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63화 (63/219)

<-- 63 회: 2-27 -->

"그럴게. 그런데 오늘 하루 만에 다섯 개의 CF를 전부 찍을 수 있을까? 예전에는 하나를 찍을 때도 여러 시간 걸렸잖아?"

"그러니까 오빠와 내가 호흡이 척척 맞아서 NG없이 바로 가야지. 나는 CF만 찍으면 스케줄이 없어서 오늘은 자유야."

"간만에 푹 자게 해주려면 내가 잘해야겠네."

"오빠, 여기까지 와서 잠만 자라고? 싫어! 오빠를 가이드 삼아서 이참에 에펠탑도 보고 몽마르뜨 언덕도 가볼 거야."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할게."

"진짜지?"

"약속할게. 그런데 콘티는 나왔을까?"

"내가 오빠 것까지 미리 챙겨놨어. 콘티 보니까 오늘 촬영은 재미있겠더라."

"뭔데?"

만화 같은 그림이 그려진 콘티를 넘겨받은 지훈은 그것들을 천천히 살폈다.

다섯 개의 콘티는 하나같이 지훈과 리아가 다정한 연인사이로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도 연인 사이로 나오네."

"왜 싫어?"

"싫지는 않은데 이러다가 네 팬들에게 봉변을 당할까 무섭다. 특히 프랑스에도 네 팬이 많은데 이 광고가 프랑스에도 방송되는 것은 아니겠지?"

"국내 계약이니까 한국에만 나갈 것 같은데?"

"이지훈씨, 한국에서는 한때 두 분이 연인 사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알고 계세요?"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들어서 질문을 던지는 이는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던 방송국의 PD였다.

"그 소문은 이미 몇 개월 전에 사라지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랬었죠. 그런데 그때의 심정은 어땠습니까?"

"그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저는 너무 뒤늦게 알아서 이미 소문이 사라진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나 때문에 리아가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니까 솔직히 미안했습니다."

"오빠, 하나도 안 힘들었어."

"리아씨, 힘들지 않았다고요?"

"그럼요. 오빠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팬들 중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빠랑 끝까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팬도 많았거든요."

"야! 그래도 스캔들은 조심해야지. 연예인은 스캔들 한 번에 훅 가는 경우가 많던데 왜 그리 태평해?"

"오빠, 요즘은 안 그래."

"그래도 이왕이면 스캔들이 안 나는 것이 좋지."

"오빠나 조심해. 그때 프랑스 여자에게는 대체 어떻게 해줬기에 그 여자가 방송에까지 나와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다고 했지."

"설마 그렇게만 했을까? 아무에게도 얘기 안 할 테니까 어떻게 했는지 나한테만 사실대로 얘기해줘."

"정말로 그것뿐이야."

"계속 튕길 거야? 아! 방송이라 이거지. 암튼 능력 좋아."

"튕기는 게 아니고 사실이야."

"뭐, 믿기지는 않지만 믿어줄게. 대신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줘."

"뭔데?"

"후속곡 준비 중인데 이번에도 오빠가 골라줘."

"내가 아는 게 있어야지."

"우선 들어보기나 해."

MP3를 넘겨받은 지훈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 흘러나온 음악은 거의 모든 작업이 끝난 것 같았는데 이전의 시간에서 리아의 후속곡으로 발표된 노래였다.

'이 곡은 처음에만 반짝이다가 묻혔었는데.'

다른 시간대의 기억을 떠올린 지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리아에게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빠, 왜 그래?"

"이 곡, 너무 좋다."

"몇 번째 곡?"

"두 번째 곡."

'이 곡이 어떻게 리아에게 들어왔지.'

지훈의 기억에 의하면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는 미국의 다른 여가수가 불렀던 곡이었고, 그녀는 이 노래를 통해서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당시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이 리아의 노래였다면 하반기 최고의 히트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그런데 이 곡이 어찌해서 리아에게 흘러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리아로서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맞아! 그 가수도 리아처럼 음색이 맑고 청명했어. 그래. 리아라면 그 가수 이상으로 이 곡을 살릴 수 있을 거야.'

