로 기운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 된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의지대로 기운을 분출하는데 성공한 지훈은 기뻐할 겨를도 없이 그 과정을 반복했고, 그러는 사이 마감시간이 임박해졌다.
'배식을 준비해야겠어.'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완료하는 것이 미션의 기본 원칙이었다.
즉, 이번 미션은 배식 직전까지 마쳐야만 했다.
만약 요리를 끝냈다고 해도 배식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되면 그 요리는 심사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저는 요리가 끝났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가요?"
"나도 끝났어."
"지훈아, 우리도 끝났어."
"장철우씨는 어떻게 됐어요?"
"나도 배식을 할 수 있게 세팅을 할 생각이요."
"그러면 지금부터 마무리를 하죠."
###
식당 아주머니들이 배식을 할 수 있게 조리가 끝난 요리들을 배식대로 옮긴 지훈은 플레이팅을 하는 척 하면서 수아와 박성훈이 요리한 연어 스테이크에 음양오행의 기운을 쏟아 부었다.
'저 사람, 왜 자꾸 날 보고 웃지?'
연어 스테이크를 보기 좋게 플레이팅한 지훈은 배식장을 빠져 나가려다가 장철호가 자신을 바라보며 자꾸만 미소를 짓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장철호의 미소에서 호의보다는 악의가 느껴지는 것이 자꾸만 께름칙했다.
향긋하면서도 알싸한 쑥 향이 진하게 풍겨온 것은 그때였다.
'어디서 쑥 냄새가 나는 거지?'
주위를 살피던 지훈은 장철호가 요리한 푸딩의 색깔이 녹색을 띄고 있으며, 쑥 냄새가 거기에서 피어나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지훈씨, 쑥 냄새 좋지? 나는 한국을 오랫동안 떠나 있어서 그런지, 쑥 냄새를 맡으니까 어릴 적 향수가 자꾸 떠오르네."
"쑥을 사용하셨나요?"
"아이들의 건강까지 생각하자며? 그래서 건강을 고려해서 쑥 조청을 사용했어."
"쑥 향이 제법 강한 것 같은데, 조청을 너무 많이 사용하신 것 아닙니까?"
"달콤함을 끌어낼 생각에 조금 많이 쓰기는 했는데 아이들은 무척 좋아할 거야."
지훈의 시선이 푸딩을 향하고 있음을 목격한 장철우는 켕기는 것이 있기에 먼저 선수를 치며 쑥 조총을 사용했음을 알리고는 부랴부랴 세팅을 끝냈다.
그사이 진행 요원들은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며 참가자들의 퇴실을 유도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모두 나가 주십시오."
"여러분은 공정성을 위해서 배식에 전혀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안쪽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모니터로만 상황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30초 남았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이지훈씨, 나가라고 하는데 우리도 나가지."
"잠깐만요."
"스태프들이 나가라고 하는 소리 안 들려?"
"금방 갈 테니 먼저 가세요."
장철우의 미소가 짙어질수록 불안감이 커진 지훈은 함께 나가자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푸딩 하나를 꺼내서 맛을 보았다.
'큭!'
푸딩을 먹은 순간 입안 전체를 뒤덮는 짙은 달콤함에 질린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맛이 왜 이래? 대체 조청을 어느 정도나 들이부은 거야?'
장철우가 만든 푸딩은 단 맛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혀 언저리를 맴도는 쑥 특유의 텁텁함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식감도 좋지 못했다.
'이것도 요리라고 한 거야? 설마 의도적으로 요리를 망친 것은 아니겠지.'
명색이 명문 요리학교 출신의 이름난 셰프가 이런 요리를 하다니 여러모로 수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심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요리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음양오행의 기운이라면 맛의 중심을 잡아주고 조화를 이루게 해서 균형을 맞춰줄 수 있을 거야.'
시간이 있다면 다시 요리를 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그럴 수가 없기에 궁여지책으로 음양오행의 기운을 쏟아 부은 지훈은 맛을 보려다가 스태프의 거듭된 퇴실명령에 배식장을 빠져 나왔다.
'장철우, 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런 짓을 한 거냐?'
다급한 나머지 음양오행의 기운을 쏟아 붓기는 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장철우의 행동이 의심스러웠다.
특히 그가 자신을 보면서 묘한 미소를 계속 지었던 것이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요리를 망친 것 같았다.
'설마 우리 팀이 패배를 하면 그 책임을 내게 전가시키기 위해서? 맞아, 그랬을 지도 몰라!
대기실로 향하는 도중에, 수많은 생각을 했던 지훈은 장철우의 의도를 얼추 간파했다.
'만약 내 짐작대로라면 그자는 대기실에서부터 책임론을 들고 나올 거야. 그래, 우선은 모른 척 하면서 그자가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봐야겠어.'
어차피 자신이 음양오행의 기운을 이용해서 푸딩을 손 봤다는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내색하지 않은 채 장철우의 반응을 살핌으로써 자신의 추측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이 현명했다.
다만 음양오행의 기운이 단맛과 텁텁한 식감을 얼마나 중화시켰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
각 팀에 배정된 두 개의 대기실로 옮겨간 팀원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회장을 비춰주는 대형 모니터를 지켜보다가 아직 지훈이가 들어오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수아야, 지훈이는 왜 안 와?"
"곧 오겠죠."
"이지훈씨는 많이 불안한지 스태프들이 나가라고 해도 자꾸 우왕좌왕하고 있어서 먼저 나왔습니다."
"지훈이가 불안할 게 뭐가 있어?"
"승패의 결과를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으니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장철우씨,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