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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객으로 가득 찬 스튜디오에 세 명의 심사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청석 가장 앞쪽에 자리하고 있던 스태프들은 심사위원이 나타나자마자 박수를 유도했고 방청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들을 환영했다.
"키친 마스터를 기다려주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방청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파이널 3를 뽑는 결선 5차전의 심사를 맡게 된 강레오입니다."
강레오를 시작으로 자기소개를 마친 심사위원은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해가며 특별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페르난도 아드리안 셰프를 소개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아드리안 셰프가 특별 심사위원으로 이번 대회에 합류했다는 말에 방청객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방청석 정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은발의 노신사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다른 방청객과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는 비쩍 마른 체격의 노신사는 아드리안 셰프와 함께 세계 최고의 셰프로 이름을 날리는 뽀이도퀴시 셰프였다.
"어서 오십시오. 셰프 아드리안. 한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파답게 영어가 능숙한 강레오 세프는 통역의 도움 없이 아드리안과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또 한명의 세계적인 세프가 키친 마스터를 찾아왔다며 뽀이도퀴시 셰프를 소개했다.
갑작스런 소개에 자리에서 일어난 뽀이도퀴시는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환영해주는 방청객의 환대에 답례를 했는데 안현숙 심사위원의 돌발제안이 터져 나왔다.
"제작진과 다른 심사 위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뭐죠?"
"아드리안 셰프와 함께 세계 최고의 셰프이자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명장으로 존경받는 뽀이도퀴시 셰프를 특별 심사위원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함께 모시기 어렵다는 두 분 셰프님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세계의 어떤 요리대회도 꿈꾸지 못하는 기적 같은 일이 키친 마스터에서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심사위원으로 모실 수 있다면 대회 참가자에게는 그야말로 평생을 잊지 못할최고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전의 시간에서 뽀이도퀴시는 결승전에 대회장을 찾아온다.
하지만 지훈이 참가하고 수아가 지금껏 살아남는 등 적잖은변화가 생긴 통에 그 시기가 변경되었다.
이는 강유나가 결승전까지 못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에게 방한 일정을 앞당길 것을 권유해서 그리 되었다.
게다가 이전의 시간에는 벌어지지 않았던 아드리안 셰프가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면서 뽀이도퀴시 셰프도 특별 심사위원이 될 것 같았다.
"와~아!"
"짝짝짝."
돌발 제안을 받은 뽀이도퀴시가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스태프들은 방청객들의 박수와 함성을 유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요리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뽀이도퀴시와 아드리안 셰프를 동시에 심사위원으로 모실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화제였기에 제작진도 어떻게든 그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초대받지 않은 제가 심사위원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아드리안 셰프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뽀이도퀴시 셰프, 거기 있지 말고 이곳으로 올라오시지요. 만약 당신이 그곳에 계속 있다면 저는 등 뒤가 따끔거려서 심사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대회 참가자들도 찬성을 한다면 그리 하겠네."
뽀이도퀴시와 아드리안은 그 명성만큼이나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당한 연령 차를 떠나서 상대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사이였다.
그래서일까, 아드리안은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뽀이도퀴시를 정중하게 초대했고 끝내는 대회 참가자가 찬성을 하면 그리 하겠다는 동의를 받아냈다.
잠시 후, 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참가자들은 당연히 동의했고 키친 마스터 결선 5차 대회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평가받는 두 명의 요리사가 심사위원으로 나선 진기한 광경을 연출했다.
"세계의 모든 요리사로부터 존경을 받는 두 명의 셰프를 심사위원으로 모시다니, 그리고 그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심사를 할 수 있다니 오늘 대회는 참가자만이 아니라 제게도 무척 영광스러운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강레오 셰프와 같은 생각입니다. 미리 말하지만 오늘 미션을 통과하신 분은 세계 최고의 셰프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기에 마음껏 자랑스러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뽀이도퀴시 셰프와 아드리안 셰프와 함께 할 수 있다니 저 또한 꿈만 같습니다. 아울러 이런 영광을 마련해주신 TJ그룹의 이재철 전무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방청석에는 이재철 전무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집중되자 자리에 일어나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있는 방청객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런 이재철을 보는 지훈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물들고 있었다.
'저 사람은 그때 그 사람인데?'
결선에 오른 참가자가 합숙을 위해 방송국에 집결한 날, 장철우를 방송국 근처에 내려준 사람이 이재철이었다.
