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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처음부터 이지훈으로 정해진 상태였고 이지훈은 실력이 없음에도 TJ그룹의 선택을 받아서 우승자가 되었다고 했다.
아울러 TJ 그룹이 조만간 외식산업에 뛰어들 것이며 그 업체의 홍보 모델로 이지훈을 낙점했다고 썼다.
그리고 그 증거로 결승전이 끝나기 무섭게 방영되는 지훈을 모델로 한 각종 CF를 제시했다.
물론 그것들 외에도 자신과 이재철 그리고 담당 피디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적당히 각색해서 그럴싸하게 꾸몄다.
"큭큭, 이 사람은 누구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서 콕콕 해주네."
장철우가 문제의 글을 올리자마자 이른바 키보드 워리어로 불리는 수많은 방구석 폐인들이 즉각적으로 달라붙었다.
진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은, 아니 진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그들은 마치 옆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것처럼 얘기하면서 TJ그룹과 지훈을 추악한 범죄자로 몰아갔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자신을 경운대학교 조리학과 졸업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지훈의 요리 실력이 형편없는 사실은 조리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학과 내에서도 따돌림을 받고 있다면서 지훈을 옹호하는 댓글이 보이면 즉각적으로 반박 댓글을 달았다.
"킥킥, 이지훈. 내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 너 같은 놈이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된다고? 까고 있네. 웃기는 소리, 작작하라고 그래!"
자신보다 먼저 반박 댓글을 달아주는 통에 장철우가 무척 고맙게 생각하는 이는 박현식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같은 피시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네놈들이 뭘 안다고 지껄여? 세계 최고의 요리사도 돈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야. 돈을 받은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못하겠어?'
장철우의 글에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것들 중에는 지훈을 옹호하고 장철우의 글을 치졸한 비방글이라고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고, 뽀이도퀴시와 아드리안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돈 몇 푼에 명예를 팔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어! 이 새끼 봐라?"
지훈을 옹호하는 댓글이 보이면 여지없이 욕설을 섞어가며 반박을 하던 박현식은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댓글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재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자신을 경운대학교 조리학과 재학생으로 밝힌 그는 박현식에게 경운대학교 조리학과 졸업생이 확실하면 정체를 밝히라고 했다.
"미쳤냐. 내가 왜 정체를 밝혀? 그러는 너부터 정체를 밝히시지? 어디서 조리학과 재학생이라고 사기를 쳐."
문제의 글과 박현식의 댓글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댓글의 주인공은 동석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제의 글을 발견한 그는 르꼬르동 블루와 CIA가 경운대학교 조리학과에 제안한 내용까지 밝히며 문제의 글이 악의에 가득 찬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박현식에게 거듭해서 정체를 밝히라면서 자신의 학생증을 스캔해서 올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현식은 조리학과 졸업생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부딪쳤고, 자연스럽게 주춤거렸다.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장철우의 글이 악의에 찬 비방 글이라는 댓글이 달린 것은 그때였다.
지훈을 비롯해서 장철우를 제외한 결선 진출자가 모두 나온 그 사진에는 관련 기사가 링크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은 결선 진출자들이 요리를 통한 봉사를 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지훈이 1억을 쾌척하기로 한 사실이 공개되어 있었다.
"미치겠네. 하필이면 누가 이런 기사를 올린 거야."
관련 기사가 링크되면서 지훈을 비난했던 사람들이 주춤거리자 장철우는 자신의 글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많은 댓글을 달았다.
그중에는 결선 참가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세세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문제의 글을 작성한 이가 장철우라고 주장하는 댓글이 달렸다.
'헉! 어떻게 알았지?'
장철우를 글의 작성자로 지목한 이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 몇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먼저 뒤풀이 자리에 오직 장철우만 없으며, 뒤풀이가 열리고 있던 시각에 문제의 글이 올라왔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문제의 글을 작성한 이가 결선 참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세세한 내용까지 알고 있는 것이 장철우가 틀림없다고 했다.
"우라질, 어떤 새끼야?"
