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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어서 와."
"지훈, 몸은 괜찮은 거지? 뉴스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때도 어딜 다쳤던 것은 아냐."
"다행이야. 대사님을 비롯해서 한국에 있는 많은 프랑스인들이 널 보게 되면 감사의 말을 전해달래."
"마리안, 우리는 찬밥인거야?"
"동석, 무슨 소리야? 난 네 사람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어."
"마리안, 그 거짓말 정말이야?"
"입에 침을 발라야겠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호호~! 한국도 좋았지만 집에 오니까 너무 좋아. 그리고 네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뻐."
그동안 지훈 일행의 프랑스어 실력이 부쩍 늘어난 것처럼 마리안의 한국어 실력도 유창해졌다.
반면 한국어를 모르는 루피에르 부부는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몰라서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파파와 마미 때문에 이제는 프랑스어를 사용해야겠어. 네 사람, 프랑스어 실력은 많이 늘었어?"
"마리안, 프랑스어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 배우면 배울수록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발음은 많이 좋아졌는데?"
"그래도 프랑스에 온지 12주가 되어 가는데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계속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향상될 거야. 내 경험인데 언어는 결국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향상되는 것 같아."
"마리안, 배고프죠? 우리가 간만에 실력발휘를 했는데 어서 들어가요."
"오!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아빠, 얼른 가요. 지훈을 비롯해서 여기 네 사람이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몰라요. 아빠와 엄마도 그 맛을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네 엄마와 나도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단다."
잠시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간 루피에르 부부와 마리안은 한상 가득 잘 차려진 식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루피에르 부인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너무도 아름답게 플레이팅 된 요리들을 보고 아이처럼 박수까치 치며 감탄했다.
"엄마, 어때요. 대단하죠?"
"이렇게 아름답다니 차마 먹을 수가 없구나."
"죄송합니다. 이런 기회를 진즉에 만들었어야 했는데 저희가 무심했습니다."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촉망받는 셰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감동을 주다니 감격했어요."
"엄마, 맛은 더 대단해요. 그리고 이쪽에 있는 음식들은 한국 음식들이에요. 이건 잡채라고 하고 이건 떡갈비에요."
"지훈아, 음식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럴 생각이야."
일행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선 지훈은 루피에르 부부에게 한국 음식에 대해서 소개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기관지와 폐에 좋은 식재료들을 열거하면서 루피에르의 천식에 좋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했다.
"지훈, 내 천식을 감안해서 그런 식재료로 요리를 한 것인가?"
"아저씨의 천식을 감안해서 메뉴를 선택한 것은 사실입니다."
"쿨럭~!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그런 식재료를 사용한 것은 아니고 원래 그런 식재료가 들어가는 요리를 했다는 건가?"
"맞습니다."
"아빠, 한국음식은 건강에 아주 좋아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구나."
"아빠도 앞으로는 종종 한국 음식을 드세요. 참! 지훈은 음식으로 많은 병을 고치고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쿨럭~! 음식으로 병을 예방하고 고친다고?"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을 했는데 한국에도 그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음식과 약은 근본이 같다는 말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얘기는 나도 들어봤네."
"여보, 당신 건강에 좋다는데 많이 드세요."
"그래야겠소."
루피에르는 음식으로 병을 예방하고 고칠 수 있다는 지훈의 말을 반쯤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솔직히 음식과 약이 근본이 같고, 음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니 선뜻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다만 좋은 식재료라면 몸에 해롭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편히 먹었다.
"아빠, 어때요?"
"호~오! 맛이 아주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는 구나."
"아빠 천식에도 좋다니까 많이 드세요. 엄마는 어때요?"
"기대했던 것 이상이야. 농담이 아니고 오늘 먹은 요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맛있는 것 같다."
"그렇죠? 아빠, 이것도 드셔 보세요. 이건 잡채라는 건데 한국에서는 파티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태국의 볶음 국수와 비슷한 것 같구나."
"면 요리라 그렇게 보일 거예요. 하지만 한국의 잡채는 야채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어서 훨씬 더 균형 잡힌 요리에요."
"마리안, 이 음식은 뭐니? 맛도 좋지만 색색의 파프리카가 살짝 들어가서 보기에도 좋구나."
"엄마, 그게 불고기에요."
"아! 이게 불고기였구나. 그런데 달콤한 맛은 왜 나는 거지?"
"그건 양파와 함께 배를 갈아 넣어서 그렇습니다."
"설탕은 안 들어갔는가요?"
"전혀 안 들어갔습니다."
마리안도 그랬지만 루피에르 부부도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제법 많이 먹었다.
그사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지훈은 벌꿀과 함께 달인 홍삼차를 내왔다.
"루피에르 아저씨, 홍삼은 알고 계세요?"
"건강에 좋은 것으로 한국의 홍삼이 아주 유명하다고 알고 있네. 하지만 그 향과 맛이 독특해서 먹기가 어렵다고 들었네."
"동양인은 홍삼 냄새를 아주 좋아하는데 반대로 서양인들은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끓인 홍삼은 냄새가 거의 안 나니까 부담 없이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아주 쓰다고 들었는데?"
"드셔 보십시오. 쓴 맛을 거의 못 느끼실 것입니다."
"아빠, 드셔보세요. 이게 몸에는 최고로 좋은 거예요."
"지훈, 나도 한잔 줄래요."
"여기 있습니다, 부인."
지훈은 홍삼과 벌꿀만 달인 것이 아니라 아주 소량의 생강과 사과도 함께 달였다.
사과는 벌꿀과 함께 홍삼의 쓴 맛을 중화시키고 생강은 사과와 함께 냄새를 잡아주는 효과가 있는데 이건 푸드 테라피스트로 활동할 때 개발한 레시피였다.
"아빠, 어때요?"
"냄새도 안 나고 맛도 좋구나."
"홍삼은 스테미너에도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니코틴을 체외로 배출 시키고 폐와 기관지에도 좋은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일 드시면 좋으실 것입니다."
많은 얘기가 오가며 화기애애했던 그날의 만찬은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그런데 지훈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루피에르가 어느 순간부터 기침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그날 밤 루피에르 부부는 참으로 오랜만에 부부관계를 맺었는데 다음날 루피에르를 대하는 부인의 표정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루피에르 부인은 지훈에게 다가와 살짝 수줍은 표정으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지훈, 그것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나요?"
"네?"
"홍삼차 말이에요. 그게 루피에르에게 아주 좋다는데 매일 권해야겠어요."
"아! 부인에게는 꼭 알려드릴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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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안 잡아먹어!
메트로 12호선에 몸을 실은 지훈 일행은 보쥐하흐가에 자리한 Vaugirard 역에서 하차한 후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쳐서 아담한 4층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가까운 커다란 유리창에 마크와 함께 1895라는 파란색 숫자가 써진 이곳은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로 평가받는 르꼬르동 블루였다.
"다들, 좋은 아침."
"어서들 와."
"마크, 어제 뭐했기에 얼굴이 그리 푸석푸석해?"
"어제 파리의 미녀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지."
"또 클럽을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