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회: 2-29(10. 음식에 그런 뜻이 담겨 있었습니까?) -->
"맞네. 내게 한국 음식을 소개해준 것도 그 친구였지. 지금은 아니지만 그 친구가 내 딸과의 인연으로 우리 집에서 3개월 정도 살았었네."
"그래서 그때의 인연으로 경찰서까지 직접 가셨군요. 아! 이번에 그 친구도 초대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모로 호감이 가던데 이번 기회에 저도 그런 영웅과 친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훈장 수여식 때 그 친구를 만났던 총리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던데 한번 주선을 해보겠네."
"총리께서요?"
"총리는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우연찮게 지훈 셰프가 직접 만든 홍삼차를 내게 얻어 마신 경험이 있네."
"효과를 봤나 보군요?"
"껄껄껄~! 말도 말게. 효과가 아주 좋았다고 하더군.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홍삼차인데 지훈 셰프가 만든 홍삼차가 맛도 좋고 효과도 훨씬 좋은 것 같아."
"명색이 뽀이도퀴시의 인정을 받은 셰프인데 무슨 비법이 있겠죠. 이번에 그 친구를 만나면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비법만은 반드시 배워야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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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음식에 그런 뜻이 담겨 있었습니까?
다음날, 수업을 마친 지훈 일행은 르꼬르동 블루를 찾아온 마리안과 만났다.
마리안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이번 주 토요일에 벌어지는 파티에 지훈 일행을 초대하기 위함이었다.
"마리안, 무슨 일이에요?"
"아빠의 생일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하려고 왔어요."
"아저씨의 생일이라면 당연히 가야죠."
"마리안, 아저씨의 생일이 언제에요?"
"이번 주 토요일이에요."
"토요일요?"
"이런, 어쩌지?"
"오빠, 어떡하면 좋아?"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마리안, 그날 다른 약속이 있어요."
"파티는 저녁에 시작되는데 시간을 낼 수 없나요?"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그날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함께 보내기로 했거든요."
"어마! 어떡하죠? 그날은 총리와 대통령도 오신다고 해서 한국 대사님도 초대하려고 했는데 취소해야겠네요."
"총리와 대통령까지 오신다고요?"
"아빠와 친분도 있지만 상원과 하원의 의원을 비롯해서 내각의 관료들도 많이 참석하는 자리라 대통령께서도 오실 거예요."
파티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은 유럽에서 파티는 사교의 장이었고, 이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파티를 통해서 여야의 갈등도 많이 해소하고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 막후교섭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다.
"마리안, 그런 분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분위기를 위해서도 우리가 안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총리께서도 지훈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 하고 플뢰르 펠르랭 장관도 지훈을 만날 생각에 일정을 조절하기까지 했어요."
"플뢰르 펠르랭 장관이라면 그 여성 장관 말해요?"
"네. 나와 같은 입양아 출신인 장관은 예전부터 지훈을 만나고 싶어 했어요."
프랑스 내각에는 한국명 김종숙의 입양아 출신 여성 장관이 있었는데, 그녀가 일정을 조절해가면서까지 파티에 참석한다고 하자 지훈은 더더욱 미안해졌다.
"오빠, 잠깐이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냐?"
"그래, 지훈아. 리아씨는 우리가 잘 챙기고 있을 테니까 넌 잠깐이라도 다녀와."
"동석, 리아씨라면 가수 리아를 말해?"
"네."
"어마! 정말?"
"마리안, 왜 그래요?"
"나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와 아빠도 리아씨를 무척 좋아해요. 심지어 아빠는 리아씨 노래를 흥얼거리는 경우도 많아요."
"아저씨가 리아를 좋아한다고요?"
"그럼요. 아빠는 리아씨를 통해서 사람 목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면서,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목소리라고 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에요."
"지훈아, 그러면 리아씨와 함께 잠시라도 다녀오는 게 어때?"
"정말요? 혹시 리아씨도 정식으로 초청하면 안 될까요? 만약 리아씨가 파티에 참석한다면 아빠에게는 절대 잊지 못할 최고의 생일 선물이 될 거예요."