그때도 느꼈지만 장철우와 이재철은 분명 친분이 깊은 사이로 보였다.
게다가 아드리안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전의 시간에서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장철우와 아드리안 셰프의 특별한 관계였다.
다른 시간대에서 20년의 미래를 경험한 지훈은 아드리안 셰프와 장철우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나와 수아가 파이널 5에 진출하면서 변화가 생겼을까?'
참가자에 변화가 생긴 만큼 심사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장철우가 TJ그룹의 고위 임원과 친분이 있는데다가 그에게 요리를 가르친 은사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다니, 어딘지 모르게 수상했다.
'장철우는 왜 날보고 웃는 거지?'
지난번 결선 4차 대회 때도 이상하게 여겼지만 장철우는 의도적으로 미션을 망치려고 했다.
미션에 패하면 탈락미션에 나서야 하는 만큼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가지였다.
'혹시 심사위원을 믿고 그런 짓을 한 것은 아닐까?'
지금껏 단 한 번도 심사위원을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장철우의 이상행동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경우밖에 없었다.
'만약 내 짐작대로라면 나 또한 가만있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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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에 이어서 뽀이도퀴시가 합류하면서 결선 5차전이 시작되었다.
강레오 심사위원이 대회의 시작을 알린 직후 허공에 매달려 있던 미스터리 박스가 내려오면서 오늘의 미션이 공개되었다.
'미션 주제가 멕시코 요리 파히타라고, 이것도 장철우에게 유리하게 변했잖아.'
미션 주제까지 바뀐 것을 확인한 지훈은 장철우에 대한 의심이 더 커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팬트리로 다가갔다.
미션 주제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자신 없어 하던 수아는 수십 가지나 되는 고추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살피고 있었다.
"수아야, 파히타는 다른 멕시코 요리처럼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뒷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야."
"고추의 매콤함을 다른 재료로 중화시켜야 한다는 거야?"
"맞아! 하지만 특유의 강렬한 매콤함은 입안에서 느껴져야 해."
"그렇게 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내려면 쉽지는 않겠는데?"
"멕시코 고추가 화끈하게 맵지만 우리나라 고추처럼 매운 맛이 오래가지는 않으니까 소스만 잘 만들면 돼."
"난 소스도 어떤 것을 써야하는지 모르겠어."
"아보카도를 통째로 간 구아카몰레 소스와 토마토와 고추를 이용해서 만든 살사 소스 그리고 숙성한 생크림을 사용해서 고소함이 살아있는 샤워크림 소스는 꼭 들어가야 해."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는데 오빠는 그런 것을 어떻게 잘 알아?"
대부분의 조리학과는 동양 요리는 한식과 일식 그리고 중국식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서양 요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물론 그것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어서 태국 요리와 북유럽 요리 그리고 멕시코 요리도 가르치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 어디 가서 배웠다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관심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알아봤어. 그리고 멕시코 요리는 경쾌하고 낙천적이면서도 가슴속에는 한을 갖고 있는 멕시코인의 애환이 담겨 있어서 깊은 맛이 우러나야 해."
"그건 우리나라 요리와 비슷하네."
"그렇지. 다만 뒷맛이 깔끔하니까 은은한 맛이 계속 우러나는 우리와는 달라."
"그 순간만 맵게 하려면 고추를 잘 골라야겠네?"
"맞아. 그리고 고추는 한 가지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맵기와 맛에서 차이가 나는 두 가지 고추를 함께 사용하는 게 좋아."
"그러려면고추를 직접 맛봐야겠네."
"당연하지. 참! 고추의 붉은색이 살짝 드러나게 하고."
"알았어. 오빠, 고마워! 오빠 덕에 그나마 파히타 요리에 대한 감을 잡은 것 같아."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세계 각국의 요리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요리에 담겨 있는 그 나라의 문화까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멕시코 요리와 파히타에 대한 개괄적인 특징을 수아에게 들려준 지훈은 팬트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엄선했다.
참고로 미션이 진행되었다고 해도 요리를 거들어 주지만 않으면 참가자들끼리 미션 주제에 대한 대화는 가능했다.
물론 경쟁자를 돕는 그런 행위를 하는 이는 지훈이 유일했는데 어쨌든 그의 이런 행위는 대회의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었기에 심사위원들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에 수아뿐만 아니라 얘기를 함께 들은 박성훈도 파히타에 대한 감을 잡고 요리준비에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