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회: 2-35(12. 이 친구들이 그 친구들이었어!) -->
긴히 할 얘기가 있다는 말에 지훈 일행은 쏨과 장쉬엔을 따라서 인근의 카페로 들어갔다.
"쏨, 무슨 일이야?"
"다음 달부터 뽀이도퀴시 셰프가 특강을 한다고 들었어."
"으... 응."
"나와 장쉬엔도 뽀이도퀴시 셰프의 특강을 듣고 싶어. 그래서 너에게 제안을 한가지 하고 싶어."
"무슨 제안?"
"행정처에서 듣기로 너와 내 친구들은 이곳을 졸업하면 뽀이도퀴시의 레스토랑에서 몇 달을 지내면서 그에게서 요리를 배운다고 들었어."
"그런데?"
"고급반으로 승급할 때 우리는 A반으로 옮기고 싶어."
"반을 옮길 수 있는 거야?"
"학교의 규정에는 반을 옮기는 것과 관련한 조항이 없어. 하지만 정원에 대한 규정은 있어."
"무슨 말이지?"
"A반에서 두 명이 B반으로 옮기면 대신 B반에서 두 명이 A반으로 갈 수 있어."
"쏨, 설마 우리보고 B반으로 옮겨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부탁할게. 너희들은 졸업 이후에도 충분한 기회가 있지만 우리들은 뽀이도퀴시 셰프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유일해."
"동석, 우리가 너무 무례하고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너무도 배우고 싶어.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게."
"나와 장쉬엔은 돈이 많아."
"너희들이 우리 부탁을 들어주면 학비의 두 배를 줄게."
"쏨,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방금 너희들의 얘기는 못들은 걸로 할게."
"지훈, 부탁해. 난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장군도 스스로 포기했어."
"만약 돈이 부족하면 얘기해. 더 달라면 더 줄게."
"오빠, 더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냥 가자."
"참나, 자기들이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돈지랄을 하겠다는 거야. 지훈 선배, 기분 나쁜데 그만 일어나죠."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성전환 수술까지 한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장군 얘기는 뭐야? 하여간 후진국 애들은 티가 난다니까! 지훈아, 가자."
돈을 줄 테니 반을 옮겨 달라는 쏨과 장쉬엔의 제안에 화가 난 수아와 혜미 그리고 동석은 씩씩거리며 한국말을 내뱉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
12. 이 친구들이 그 친구들이었어!
쏨과 장쉬엔과 헤어진 지훈 일행은 수아의 아파트에서 저녁 식사를 한 이후에 근처의 공원으로 산책 갔다.
벤치는 물론이고 공원 한가운데에 조성된 잔디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거나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지훈 일행은 시원한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분수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혜미야, 지금 생각해도 그 애들 너무 웃기지 않냐?"
"오빠, 기분 잡치니까 그 얘기는 그만해."
"너무 황당하니까 그렇지. 그것들은 돈을 주면 우리가 반을 옮길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랬으니까 그런 제안을 했겠지. 안 그러니, 수아야?"
"아까는 그랬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는 화가 나서 기분이 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친구들 입장도 이해가 돼. 그리고 얼마나 배우고 싶었으면 그런 제안을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아까의 우리 행동이 미안해."
"그렇다고 미안해 할 것 까지는 없지."
"맞아! 수아야. 게네들은 자기들이 돈이 있다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그런 제안을 했잖아?"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이 우리를 업신여겨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만큼 그 친구들은 미안한 마음에 돈 얘기를 했는지도 몰라."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기분 상한 것은 사실이니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지."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우리가 마지막에 화난 표정으로 한국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게 왜?"
"그 친구들은 우리가 한국말로 심한 욕설을 했을 거라고 오해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우리가 욕설을 한 것은 아니잖아?"
"수아야, 우리가 욕을 했다고 한들 무슨 문제야? 그것들은 욕을 먹어도 싸. 지훈아, 안 그래?"
"글쎄, 잘 모르겠어."
"야! 너까지 왜 그래?"
"그냥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음에 걸릴 일이 뭐가 있어?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잊어버려."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 돼."
"그래서 어쩌려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잖아?"
"그렇기는 한데 3개 반이 동시에 특강을 받으면 안 될까?"
"75명이 동시에?"
"외부인들이 일일 체험하는 대형 실습실 있잖아? 거기라면 3개 반이 동시에 특강을 받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거의 12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르꼬르동 블루는 그 자체가 관광명소라 세계 각국의 여행객이 찾아온다.
그 중에는 일일체험을 하면서 관광객이 직접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때 사용하는 대형 실습실이라면 3개 반이 특강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다.
"공간이야 있다지만 그게 우리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겠어? 그리고 뽀이도퀴시 셰프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잖아."
"일단 얘기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뽀이도퀴시 셰프라면 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을 지도 몰라."
"그건 모르지. 그리고 학교 측에서 싫어할 수도 있잖아?"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는 일인데 학교 측에서 싫어할 일은 없지. 짐작인데 어쩌면 오히려 반길 수도 있어."
"내 생각에도 그건 지훈 오빠의 말이 맞을 것 같아. 왜냐하면 이번 일로 다른 반 학생들이 불만을 많이 갖고 있다던데, 그렇게 되면 불만을 해소할 수 있잖아?"
"안 되겠어. 내일은 행정처도 찾아가보고 뽀이도퀴시 셰프도 만나봐야겠어."
"지훈아, 그러다 뽀이도퀴시 셰프의 눈 밖에 나면 어쩌려고?"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을 보면 뽀이도퀴시 셰프는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니 그런 부탁을 한다고 해서 눈 밖에 나는 일은 없을 거야."
"에이, 난 모르겠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쏨과 장쉬엔과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결론을 도출한 지훈 일행은 날이 어둑해지자 아파트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의 계단에는 쏨과 장쉬엔이 쪼그려 앉아 이는 것이 아무래도 자신들을 찾아온 것 같았다
"어! 쏨과 장쉬엔인데."
"오빠, 우리 찾아서 왔나봐."
"설마 아까의 일로 따지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만나보면 알겠지."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쏨과 장쉬엔은 지훈 일행이 현관에 당도하기 전에 일어섰다.
그러더니 지훈 일행이 다가오기 무섭게 대뜸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해왔다.
"지훈, 아까의 일은 미안해."
"미안해. 아까는 우리가 생각이 짧았어."
"우리는 너희들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줘."
"늦었지만 우리의 사과를 받아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우리는 다 잊었어. 그리고 우리도 그때 화낸 것 미안해."
"장쉬엔, 우리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은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쏨, 우리 집은 어떻게 안거야?"
"A반의 친구들에게 물어서 찾아왔다가 너희들이 없어서 기다렸어."
"언제 왔는데?"
"한 시간은 훌쩍 넘은 것 같아."
"우리가 산책 나간 후에 바로 왔네. 저녁은 먹었어?"
"아직, 실은 사과의 의미로 우리가 저녁을 사려고 했어."
"저런, 아직까지 저녁을 안 먹었다면 많이 배고프겠다."
"괜찮아. 배 안고파."
"방이 크지는 않지만 내방으로 같이 가자, 내가 한국음식을 해줄게."
"아냐, 우리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오! 한국 음식? 나, 한국음식 엄청 좋아하는데... 장쉬엔, 들어가자. 한국음식, 정말 맛있어."
"그래, 장쉬엔. 들어가자. 서로 오해도 풀고 화해도 했으니까 기념으로 맥주 한 잔 해야지
"괘... 괜찮은데......"
"빨리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