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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상황실입니다. 무슨 일이죠?
"누군가가 마약을 갖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방금 마약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와 주십시오."
-먼저 장소와 신분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여기는 시네마테크 지하에 있는 렉스 클럽이고, 저는 지루입니다. 파리 시민이고요."
-마약을 갖고 있는 자는 어디 있죠?
"그자들은 클럽 안에 있고, 아시아인 남자들입니다."
-남자들이라면 몇 명이라는 거죠?
"두 명입니다."
-그자들이 마약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까?
"제가 그 두 놈의 아시아인이 자신들은 물론이고 동행한 프랑스 여자들의 술잔에 마약을 몰래 집어넣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
-뭐라고요? 그 말은 두 명의 아시안 남자가 우리나라 여성에게 마약을 몰래 투약했다는 것입니까?
프랑스는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마약법이 엄격하다.
그래서 마약범으로 잡히면 전화사용도 금지되어서 설령 억울하게 잡혔다고 해도 어디에다 연락도 못한다.
게다가 마약소지가 확인되면 그때는 바로 중범죄자 취급을 당해서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런 마당에 은연중에 깔보고 있는 아시아 남자가 자국 여성에게 몰래 마약을 투여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게 되자 경찰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놈들, 여자들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속히 와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인근의 경찰을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은 경찰은 무선망을 통해서 신고 받은 내용을 알렸다.
무전을 통해 상황을 들은 경찰은 아시아 남자가 자국 여성을 강간할 목적으로 마약을 몰래 투여한 것이 틀림없다면서 온갖 욕설을 토해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지루, 어떻게 됐어?"
"곧 경찰들이 몰려 올 거야."
"우리는 여기를 벗어나야지 않을까?"
"미쳤냐? 우리가 목격자인데 증언을 해야지. 그리고 노란 원숭이들이 저지른 짓을 여자들에게 똑똑히 알려줘야지."
"알려줘서 뭐하게?"
"멍청아, 우리가 증언을 해줘야 여자들이 교도소에 수감이 안 되지. 그리고 우리 덕에 교도소를 안 가면 여자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큭큭큭, 그것까지 생각하다니 대단한데."
"기다려봐. 우리가 경찰서까지 따라가서 증언을 해주면 여자들은 고마워서라도 절대 그냥은 안갈 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그 노란 원숭이들은 어떻게 될까?"
"경찰들이 알아서 조져 줄 거야. 너도 뉴스 보면 알겠지만 파리 경찰들이 유색 원숭이들은 확실하게 두들겨 패잖아."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계 이민자와 밀입국자의 숫자가 엄청난데 그들의 상당수는 범죄와 관련이 있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경찰들이 종종 과잉대응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몇 년 전에는 폭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하물며 아시아 인이 프랑스 여자를 강간할 목적으로 마약을 투여했다면 경찰들이 곱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같은 시각, 이유도 모른 채 엄청난 음모에 휘말린 지훈은 쥬디와 함께 먼저 테이블로 돌아왔다.
"쥬디, 한 잔 할래?"
"나는 그만 마실래."
"아직도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기분은 괜찮아. 멋진 남자를 잃은 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대신 좋은 친구를 얻었잖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나는 목이 말라서 한 잔 할래."
잔을 치켜든 지훈은 목을 축일 생각에 삼폐인을 마시다가 배꼽 밑의 기운이 갑작스레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혀와 목젖에서 느껴지는 샴페인의 맛이 아까와는 살짝 달라서 급히 내뱉었다.
"지훈, 왜 그래?"
"샴페인 맛이 이상해."
"탄산이 날아가서 그런 것 아냐?"
"그건 아냐. 내 것만 그러나?"
몸속의 기운이 이유 없이 솟구칠 리는 없었기에 의구심이 생긴 지훈은 동석의 샴페인도 맛보았는데 단전의 기운이 솟구친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러지?'
거듭되는 이상 현상에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생긴 지훈은 쥬디의 양해를 구하고 그녀의 샴페인을 맛보았고 마찬가지로 똑같은 경험을 했다.
"내 것도 맛이 이상해?"
"응. 샴페인을 새로 따라봐야겠어."
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색다른 현상이 이상한 지훈은 빈 물 잔에 샴페인을 새로 따라서 확인을 해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전의 기운이 이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묘하지만 맛도 달랐다.
"지훈, 어때?"
"이건 괜찮아."
"이상한데, 왜 그러지. 지훈, 무슨 착각을 한 것 아냐?"
"쥬디, 난 요리사라 일반인들보다는 맛을 구분하는 미각이 발달되어 있어."
"아! 그렇지. 혹시 오랫동안 노출된 상태로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이것들은 버리는 게 좋겠어."
잔에 있는 샴페인은 맛이 살짝 다르기도 하지만 묘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마시기가 꺼려졌다.
이는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사그라지지 않고 기도 부위를 계속 맴도는 점과 몸 안에서 뭔가가 배출되는 기분이 들어서 더 그랬다.
그건 어떻게 보면 음양오행의 기운이 몸 안에 들어온 나쁜 것을 배출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웨이터, 여기 있는 잔은 전부 치워주고 새 잔으로 교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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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수분 만에 무려 여섯 대의 경찰차가 렉스 클럽 앞에 당도했고,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지루와 포그바는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여깁니다."
"우리가 신고자입니다."
"그자들은 안에 있습니까?"
"지금 열심히 춤을 추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안내하겠습니다."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나타난 경찰들은 잔뜩 성난 표정으로 지루와 포그바를 앞세우고 클럽 안으로 향했다.
갑작스런 경찰의 출현에 경비들은 그들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성난 경찰을 막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지훈은 테이블로 돌아온 다른 일행들과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고 있었다.
"경찰들이 무슨 일이지?"
"싸움이 벌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우리 쪽을 보지."
"저기입니다. 저쪽에 앉은 아시아인 두 명입니다."
"저자들이 여자 몰래 술잔에 마약을 탔습니다."
"지훈아, 우리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클럽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이목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그사이 테이블 바로 앞으로 다가온 경찰들은 권총까지 들이대며 지훈과 동석을 위협했다.
"꼼짝 마라."
"무슨 일이시죠?"
"네놈들을 마약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겠다."
"마약법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노란 원숭이 새끼들, 네놈들이 아까 여기 있는 여자들의 술잔에 마약을 집어넣은 것을 우리가 똑똑히 봤다."
"추악한 아시안 새끼들, 감히 프랑스에서 프랑스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해?"
모든 일이 자신들의 계획대로 술술 풀리자 기세가 오른 지루와 포그바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해서 떠벌렸다.
한편 조와 포그바의 얘기를 들은 지훈은 아까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이상 현상이 마약 때문에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아울러 두 명의 사내가 쥬디의 일로 앙심을 품고 지금의 음모를 꾸몄음을 알게 되었다
'몸에 안 좋은 것이 들어와도 음양오행의 기운이 반응을 하는 구나. 그렇다면 나쁜 기운을 배출한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을 거야.'
우연찮게 단전의 기운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효능을 알게 된 지훈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