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회: 2-7(3. 오빠나 그러지 마?) -->
"맞아! 팀을 잘 뽑았어야 했어. 만약 개인전이었다면 장철우씨는 보나마나 최하위로 떨어졌을 거야."
"당연하지. 심사위원들이 그걸 놓치겠어?"
"그나저나 장철우씨는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파이널 5까지 진출했을까?"
"억세게 운이 좋았나 보지?"
장철우가 고의로 조청을 들이부었음을 모르는 다른 참가자들은 그가 운이 좋아서 파이널 5까지 진출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날의 일을 계기로 장철우의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졌다.
한편 지훈과 윤영휘 피디의 성화에 상당량의 조청을 집어넣은 장철우는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잠시 자리를 비웠고, 지훈은 그 틈을 이용해서 뜰채로 상당양의 조청을 건져내면서 한마디 했다.
"그때도 이랬거든요!"
"그랬구나."
"역시 지훈이가 팀을 살린 거였어."
"장철우, 정말 운이 좋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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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빠나 그러지 마?
배식 카트와 함께 십여 명의 의대생이 병실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부터 배식 카트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잔뜩 기대어린 눈빛으로 식판을 들고 다가오는 의대생을 바라봤다.
"윤수진 환자."
"선생님, 저예요."
"너였구나. 이것 받을래?"
"어! 왜 이것뿐이에요?"
"뭐가?"
"그때 먹은 카레가 없잖아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단다. 이 병실에 있는 사람은 연어 스테이크와 푸딩밖에 못 먹어."
"싫어요! 난 카레를 먹고 싶단 말이에요."
"수진이의 병과 관련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 줄래?"
"싫어요. 엄마, 난 카레 없으면 밥 안 먹을래."
이번 실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유영용은 보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환자를 여러 집단으로 분류해서 배식했다.
즉, 모든 요리를 다 먹는 환자 집단부터 특정 팀의 요리만 먹는 환자집단 그리고 1~2가지의 요리만 먹는 여러 개의 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의대생들로 하여금 그 분류가 철저히 지켜지도록 관리하게 했다.
한편 요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합숙소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도 두 개의 팀을 그대로 유지했다.
"피디님, 우리는 지금처럼 팀을 유지한 채 강유나씨를 도우면 되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이렇게 팀을 나누어서 요리를 하게 됩니다."
"어디서요?"
"병원 말고도 곳곳에서 여러분들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요?"
"고민 끝에 고아원으로 정했습니다."
"고아원이라면, 그곳의 고아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게 되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화요일까지 사흘 내내 그런 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나요?"
어제부터 시작된 탈락자들의 재 합숙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 5박 6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에 이어서 내일까지 연거푸 많은 사람을 상대로 요리를 만든다고 하니 탈락자들은 남은 일정도 강행군의 연속인가 싶어서 그 이후의 일정을 물었다.
"아닙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이지훈씨와 강유나씨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만의 비법이나 노하우를 알려주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가 지훈이나 유나씨에게 뭔가를 알려준다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히려 배워야지, 가르쳐 줄게 뭐가 있다고요?"
"뭐든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특정 한 사람의 우승을 기원하면서 자신의 비법이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에이, 이것도 연출이네?"
"방송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뭐, 대충은 알겠습니다."
담당 피디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탈락자들의 비법까지 익혀서 더 대단해진 지훈과 강유나가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는 식의 장면을 연출하고 싶은 것 같았다.
같은 시각, 지훈은 합숙소를 찾아온 TJ음료의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지훈씨?"
"저는 좋습니다만 제가 모델이 되면 광고효과가 있을까요?"
"이지훈씨가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얼마나 '핫' 한데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계약서에 서명만 하십시오."
"촬영은 언제 하는 것입니까?"
"키친 마스터측의 양해는 이미 구한 상태로, 다음 주 금요일에 촬영할 계획입니다."
"알겠습니다."
어제는 라면과 카레의 CF 계약을 체결했던 지훈은 오늘은 여성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기능성 음료와 관련한 CF까지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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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22일.
조리학과 학생회실은 수많은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저마다 응원 구호가 적힌 피켓을 만들고 있는 학생들은 며칠 후에 벌어질 결승전의 응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동석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선배님, 어때요?"
"괜찮다. 잘 만든 것 같아."
"선배님, 제 것은요?"
"그것도 좋아."
"우리가 이렇게까지 준비했으니까 지훈 오빠가 우승하겠죠?"
"방송 안 봤어? 지훈이는 당대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부터 장차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될 것이라는 극찬을 받은 천재 요리사인데, 당연히 우승해."
"제발 지훈 선배가 우승해서 우리 학과의 명예를 드높여줬으면 좋겠어요."
"지훈이라면 당연히 우승한다니까!"
지훈이가 대회에 출전해서 승리할 때마다 경운대학교 조리학과도 매번 거론되면서 유명세를 함께 탔다.
그 덕에 조리학과를 진학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에게 경운대학교 조리학과는 꿈의 학과가 되었고, 학교 측에서는 다음 학년도부터 조리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적극 고민하고 있었다.
"선배, 다른 학과의 학생들도 함께 응원을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떡하죠?"
"오라고 그래."
"한두 명이 아니니까 그렇죠."
"그렇게 많아?"
"얼마나 많은지 장난 아니에요."
"선배, 학교측에 스쿨버스를 추가로 배정해달라면 안 될까요?"
"교수님께 얘기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다가 사람이 부족해서 버스가 남으면 미안하잖아?"
"학교 곳곳에 응원을 함께 가자는 소자보를 붙이면 엄청 모이지 않을까요?"
"그래요, 선배. 그렇게 해요."
"알았어. 난 교수님을 만나서 스쿨버스 증차를 부탁해볼게."
그길로 곧장 학과장실을 찾아간 동석은 스쿨버스의 증차를 부탁했다.
각종 외식업체에 진출한 동문 선배들로부터 축하의 전화를 받고 있던 학과장은 동석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하다가 또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걸려온 전화는 국제전화였는지 학과장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통화를 했고, 중간 중간에 지훈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통화가 끝난 직후에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펄쩍펄쩍 뛰었다.
"교수님, 왜 그러세요?
"동석아, 기뻐해라. 방금 어디서 전화가 걸려왔는지 아니?"
"프랑스 아닌가요?"
"맞아! 르꼬르동 블루의 관계자가 전화를 해왔는데 우리 학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싶다는 구나."
"깊은 인연이라면, 방송에 나온 것처럼 지훈을 그쪽 학교로 보내달라는 건가요?"
"그것만이 아니란다."
"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
"매년 우리학과 학생들에게 프랑스 요리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싶다면서 자기 학교로 보내달라고 하는구나."
"지금도 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적지 않은 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못가는 거잖아요?"
"그런 평범한 조건이라면 내가 이렇게 기뻐하겠니?"
"또 뭐가 있는데요?"
"학비 면제는 물론이고 기숙사는 없지만 학교 인근에 아파트를 잡아줄 테니 4명을 보내달란다. 물론 아파트 비용도 르꼬르동 블루에서 부담하고."
"학비면제에 아파트까지 지원해준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