댓글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장철우를 글의 작성자로 지목하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특히 조금 전까지 같은 편에 서서 지훈과 TJ그룹을 욕했던 키보드 워리어까지 나서서 장철우를 비난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엄청난 비난과 욕설에 직면한 장철우는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댓글을 보는 순간 자신이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안 되겠다. 뭔 일이 생기기 전에 글을 삭제하는 게 좋겠어.'
문제의 글을 이대로 두면 무슨 사단이 나겠다는 생각에 겁이 난 장철우는 글을 삭제하고는 부랴부랴 피시방을 떠났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캡처된 문제의 글은 '장철우 비방'이라는 제목으로 각종 사이트를 떠돌았다.
게다가 피시방을 급히 나서는 그의 사진과 함께 문제의 글이 최초로 작성된 컴퓨터의 아이피 주소가 해당 피시방이라는 사실도 공개되면서 장철우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덕분에 수많은 네티즌은 장철우가 중상모략을 했음을 알게 되었고, TJ그룹의 고발로 그는 다음 날 저녁에 철장에 갇혔다.
그런데 비방 사건의 불통은 장철우에게만 떨어진 것이 아니어서 같은 피시방에서 열심히 댓글을 달았던 박현식도 함께 잡혀갔고, 이 사실은 뉴스를 통해서 보도되었다.
"동석 오빠, 뉴스 봤어?"
"뭐?"
"장철우가 유언비어 유포 및 명예훼손죄로 경찰에 끌려갔데."
"그 글을 장철우가 작성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그랬나봐. 그런데 더 웃긴 것은 박현식 선배도 같은 죄로 잡혀갔데."
"그 자식이 왜?"
"우리 과를 졸업한 동문 선배라면서 지훈 오빠를 비방한 사람이 박현식이래. 그 사람, 너무 어이없지 않아?"
"정말?"
"그래. 조금 전 뉴스에 그게 나왔나봐."
"미치겠다. 그 놈은 왜 그러고 살까?"
"사이코니까 그러겠지. 암튼 그 일로 다들 난리가 났어."
경운대학교 조리학과는 매년 8명을 르꼬르동 블루와 CIA에 장학생으로 보낸다.
그건 순전히 지훈이 이룩해낸 성과였다.
그 때문에 조리학과의 재학생들에게 지훈은 영웅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를 비방하고 중상 모략한 박현식은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예전에도 그러한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극도로 분위기가 안 좋아서 학생회 제명 얘기도 나왔다.
후일담이지만 이번 일로 박현식은 경운대학교 조리학과와 인연이 아주 끊겨서 복학도 못했다.
다만 함께 잡힌 장철우와는 새롭게 인연이 이어졌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지훈과는 오랜 악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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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9월 하순이 되면서 어느덧 가을 분위기가 물씬 피어나기 시작했다.
키친 마스터에 참가하느라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던 지훈은 수아와 동석 커플과 함께 학원가에 자리한 프랑스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 불어가 안 늘어서 미치겠다."
"나도 마찬가지야."
"지훈아, 지금이라도 영어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어차피 통역사가 영어로 수업내용을 얘기해주고 교재도 영어본이 있다는데 그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단순히 요리만 배우려면 그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요리도 문화이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불어는 반드시 배워야 해."
"그거야 그렇지만 생각도 못했던 불어를 배우려고 하니까 머리에 쥐나려고 그런다."
르꼬르동 블루의 교육과정은 9개월로, 1년에 다섯 번에 걸쳐서수강생을 받는다.
지훈과 친구들은 그 다섯 번의 모집과정 중에서 내년 3월에 수강신청을 할 생각이었다.
이는 11월 말이 되면 기말고사가 끝나는 만큼 다른 동기들과 함께 졸업을 제 때에 할 수 있어서 그랬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언어였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바로 프랑스로 넘어가서 어학원을 다니면 불어 실력이 확 늘어날 거야."
"그래도 안 늘어나면 어떡하지? 요즘 들어서 부쩍 드는 생각인데 이제는 머리가 굳었는지 단어도 잘 안 외워져."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성인이 되어서 외국어를 익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지훈 일행은 수강을 두 개나 신청해서 매일 3시간씩 불어를 배웠고 심지어 방송도 프랑스 방송만 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