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34화 (34/219)

<-- 34 회: 1-34(12. 그게 전부 가짜라고?) -->

"무슨 뜻이 아니라 자기가 고집을 부려서 메뉴를 선택했고, 또 자기 입으로 책임을 진다고 했으니 만약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장철우씨, 메뉴 선택은 우리 모두가 상의해서 결정했는데 누가 고집을 부렸다는 거야?"

"나는 처음부터 다른 뜻을 밝혔는데요."

"그래서 어쩌라고?"

"당연히 자기가 한 말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반대로 우리가 이기면 메뉴에 반대했던 장철우씨는 책임을 지고 스스로 탈락미션에 참가할 거야?"

"나는 그런 식의 발언을 한 적은 없는데 왜 내가 그래야죠?"

"허~참! 세상, 그렇게 사는 것 아냐."

"아~우! 얄미워. 성훈 아저씨, 그냥 얘기를 하지 마세요."

"이상하군요. 이지훈씨는 분명히 자기 입으로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난 그 부분에 대한 이행을 요구했을 뿐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려. 니 똥 굵다!"

"뭐요, 그거 욕이죠?"

"왜들 그러세요?"

"어! 지훈아."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

"플레이팅을 하고 왔어. 그런데 왜 다투고 있었던 거야?"

남들보다 늦게 대기실에 들어선 지훈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밖에서 장철우가 하는 얘기를 다 들었다.

그러기에 그가 의도적으로 푸딩을 망쳤다는 것을 확신했다.

"지훈아, 글쎄 장철우씨가 우리가 지면 너보고 책임을 지라고 하잖아?"

"이기면 되죠."

"물론 이기면 되지. 하지만 만약 패하게 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던 것만큼 스스로 탈락미션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예상대로 장철우는 탈락미션 포기를 종용해왔다.

그러나 지훈은 그의 의도대로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만약 패한다면 책임을 져야겠죠. 하지만 패배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이도 책임을 같이 져야지 않을까요?"

"그...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3가지의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중 한 가지 요리로 인해서 우리가 패배하게 된다면 그 요리를 만든 사람도 책임을 져야지 않을까요?"

"그...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고 그런 결정을 내... 내린다는 거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아직 때가 안 묻은 만큼 분명 솔직하게 얘기를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어떤 요리가 문제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훈의 얘기대로 하면 푸딩을 만든 장철우도 위험했다.

아니, 패배의 책임이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구축해온 강력한 우승 후보의 이미지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실수다! 욱한 마음에 내가 아이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미처 생각 못했어.'

허지연 심사위원과 방송사 관계자들이 철저하게 자신을 지원해주는 만큼 조청을 몽땅 들이붓는 장면이나 아이들의 반응은 편집을 해서 방송에 안 나가게 할 수 있다.

솔직히 푸딩을 의도적으로 망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지원을 믿고 그랬다.

하지만 최소한 이 자리에서만큼은 아이들의 반응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에 장철우는 급히 꼬리를 말았다.

"그... 그렇게 하면 탈락미션의 의미가 사라지고 긴장감도 많이 떨어져서 방송국 관계자들이 반대할걸."

"그래서 어쩌자는 거죠?"

"그...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우리가 패하면 원래대로 다 같이 탈락미션에 응하는 게 어때? 보니까 다들 그걸 원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자고."

'저 사람, 왜 저래? 늘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상한데?

'왜 갑자기 꼬리를 말지?'

'이 자식, 푸딩에 무슨 농간을 부린 것 아냐?'

장철우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기에 참가자들은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지훈과 장철우를 번갈아 봤다.

다른 팀원들의 시선과 마주한 지훈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사이 배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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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냄새와 TV에 나온다는 말에 잔뜩 상기된 아이들은 그 나이대의 어린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쉼 없이 재잘거리며 배식판을 이용해서 두 팀이 요리한 음식을 받아갔다.

한편 아이들처럼 배식판을 든 심사위원들은 두 팀의 요리를 음미하며 평가에 들어갔다.

"강레오 셰프님, 어떻습니까?"

"두 팀이 막상막하인 것 같습니다."