"오빠, 그러면 두 번째 곡으로 할까?"

"무조건 두 번째 곡으로 해. 내 느낌대로라면 이번 노래도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이번에도 오빠 말대로 할게. 대신 하트 못하면 오빠가 책임 져."

"나만 믿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추천한 곡이 히트 못하면 내가 너만을 위한 요리를 해줄게. 참! 내가 말한 것은 틈틈이 마시고 있지?"

"마시고는 있어. 그런데 오빠가 그때 만들어 준 것에 비하면 맛도 없고 효능도 약한 것 같아."

"그래도 꾸준히 먹어."

"그러고는 있어."

"자~!"

가수는 직업 특성상 목을 많이 쓰기에 성대를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문에 지훈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직접 끊인 도라지차를 리아에게 선물하면서 수시로 달여 마시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언제 준비했는지 차가 가득 담긴 두 통의 페트병을 리아에게 전달했다.

"오빠, 이건 뭐야?"

"도라지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생강과 모과 그리고 배를 넣어서 끓인 차야. 그것들도 도라지만큼이나 목에 좋은 효능을 갖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헤헤~! 오빠가 직접 끓인 것이라면 맛도 좋겠다."

"약이라고 생각하고 남기지 말고 먹어."

"누가 준 건데? 당연하지."

"참! 한국에는 언제 돌아가는 거야?"

"공연이 계속 잡혀있어서 유럽에 2주 머물 거야."

"2주일 정도 머문다면 프랑스 전역을 돌면서 공연을 하는 거야?"

"프랑스만이 아니라 독일과 영국에서도 공연이 있어. 아! 돌아가는 비행기가 일요일 새벽이라 토요일은 시간이 있어. 그날은 농담이 아니라 파리 시내를 관광할 생각이니까 오빠가 가이드 해줘야 해."

"다, 다음주, 토요일?"

"응."

"귀국할 때도 파리에서 나가는 거야?"

"일부러 스케줄을 그렇게 조정했어. 잘했지?"

"네가 피곤하지 않다면 그렇게 해줄게."

"아무리 피곤해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는 돌아봐야지. 참! 그날은 수아씨도 데려와."

"그럴 거야."

"오! 오빠 여자 친구를 드디어 만나게 되다니 기대되는데? 가만, 내가 수아씨에게는 시누이가 되는 건가?"

"까탈 부리면 알아서 해."

"적당히 할게."

"뭐?"

"농담이야."

"이지훈씨, 촬영 전에 메이크업 하셔야죠."

"알겠습니다. 리야야, 있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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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독일로 넘어간 리아가 공연을 앞두고 있을 무렵 변함없이 요리를 배우고 있던 지훈은 르꼬르동 블루를 찾아온 뽀이도퀴시를 만나고 있었다.

"지훈, 잘 있었는가?"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중급 과정까지는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이 가장 중요한 만큼 소홀히 여기지 말고 열심히 배우게."

"한국에서 배운 것과는 또 달라서 즐겁게 잘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까지 어떤 일이십니까?"

"상급 과정 특별 강사가 되려면 몇 가기 서류를 사전에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왔네."

"상급 과정, 특별 강사라면 셰프가 이곳에서 직접 요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까?"

"지훈을 프랑스까지 불러들였는데 매일은 어렵겠지만 한 주에 하루는 내가 수업을 맡을 생각이네."

"오! 영광입니다."

"그런 말 말게. 요리 실력 자체만 놓고 보자면 내가 자네에게 가르칠 것은 없네. 그때도 얘기했지만 요리 실력 자체는 자네가 나를 넘어선지 오래이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건 프랑스 요리에 한해서겠지. 난 자네에게 프랑스 요리의 기교를 비롯해서 요리에 깔려있는 문화와 전통을 함께 가르칠 생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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