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72화 (7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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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냄새가 피어나는 식탁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잡채와 살짝 얼큰해 보이는 김치찌개 그리고 갖가지 채소가 알맞게 들어간 비빔밥이 놓여 있었다.

"오~! 비빔밥이네."

"쏨, 비밤밥을 알아?"

"태국에서도 먹어봤고 한국에서도 먹어봤어."

"한국을 간 적 있어?"

"몇 번 가서 스키를 탄 적도 있고 궁중 요리도 배웠어. 또 제주도에도 가봤어."

"제주도, 정말 좋지?"

"와~우! 환상이었어."

"쏨. 백록담도 올라가봤어?"

"동석, 한라산 정상에 있는 연못? 가봤지. 올라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 한국 사람들은 등산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설악산도 그렇고, 한라산에도 등산객이 많았어."

"하하하~! 맞아. 엄청 좋아해. 어서 먹어. 참! 비빔밥 먹는 법은 알아?"

"밥과 야채를 골고루 섞는 거잖아. 그걸 한국말로는 비빈다고 하는데 그래서 비빔밥이잖아?"

"오! 많이 알고 있는데."

자신들을 기다리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는 말에 괜히 미안해진 지훈은 쏨과 장쉬엔을 아파트로 데리고 가서 저녁상을 차려줬다.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던 쏨은 능숙한 솜씨로 밥을 비비기 시작했는데 비빔밥을 처음 대하는 장쉬엔은 쏨을 따라했다.

"와우~! 너무 맛있다. 장쉬엔, 어때?"

"한국음식은 오늘 처음 먹어보는데 너무 맛있어."

"한국 음식을 처음 먹어본다고, 중국에는 한국 식당 없어?"

"있는데 아직 못 가봤어."

"시간 내서 종종 먹어봐. 한국음식도 맛있는 요리가 많아."

"앞으로는 그래야겠어."

배가 많이 고팠는지 비빔밥을 싹싹 비운 쏨과 장쉬엔은 잡채까지 몽땅 비웠다.

그사이 지훈과 동석은 고기를 다진 떡갈비와 소시지를 함께 넣어서 만든 샐러드를 요리해서 내놓았다.

"안주는 있어야지."

"우와~! 이것도 맛있겠다."

"지훈, 여긴 네 방이야?"

"응. 우리 네 사람은 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동석은 바로 옆방이고 수아와 혜미의 방은 맞은편이야."

"서로 가까이에 있으니까 심심하지는 않겠다. 난 혼자 살아서 밤에는 심심해."

"어디에서 사는데?"

"라데팡스 지역의 주택에서 살아."

"라데팡스의 주택들은 하나같이 대저택인데, 혼자서 살아?"

"내가 프랑스 간다고 하니까 아빠가 사줬어. 나, 지난번 겨울 때 그곳에서 너희들을 종종 봤어."

"우리를 봤다고?"

"내 집은 너희들이 살았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그랬구나. 그때 알았더라면 같이 어울렸을 텐데 아쉽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자연스럽게 뽀이도퀴시의 특강 얘기가 나왔고, 동석은 지훈의 생각을 쏨과 장쉬엔에게 알렸다.

"정말 그렇게만 되면 너무 좋겠다."

"지훈, 학교 행정처는 우리가 설득할 테니까 뽀이도퀴시 셰프에게 얘기를 잘해줘."

"아! 우리도 그분의 특강을 받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뽀이도퀴시 셰프님도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열의를 알면 매우 흡족해 하실 거야."

"제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지훈,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다음에는 내가 태국 요리를 만들어줄게."

"태국 요리, 좋지."

"지훈, 태국 요리에 관심 있어?"

"그럼, 태국 요리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식이잖아? 기회가 닿는다면 태국 요리도 배우고 싶어. 아마 내 친구들도 그럴걸?"

"당연하지."

"쏨, 나와 동석은 작년 여름에 태국 갔는데 너무 맛있고 색달라서 태국 요리를 배우고 싶었어."

