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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기자 분들도 같은 심정이겠지만 지루와 포그바는 우리의 영웅인 지훈에게 크나큰 모욕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과 프랑스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치욕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그게 프랑스의 자화상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갈수록 심해지는 인종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특위 구성을 상. 하원에 제안할 생각입니다."
지루와 포그바가 인종차별 주의자이며 그로 인해서 이번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그러기에 노련한 정치인인 루피에르는 그 부분을 언급하며 이번 기회에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취재진의 관심사는 지훈인지라, 그들은 지훈을 붙잡고 수많은 질문 공세를 했다.
덕분에 경찰서 안마당은 인터뷰 장으로 변했다.
"이지훈씨, 이번 일로 프랑스에 실망하지는 않았나요?"
"한국 속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날 음해한 자들은 미꾸라지이고 대다수 프랑스 국민은 이내 맑아지는 물과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프랑스에 실망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오늘 클럽을 같이 간 쥬디라는 여자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함께 공부하는 동료의 소개로 만난 친구입니다. 우리는 여러모로 통하는 것이 많은 좋은 친구입니다."
"혹시 두 분이 애인 사이는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애인은 따로 있습니까?"
"있습니다."
"혹시 그분도 파리에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녀는 저와 같은 한국 사람으로 함께 요리를 배우는 학생입니다."
"그 말을 같은 르꼬르동 블루를 다닌다는 말입니까?"
"거기까지만 하시죠. 이런 자리에서 그 친구를 공개하는 것은 그 친구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 같으니까 더 이상의 질문은 안 해줬으면 고맙겠습니다."
여자 친구와 관련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지훈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그러나 취재거리를 계속해서 찾던 기자들은 주위를 살폈고 그 와중에 쥬디를 발견하고 몰려갔다.
사실 오늘 일은 따지고 보면 쥬디로 인해서 비롯되었기에 취재진은 쥬디까지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쥬디씨, 이지훈씨와는 어떤 사이인가요?"
"지금은 친구 사이인데요."
"지금은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그건 이후에는 다른 사이로 변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나와 지훈은 앞으로도 친구로 지내게 될 거에요."
"그러면 지금은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대로 얘기하면 난 처음부터 지훈에게 관심이 많아서 적극적으로 호감을 드러냈어요."
"그게 잘 안 되었나요?"
"지훈은 아주 매너 있는 신사였어요. 난 지훈을 통해서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한국 드라마에 나온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지훈은 여자 친구가 있다면서 나의 노골적인 유혹을 뿌리쳤는데 그 와중에도 날 배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유혹이 실패했다는 건가요?"
"맞아요. 그랬죠. 아!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까였어요!"
"네?"
"한국식 표현이에요. 저, 개인적인 얘기를 해도 될까요?"
"뭐죠?"
"프랑스 여성들, 기회가 닿는다면 한국 남자를 사귀세요. 한국 남자들은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매너 있고 자상하고 착해서 오직 사랑하는 여자에게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답니다."
"쥬디씨,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는 지훈씨에게 여전히 호감을 갖고 있나 봅니다."
"물론이죠.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모든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요."
한류가 일찍 퍼진 일본과 중국을 비롯해서 동남아 여성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서 프랑스에서도 퍼지고 있었는데 쥬디는 한술 더 떠서 드라마에 비춰지는 한국 남자의 모습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니 쥬디의 인터뷰를 시청한 프랑스 여성들은 한국 남자에 대한 더욱 큰 호감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인터뷰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녀의 인터뷰가 방송에 나온 직후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프랑스 까인녀' 라는 검색어가 등록되었다.
후일담이지만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서 쥬디는 한국에 들어와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게 되고, 수많은 프랑스 여성이 쥬디의 거짓말에 속아서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쥬디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지훈이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여성층에서 인기가 많았던 지훈은 쥬디의 인터뷰를 계기로 순정남의 이미지까지 더해지면서 더더욱 인기가 더욱 상승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수많은 남성들이 지훈에게 고마워하는 감정을 드러내며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점이었다.
아무튼 사건의 모든 전모가 밝혀지게 되자 다시금 바빠진 것은 TJ 그룹의 이재철 전무였다.
"광고는 어떻게 됐습니까?"
"바로 재편성했습니다."
"파리 현지 촬영은 문제없겠죠?"
"그건 취소가 안 된 상태였기에 계획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다행이군요. 리아씨에게도 파리 촬영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연락했겠죠?"
"물론입니다."
예정된 촬영을 취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약 해지에 손해 배상까지 염두에 뒀던 TJ 그룹은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훈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더욱 상승하자 모든 것을 원상 복구했다.
다만 지훈이 인터뷰 말미에 여자 친구의 존재를 공개한 일로 가수 리아와 엮으려고 했던 일이 시작도 하기 전에 틀어진 것이 문제였다.
"전무님, 리아와 이지훈씨의 염문설을 유포하려고 했던 일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방향을 수정해서 좋은 친구 사이로 포장하세요."
"친구요?"
"이지훈씨가 리아씨의 곡을 골라줬다면서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은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고자 하는 두 남녀가 서로를 격려하며 훈훈한 우정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는 식으로 방향을 바꾸자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는 약한 것 같은데 두 사람을 세계 속의 당당한 한국인이자 한류의 전도사로 내세우면 어떨까요?"
"그것도 괜찮군요. 그렇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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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덧 CF 촬영일이 되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제작진의 요구대로 이른 아침에 촬영현장을 찾은 지훈은 먼저 도착한 리아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리아야."
"오빠."
"세계적인 스타가 되더니 더 예뻐졌네?"
"다 오빠 덕이야. 오빠는 어때?"
"열심히 요리 배우고 있지."
"지난 번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전에는 불타는 지하철 안으로 뛰어들어서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경찰서에 끌려가면 어쩌자는 거야."
"미안, 많이 놀랐지?"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뉴스보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도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어. 그런데 넌 어때? 한국과 아시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다 보니까 힘들지?"
"다른 것 다 괜찮은데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것이 제일 힘들어. 그래도 이번에는 비행시간이 길어서 간만에 푹 잤어."
"저런, 그래서 피부가 많이 거칠어졌구나."
"보기 흉해? 언니, 얼굴에 베이스를 좀 더 발라주세요."
"리아씨,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은데요."
"지훈 오빠가 내 피부가 거북이 등껍질 같다고 놀리잖아요."
"내가 언제?"
"방금 그랬잖아."
"내 말은 전보다 나빠졌다는 뜻이었지, 보기 흉하다는 말이 아니었어."
"그게 그거지."
리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지훈은 분장실 안에서도 두 대의 카메라가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메라가 이 안에도 있네."
"오빠, 몰랐어?"
"방금 봤어. 어! 방송국 카메라네?"
"연예 프로에서 오빠와 내가 CF를 함께 찍는 것을 촬영하겠다고 하더라고."
"이야~! 역시 세계적인 스타라 이런 사소한 것도 방송에 나가는 구나."
"알았으면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