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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소."
주치의가 대통령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울러 대통령도 자신의 판단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기에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중단되었고, 주치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하지만 내심 한국요리 때문에 자신의 건강이 좋아졌다고 여기는 홀란드 대통령은 앞으로는 꾸준히 한국요리를 먹겠다고 다짐했다.
'엘리제궁의 셰프들에게 한국요리를 배우라고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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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8월의 더위는 초저녁이 되었음에도 기승을 부려서 여전히 찜통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초저녁 뉴스에서 열대야를 경고하고 있던 그 시각, 박현식의 아버지 박철웅은 여당의 실세로 불리는 6선의 김무교 의원을 고급 요정에서 만나고 있었다.
현재 집권 여당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무교는 당내 최대의 계파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실세 중의 실세였다.
"김 의장님, 저는 의장님만 믿겠습니다."
"박 청장,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소."
"의장님, 왜 그러십니까? 이번만큼은 꼭 도와주십시오."
"나도 박 청장을 돕고 싶소. 하지만 당 일각에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소."
"또 제 아들 이야기입니까?"
"그렇소이다."
"그건 제가 몇 번이고 상황 설명을 했잖습니까?"
"나는 이해한다지만 공천위의 사람들은 박 청장 아들의 일을 계속 걸고넘어질 것이오."
일제시절 고등계 형사였던 박철웅의 조부는 해방 후에는 경찰서장이 되었고, 당시의 권력을 이용해서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흩어져 있던 일본인 소유의 땅을 적산불하 받았다.
그리고 박철웅의 아버지는 그 땅들을 기반으로 7~80년대를 거치면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다.
덕분에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의 부를 물려받은 박철웅은 어느 순간부터 정치에 기웃거렸고, 열심히 돈줄 노릇을 한 덕에 지금은 구청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청장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박철웅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김무교 의장을 비롯해서 당의 여러 실세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었고, 이를 기반으로 올 가을에 있을 보궐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으니 하나뿐인 아들의 연이은 사고였다.
"아들이 음주 운전을 한 것은 평생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좌절감이 너무 커서 그랬던 것입니다."
"박 청장, 나는 이해를 한다지만 심사위원들은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박청장의 아들은 그 후에도 명예훼손으로 고발되지 않았소?"
"그 문제는 제가 이미 원만하게 합의를 본 상태입니다."
"합의 여부를 떠나서 심사위원들은 그 문제 자체를 거론하며 반대를 할 것이오."
"그래서 제가 의장님을 찾아왔잖습니까? 의장님이 나서면 그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막아줄 수 있잖습니까?"
"그게 쉽지 않은 것이 이번은 보궐선거잖소? 공천 대상자가 많지 않다 보니 심사위원들이 총선과는 달리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을 샅샅이 뒤질 것이 분명하오."
"의장님, 제가 어떻게 하면 공천을 따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대의원들을 상대로 당내 경선을 한다고 해도 자신 있습니다. 그러니 공천심사위의 심사만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박 청장, 그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장님이 나서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저는 무조건 의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허~참!"
박철웅의 얘기는 필요한 게 있으면 그게 뭐가 되었든 말만 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즉, 돈은 얼마가 되었든 내놓을 수 있으니 대신 공천위에 압력을 행사해달라는 의미였다.
"의장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제가 믿는 것은 오직 의장님뿐입니다. 만일 제가 의장님의 도움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되면, 의장님의 한 팔이 되어 어떤 일이든 하겠습니다."
"박 청장, 여섯 명의 심사위원 중 두 명은 내 말이 거의 안 통하는 사람이오."
"당 내에서 의장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니 문제라는 것 아니겠소?"
"의장님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박철웅은 얘기하는 도중에 서류봉투 하나를 김무교에게 넌지시 내밀었다.
그가 봉투를 꺼낼 때부터 그 과정을 지켜봤던 김무교는 전혀 몰랐던 것처럼 의외라는 표정으로 박철웅을 바라봤다.
"5층짜리 조그마한 빌딩입니다. 하지만 신촌의 핵심 상업구역에 있어서 시세가 제법 나갑니다."
"이걸 왜?"
"세 번의 거래를 통해 저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빌딩입니다. 모든 서류가 완벽하게 갖춰진 이상 바로 소유권 이전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박철웅은 공천을 받게 해주면 수십억짜리 빌딩을 김무교에게 넘기겠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렸던 김무교가 서류 봉투를 자연스럽게 챙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박 청장, 그 두 명에게 약을 쳐야 할 것이오."
"각각 두 장이면 되겠습니까?"
"잡음이 전혀 안 나오게 하려면 다른 4명에게도 약간의 약은 쳐야 할 것이오."
"모두 여덟 장을 준비하겠습니다."
"하하~! 박 청장은 화통하고 시원시원해서 너무 좋소. 이렇게 사내 같은 박 청장을 많은 이가 과소평가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도 안타깝소."
"의장님은 저를 알아주시잖습니까?"
"박 청장, 여의도에 들어오거든 날 많이 도와주시오."
"물론입니다, 의장님. 저는 항상 의장님 옆에 있겠습니다. 한잔 받으십시오, 의장님."
"요즘 건강 때문에 많이 자제하고 있는데 박 청장이 주는 것이니 받겠소."
"영광입니다, 의장님."
술잔을 부딪친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화통하게 웃었고 그게 신호였는지 얼마 후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뛰어난 미모의 젊은 여자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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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박철웅은 자신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박현식을 거실로 불렀다.
"왜요?"
"네 녀석 때문에 건물 하나를 날렸다."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아버지가 하시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그때는 그 이상의 것을 얻을 것 아닙니까?"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박현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건물이 정치자금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그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 당장 외국으로 나가라."
"싫습니다."
"네가 한국에 남아있으면 분명 상대 후보는 네 녀석이 저지른 사고를 들먹일 것이고, 언론은 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때문에 한국을 떠나라고요?"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 없다. 10월 말 보궐 선거가 끝나면, 그때는 들어와도 되니까 넉넉잡고 세 달이면 충분하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조건을 들먹이는 거냐?"
"제가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닌데 또 사고를 치겠습니까? 저도 이제는 제 인생을 살아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
"11월초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사업을 하겠습니다."
"경험도 없는 네가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냐?"
"프랜차이즈 외식사업을 하겠습니다."
"후각을 상실한 통에 미각까지 잃은 네가 외식사업을 하겠다고? 차라리 우리 회사에 들어가라."
부동산 재벌로 대형 고층빌딩만 이십 개 이상을 갖고 있는 박철웅은 법인을 설립해서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박현식에게 그 회사로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요리를 하는 게 좋았던 박현식은 외식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외식사업으로 성공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크나큰 패배감을 안겨줬던 지훈에게 복수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요리를 총괄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할 것이고 저는 경영만 할 것입니다."
"누가 요리를 총괄한다는 것이냐?"
"장철우씨가 할 것입니다."
"장철우라면 설마?"
"맞습니다."
"그자는 TJ가 탐냈을 정도로 타고난 요리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박철웅도 명예훼손의 일로 장철우를 알고 있었고, TJ 그룹과 그 사이에 어떤 계약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사실 TJ그룹이 쉽게 합의를 해줬던 배경에는 그 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너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니, 무슨 뜻이냐?"
"TJ그룹이 장철우씨를 배신한 까닭은 그 대회에서 우승한 이지훈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