"만족스럽다는 뜻인가요?"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똑같다는 뜻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청팀은 연어 스테이크와 달 마크니는 괜찮은데 푸딩이 살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반면 홍팀은 메밀김밥과 새우튀김에 비해서 쿠스쿠스 샐러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두 분과 같은데 그래도 전체적인 면에서 청팀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고심하는 다른 심사위원과는 달리 지훈이 속한 청팀에 좋은 점수를 주겠다고 말한 이는 허지연이었다.

사실 TJ그룹과 방송사로부터 장철우를 지지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그녀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그사이 강레오 심사위원의 얘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면 최고의 요리가 있는 팀을 선택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 최고의 요리는 청팀의 달 마크니이기에 저도 청팀을 선택하겠습니다."

"달 마크니를 맛보면서 묘한 감동에 빠졌기에 저 역시 청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도 청팀입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청팀을 선택한 순간 제작진으로부터 한 장의 쪽지가 날아들었다.

잠시 쪽지를 살피던 심사위원은 제작진과 살짝 눈빛을 나누는가 싶더니 쪽지의 내용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곳 TJ병원 의료진에 의하면 청팀의 메뉴는 심장병에 좋은 식재료로만 이뤄진 아주 건강한 메뉴로 아이들이 마음껏 먹어도 되는 훌륭한 식단이랍니다."

"맛에 이어서 건강까지 챙기다니 청팀은 메뉴 선택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는 이가 심장병 환자임을 고려해서 메뉴를 선택한 청팀에게는 가산점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심사위원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고려한 청팀에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건강까지 고려한 메뉴는 누구의 생각일까요?"

제작진이 결선 3차 대회를 TJ 병원으로 선택한 이유는 방송사의 대주주이자 대회의 협찬사인 TJ그룹을 홍보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시청자들에게 은연중에 TJ그룹은 국민의 건강까지 챙기는 건강한 기업집단임을 알릴 생각에 그랬는데 청팀의 메뉴가 심장병에 좋다고 하자 잘되었다 싶어서 그 부분을 부각시켰다.

한편 방송 작가 중에 한명은 누가 메뉴를 선택했냐는 강레오의 질문에 황급히 스케치북에 지훈의 이름을 적었다.

"아! 이지훈씨의 주장이었군요."

"이지훈씨는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먹는 이의 건강까지 챙기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 셰프들의 수준이 뛰어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감입니다. 여러분, 요리 실력만이 아니라 건강까지 챙기는 한국 셰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심사위원들의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 내용을 모르는 지훈은 대기실에서 다른 팀원들과 함께 모니터를 지켜봤다.

그사이 몇몇 아이들은 음식이 맛있었는지 먹다말고 배식대로 다가와서 몇 가지 음식들을 더 받아갔다.

그중에는 김밥과 새우튀김 또는 연어 샐러드도 간간히 있었는데 달 마크니는 빠지지 않고 다들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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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게 전부 가짜라고?

어둠이 물러난 합숙소 주위에는 아침햇살이 고운 비단마냥 너울거리며 퍼졌다.

바위에 긴 두터운 이끼 위에 달라붙은 이슬은 찬란한 아침햇살을 반사하며 마치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현란한 광채를 사방으로 뿌려댔다.

막 깨어난 촉촉한 대기가 절로 상쾌한 느낌을 주는 아침,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산보를 하던 지훈은 운동장 한쪽 구석의 아담한 연못을 서성이고 있는 강유나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누나, 뭐해?"

"어! 지훈이구나. 아침공기가 상쾌해서 무작정 거닐다가 보니 이곳이더라."

"잠을 잘 못 잤어? 얼굴이 푸석푸석하네."

"탈락미션이 진행된다는데 너 같으면 잠이 편히 오겠니?"

어제 끝났던 결선 3차 대회는 지훈이 속한 청팀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두 팀의 음식을 맛본 아이들은 모든 음식이 맛있었지만 특히 달 마크니가 최고였다면서 청팀에 몰표를 줬다.

그 덕분에 미션에서 패한 홍팀 다섯 명은 오늘 스튜디오로 이동해서 탈락 미션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미션은 가혹하게도 무려 세 명이나 탈락시키기에 가장 뛰어난 요리를 만든 두 사람만 생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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