"그러면 내가 태국 요리를 알려줄 테니 너희들은 내게 한국 요리를 알려줄 수 있어? 난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태국이나 한국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도 오늘 먹은 것이 더 맛있었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런데 이 숫자가 요리를 함께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잖아?"

"그러게. 같은 반의 이탈리아 친구들과도 이런 얘기가 오갔는데 결국에는 요리를 할 만한 장소가 없어서 포기했어."

"그거라면 걱정 마."

"왜, 적당한 곳을 알고 있어?"

"내 집에서 하면 가능해."

"맞다! 쏨의 주방이라면 열 명이 동시에 요리해도 충분해."

"쏨, 주방이 얼마나 크기에 열 명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주방 욕심이 많아서 주방은 아예 리모델링을 했거든."

"르꼬르동 블루의 주방보다 크기는 작지만 시설은 더 훌륭해서 너희들도 쏨의 주방을 보면 감탄을 할 거야."

"장쉬엔, 너도 함께 하는 게 어때? 넌, 우리에게 중국 요리를 알려주면 되잖아?"

"다들 동의한다면 그렇게 할게."

"당연히 찬성이지."

함께 요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해결되자 동석은 마크와 쥬세페를 거론하며 그들도 함께 하자고 했다.

동석의 제안에 쏨과 장쉬엔도 찬성했고, 당장 이번 주 주말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다.

"쏨, 한 가지 질문해도 돼?"

"뭔데?"

"아까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 장군도 마다했다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

"아! 그것."

갑작스런 동석의 질문에 쏨은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이내 자신의 사정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지훈 일행의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사실 지훈 일행은 쏨이 트렌스젠더였기에 장군을 포기했다는 것이 그것과 관련 있다고 짐작했고, 그녀가 사관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아버지가 포 스타로 지역 군구의 사령관이라고?"

"응. 우리 집은 아주 오래된 태국의 귀족 가문으로 아버지는 5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있어. 장군들은 아주 예전부터 우리 가문의 가신들이었어."

비싸기로 소문난 라데팡스 지역의 대저택에서 산다고 할 때부터 쏨의 집안이 부유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지만 귀족이라니 의외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왕조 국가인 태국은 아직도 귀족제도가 이어지고 있어서 장군의 지위가 자식들에게 승계된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서 아버지가 장군이면 그 자식 중에 한 명이 장군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수백 년 전에 한 지역의 왕조였다가 현재의 태국 왕조인 시암 왕조에 투항한 쏨의 가문은 지역 군구의 사령관이어서 본인 외에 다섯 명의 장군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휘하의 장군을 총리나 참모총장 또는 국왕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아버지가 임명하는 거야?"

"맞아. 현 국왕인 라마 9세는 임명동의권을 가지고 있는데 지역 군구의 사령관이 임명한 장군을 거부한 적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어."

"그러면 장군의 자식들은 무조건 장군이 되는 거야?"

"그런 셈이지. 하지만 무조건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고 다들 태국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외국의 사관학교로 유학을 다녀와서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해."

"그렇구나.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라서 생소하다 못해 이상하다."

"그럴 거야."

"쏨, 그러면 너도 원래는 장군이 되어야겠네?"

"오빠는 벌써 장군이고 나도 원래대로라면 군인이 되었겠지. 아버지는 내가 성전환을 할 때보다도 사관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더 심하게 반대해서 집안에 가두기까지 했어. 하지만 지금은 나를 적극 돕고 있어."

21세기에 장군의 지위가 세습되다니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가 다른 만큼 뭐라고 왈가왈부 할 수 없기에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신분이 특별한 것은 장쉬엔도 마찬가지여서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 공산당의 고위 간부로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다.

'아! 이제야 생각났어. 그렇구나, 이 친구들이 그 친구들이었어!'

쏨에 이어서 장쉬엔의 얘기를 들은 지훈은 다른 시간대의 미래에서 언젠가 한번 봤던 인터넷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의 기사는 국적을 초월한 두 여성 사업가의 오래된 우정을 다루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자국에서 꽤나 유명한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를 경영하고 있었고, 서로의 지원 속에 상대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친구들을 알게 되다니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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