"오빠,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파티에 참석하면 좋잖아?"
"지훈, 그렇게 해줘요. 리아씨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참석을 한다면 아예 파티의 컨셉을 한국과 프랑스의 밤으로 만들게요."
"한국과 프랑스의 밤으로 만들겠다니,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여러분도 오고 리아씨도 오고 거기다가 플뢰르 펠르랭 장관님과 한국 대사님까지 오시면 그게 바로 한국이죠. 그리고 그날은 제가 한국 요리를 해볼 생각이거든요."
"마리안이 한국 요리를 한다고요?"
"아빠가 한국 음식을 너무 자랑하고 다니셔서 많은 분들이 한국 음식을 궁금하게 여기고 계시거든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해야겠어요."
"마리안, 무슨 음식을 만들 생각인데요?"
"찌개류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고 김밥하고 떡볶이를 만들 생각이에요."
파티에는 총리와 대통령을 비롯해서 프랑스의 유력 정치인들과 내각의 각료들이 모인다.
게다가 한국 대사를 초대하겠다는 것으로 봐서는 각국의 외교관도 파티에 참석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이라고 내놓겠다는 것이 김밥과 떡볶이라니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성에 안차는 것은 당연해서 동석과 수아가 바로 한마디씩 했다.
"흐미, 딱 분식집 수준인데."
"오빠, 이건 아닌 것 같아."
"미안해요. 내가 자신 있는 요리가 그것뿐이라서."
"마리안에게 뭐라 하는 것 아니니까 오해 마세요. 오빠, 나는 마리안과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드는 게 좋겠어. 미안하지만 리아씨 만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룰게."
"오빠, 나도 수아를 도울래. 명색이 격조 있고 품위 있는 파티에서 김밥과 떡볶이가 한국 음식을 대표한다니, 자존심 상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
"혜미야, 왜 그래?"
"수아 혼자서는 무리라 나라도 도와줘야지. 오빠는 내 걱정하지 말고 리아씨와 함께 인증 샷 많이 찍어."
"네가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의미인데?"
"그러면 오빠도 우리를 돕던지?"
"그러면 리아씨는 어쩌고?"
"지훈 오빠가 있는데 오빠가 무슨 걱정이야."
수아에 이어서 혜미까지 마리안을 돕겠다고 하자 동석은 난처한지 지훈의 눈치만 봤다.
그사이 지훈은 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훈 오빠, 무슨 일이야?
"영국 공연은 잘 되고 있지?"
-당연하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매진이야.
"축하해. 파리에는 3일 후에 오는 거야?"
-응. 아마 밤늦게 도착할 거야.
"리아야, 미안한데 토요일로 예정된 시내 관광은 오후 2시까지만 하면 어떨까?"
-그렇게 빨리 끝내자고? 무슨 일 있어?
"나와 친구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분이 있는데 그날이 그분생일이라, 파티를 하는데 나도 가봐야 하거든."
-오빠를 도와주신 분의 생일파티라면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네가 같이 간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완전 대박이지. 그분도 네의 왕 팬이라, 네가 가면 그야말로 최고의 생일 선물이 될 걸."
-내 팬이라는 것이 한국 분인가 보네?
"아니. 프랑스 사람인데, 이 나라의 하원 의장이야."
-하원 의장이면 국회의원?
"응. 그리고 그날 파티에는 이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서 내각의 각료와 의원들은 물론이고 한국 대사님까지 참석해."
-우~와! 오빠, 그런 사람도 알아?
"그분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파티 참가자들의 면면을 알린 지훈은 한국 음식과 관련된 얘기까지 한 후에, 한국 음식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도 일행들과 함께 요리를 해야겠다는 뜻을 전했다.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오빠, 가자.
"너도 갈 거야?"
-그날의 주인공이 내 팬이라며? 그리고 한국을 알리는 일인데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무조건 가야지. 이래봬도 내가 한국관광청 공식 홍보대사잖아?
"고맙다. 리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