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50화 (50/219)

<-- 50 회: 2-14 -->

"차동석입니다."

"김수아예요."

"오혜미입니다."

"아가씨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루피에르씨가 기다리고 계시니 들어가시죠."

지훈 일행은 입구에 나와 있는 흑인남녀가 어쩌면 마리안의 양 부모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소개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안의 양부모가 그녀를 무척 사랑하고 아낀다는 얘기만 들었지, 백인인지 또는 흑인인지 따로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프리카 이주민 2세인 그들은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잠시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간 지훈 일행은 그곳에서 마리안의 양부모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마리안에게 많은 것을 베푼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마리안을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을 하겠습니다."

"마리안이 여러분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마리안은 여러분 덕에 한국 생활이 매우 즐겁고 보람 있었다면서 큰 신세를 졌다고 했어요."

"아닙니다. 신세는 우리가 마리안에게 졌습니다."

"마리안 덕에 프랑스어도 많이 배웠습니다."

"듣기로 프랑스어를 몇 개월 밖에 안 배웠다고 들었는데 아주 잘하는군요."

"아직은 서툴러서 모르는 말이 더 많습니다."

"여기서 지내다 보면 더더욱 빠르게 프랑스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지훈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준 마리안의 양부모님은 일행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식당의 한쪽 벽면에는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현직 프랑스 총리와 악수를 하는 루피에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훈, 왜 그러죠?"

"사진속의 저분은 프랑스의 총리이지 않나요?"

"맞아요. 쿨럭~! 총리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우리는 같은 당에서 함께 의원생활을 했습니다."

"루피에르는 하원의 의장이에요."

"아! 마리안이 그런 얘기는 안 해줘서 몰랐습니다."

"이해합니다. 프랑스도 정치인은 대중들로부터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사람입니다. 듣기로 한국도 그렇다죠? 쿨럭."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하하하~! 시장할 텐데 어서 드세요. 프랑스도 손님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명장 뽀이도퀴시의 극찬을 받은 지훈 셰프가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군요."

"아닙니다. 훌륭합니다."

"빈말이라도 고맙군요. 언제 시간이 나면 지훈 셰프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시간 나는 대로 그렇게 하죠."

마리안의 양 어머니인 아니타는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이 요리 같은 살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는데, 마리안에게 얘기를 들었는지 뽀이도퀴시와 관련한 일을 알고 있었다.

한편 그녀로부터 요리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훈은 흔쾌히 승낙을 하다가 거친 기침을 연신 해대는 루피에르를 바라봤다.

"쿨럭~! 미안하군요. 내가 원래 천식이 심해서."

"여보, 제발 담배를 끊으세요. 나와 마리안의 간절한 부탁인데 부디 들어줘요."

"노력은 해보겠소."

'기침이 많이 거친 것이 안 좋은데.'

###

파리의 겨울은 한국보다 더 혹독했고 매서웠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며 두 달 동안 오전에는 어학원을 다니고 오후에는 유학생들의 스터디 모임에서 열심히 공부한 지훈 일행은 프랑스어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덕분에 지금은 주위의 프랑스인들로부터 프랑스어를 잘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일상적인 회화가 가능해졌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종종 튀어나왔지만 문맥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들 준비됐으면 가자."

"나는 준비 끝났어. 혜미야, 가자."

"알았어. 금방 나갈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재를 챙긴 지훈 일행은 어학원을 가기 위해서 루피에르 부부의 집을 나섰다.

지훈 일행이 다니는 어학원은 파리 시내의 샹젤리제 거리 인근에 위치한 어코드라는 유명 사설 어학원이었다.

주당 29시간씩 총 12주짜리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들은 현재 10주차 수업을 받고 있었다.

"아! 뭐야?"

"오빠, 그냥 무시해."

"젠장, 아침부터 재수 없게 저놈들을 만나냐?"

"동석 오빠, 어딜 가든 저런 사람들은 있잖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

"저 새끼는 우리를 볼 때마다 매번 저런 짓을 하니까 더 열 받잖아?"

지훈 일행이 지하철역의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우르르 몰려오던 한 무리의 프랑스인 중에서 두 명의 사내가 지훈과 동석을 향해서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이어서 손가락을 이용해서 자신의 눈을 쭉 찢은 후에 지하철 역 안으로 사라졌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제스처였는데 더 짜증나는 것은 그들이 지훈 일행을 볼 때마다 매번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기분이 상한 동석은 투덜거렸고 지훈도 씁쓸해했다.

하지만 꼭 그들이 아니라고 해도 이따금씩은 당하는 일이었기에 훌훌 털어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훈아, 프랑스가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가봐?"

"백인들이 뿌리 깊은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나라든 똑같고, 그건 프랑스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동양인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잖아?"

"암튼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이런 꼴을 당할 때마다 괜히 이 나라까지 싫어지려고 그래."

"저건 개인의 문제로 봐야지, 그 일로 프랑스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지 않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기분이 더럽잖아."

"그럴수록 더욱 거세게 견뎌내야지. 매번 반응했다가는 우리가 먼저 지칠 거야."

프랑스 생활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늘보다 더 심한 인종차별도 당할 수 있기에 지훈은 동석을 물론이고 살짝 의기소침해진 수아와 혜미까지 격려했다.

"지하철 왔어."

"타자."

입구에서의 일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지훈 일행은 좌석에 앉은 상태에서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단순한 말이 아니라 멜로디에 맞춰서 흘러나오는 한국 노래였다.

"어! 이 노래는?"

"동석 오빠. 리아의 신곡이야."

"맞아! 나도 이 노래 들어봤어. 한국에서는 노래가 발표된 12월부터 난리가 아니었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데."

"아! 이 노래, 너무 좋다. 리아의 목소리도 너무 맑고 아름답게 들리고."

주위의 많은 프랑스인들이 듣고 있는 노래는 리아의 노래였다.

그녀는 다른 시간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미로운 발라드로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음악시장을 강타하고 있었고, 빠르게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고 있었다.

"지훈아, 리아하고 같이 CF 한 적 있지?"

"응."

"그때 많이 친해졌냐?"

"조금."

"혹시 사인은 안 받아뒀냐?"

"안 받은 것 같은데."

"야! 안 받고 뭐 했어?"

"누가 이렇게 뜰 줄 알았냐?"

"아깝다. 그때 친해졌으면 한국 돌아가거든 리아와 사진도 같이 찍고 사인도 받을 수 있었잖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얘기를 해볼게."

"쳇!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리아를 네가 무슨 수로 만나?"

"사람 일은 모르는 건데, 우연히 다시 만날 수도 있지."

동석은 모르고 있지만 지훈은 지금도 SNS나 채팅 어플을 통해서 리아와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게다가 리아는 지훈이 강력 추천해준 노래로 스타가 되었기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모 프로그램에서 그런 사실을 공개한 적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