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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뿐만이 아니라 장철우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의 요리에도 기운을 쏟아 부은 지훈은 조리가 끝난 파히타를 먹기 좋고 보기 좋게 플레이팅 했다.
미션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심사위원의 음성이 터져 나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모두 그만, 멈춰주십시오."
"이제는 평가의 시간입니다. 평가는 두 분의 특별 심사위원과 함께 할 것이며, 오늘 합격하신 세 분만이 결선 6차전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요리를 이 앞에 있는 심사대로 옮겨 주십시오."
심사대로 다가간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곳에 요리를 올려놓고는 한 사람씩 요리에 대해서 설명했다.
박성훈을 필두로 시작된 설명은 장철우를 마지막으로 끝났는데 장철우는 멕시코 본래의 맛을 재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지금부터 시식을 해볼까요?"
"아드리안 셰프, 시작하시죠."
"좋습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은 참가자들이 만든 파히타를 조금씩 맛보고는 생수로 곧장 입안을 헹궈냈다.
그사이 다섯 명의 참가자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심사위원들의 안색을 살폈다.
"뽀이도퀴시 셰프, 어떻습니까?"
"세 명의 요리는 우열이 확실하게 갈리는데 다른 두 명의 요리는 상당히 곤혹스럽습니다."
"우승자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1위와 2위 그리고 5위는 확실하게 구별이 되는데 3위를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1위가 누구이고 5위가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1위는 먹자마자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를 쓰고 판초를 입은 채 콧수염을 휘날리며 라쿠카라차 리듬에 몸을 흔드는 멕시코 사내를 떠올리게 한 요리입니다."
"멕시코 전통의 풍미를 아주 잘 살렸다는 평가 같은데 그 참가자가 누구입니까?
"1위는 한 가운데에 있는 요리이고 5위는 미스터 박의 요리입니다."
"한가운데라면 이지훈씨의 파히타가 최고라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아드리안 셰프는 어떻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이지훈 셰프는 세계 최고의 천재입니다. 나는 그의 파히타를 먹으면서 라 메르세드 시장의 골목을 뛰어다녔던 어린 시절을 떠 올렸습니다."
"멕시코 출신인 당신이 보기에도 이지훈 참가자의 파히타가 최고인가 보군요. 그러면 가장 불만족스러운 요리는 어떤 것입니까?"
"나도 뽀이도퀴시 셰프와 같은 생각입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요리와 그 옆에 자리한 여자 셰프의 요리에 낙제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2위는 누구입니까?"
"강유나 양입니다."
"아드리안, 나와 같군."
"뽀이도퀴시 셰프, 맛은 정직한 것 아니겠습니까? 강유나 양의 파히타도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강레오 셰프의 생각은 어떻소?"
"저 역시 1위와 2위 그리고 5위는 아드리안 셰프와 똑같습니다만 3위와 4위는 다른 것 같습니다."
뽀이도퀴시에 이어서 아드리안도 박성훈을 꼴찌로 지목했다.
그런데 아드리안은 수아의 파히타를 4위로 지목했고 강유나의 파히타를 2위로 지목했다.
'헙!'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두 명의 요리사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훈을 1위로 지목하고 강유나를 2위로 지목하자 당황한 것은 허지연 심사위원이었다.
장철우의 파히타를 1위로 평가했던 그녀는 맞은편에 자리한 강레오마저 그들과 생각이 같다고 하자 황급히 평점을 고쳐서 장철우를 3위로 변경했다.
그사이 수아와 장철우의 파히타를 다시 맛본 뽀이도퀴시의 평가가 이어졌다.
"나는 김수아양에게 3위를 그리고 장철우씨에게 4위를 주겠습니다."
"뽀이도퀴시 셰프,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두 개의 파히타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색감과 플레이팅에서 훨씬 앞선 김수아양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저 역시 그래서 김수아양에게 3위를 줬습니다."
결선 5차전은 3명만 살아남는다.
그런데 3명의 심사위원이 같은 평가를 내린 이상 1위와 2위 그리고 5위는 확정되었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수아와 장철우가 겨루는 양상이었는데 4명의 심사위원이 2:2로 갈린 이상 안현숙 심사위원의 심사에 따라서 탈락자가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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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의 심사가 계속 이어지는 사이 참가자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오빠, 너무 떨려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아."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자."
"수아야, 합격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언니,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럼. 내가 보기에는 네가 만든 파히타가 최고였어."
"언니, 누가 되었든 오늘 저녁에 한 잔 해요."
"수아야, 오늘은 미선씨가 쏜다고 했으니까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보자."
"성훈 아저씨,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리는 것이 꼭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파이널 5에 든 것도 대단한 일이니까, 누가 되었든 탈락자는 슬퍼하지 말고 당당하게 떠나자."
"그럼요!"
"놀고들 있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훈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이 긴장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여유로운 장철우는 깔보는 시선으로 다른 참가자들을 바라봤다.
한편 심사를 끝낸 심사위원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박성훈을 앞으로 불렀다.
"아저씨, 파이팅!"
"성훈 아저씨, 설마 우승한 것 아니에요?"
"설마?"
수아와 유나의 격려를 받으며 앞으로 나간 박성훈은 잔뜩 긴장한 시선으로 심사위원을 바라봤고, 그 직후 강레오 셰프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박성훈씨, 멕시코 요리를 만들어 본 적 없죠?"
"그렇습니다."
"혹시 파히타를 먹어본 적은 있습니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어봤습니다."
"파히타는 자극적이지만 뒷맛이 깔끔해야 하는데 박성훈씨의 파히타는 맵기만 하지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박성훈씨의 도전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키친 마스터의 앞치마를 벗고 퇴장해주십시오."
"그동안 많이 배웠고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동안은 우승자를 가정 먼저 불렀기에 혹시나 했지만 박성훈은 탈락했고, 심사위원들은 그 다음으로 지훈을 불렀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좌우에 자리하고 있던 수아와 유나와 가볍게 포옹한 지훈은 꼴좋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철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자신의 탈락을 예감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건가?'
최선을 다했지만 주최 측이 농간을 부린 이상 결과를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만 자신은 떨어져도 수아가 남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지훈씨, 예전에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요리를 했습니까?"
"네?"
"뽀이도퀴시 셰프는 물론이고 아드리안 셰프까지 당신의 요리에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아드리안 셰프는 당신을 세계 최고의 천재 요리사라는 극찬까지 했습니다."
"아!"
"이번 대회의 우승도 이지훈씨의 몫입니다."
"이지훈씨 축하합니다. 저쪽의 대기석으로 옮겨 주십시오."
"강레오 셰프,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탈락을 예상했다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말에 감정이 복받친 지훈은 수아와 유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그사이 방청객에서는 약속대로 응원단을 이끌고 온 동석이 지훈의 이름이 새겨진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묵묵히 심사위원 석에 앉아 있던 뽀이도퀴시가 앞으로 나선 것은 그때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드리안 셰프와 잠깐 얘기를 나누었는데, 장차 세계 최고의 셰프가 될 이지훈 셰프와 악수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저보다는 이지훈씨에게 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지훈씨 괜찮겠습니까?"
"제가 영광입니다."
뽀이도퀴시의 청을 들은 지훈은 자신이 심사위원 쪽으로 다가가서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영어로 대화가 오간 통에 무슨 말인 줄 몰랐던 방청객들은 스튜디오 양쪽에 붙어있는 대형 모니터에 번역된 자막이 올라오자 뒤늦게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터트렸다.
반면 지훈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인상이 심하게 구겨졌던 장철우는 뽀이도퀴시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떨 군 채 주먹이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