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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의약은 그 뿌리가 같다는 말인데 저도 몇 번 들어본 기억이 납니다."
"하하하~! 지훈 말로는 히포크라테스도 그것과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양에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의식동원과 거의 같은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건강에 음식이 중요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한국 음식으로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는 만찬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고 반기윤 사무총창은 말미에 지훈과 만나서 인사를 나누며 그를 격려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기윤 사무총장은 자신이 지훈을 다시 찾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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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색 조명이 아스라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호텔의 침대에는 환영 만찬을 마지막으로 전날의 일정을 모두 마친 반기윤 총장이 편안한 얼굴로 숙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자는 도중에 살짝 미소를 그리던 반기윤 총장이 알람소리에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1시간 후였다.
"아~함! 잘 잤다."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난 반 총장은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한 후에 화장실로 들어가서 볼일과 함께 세면을 마쳤다.
'잠을 깊게 잤더니 몸이 무척 가볍네.'
오랜 시간 관절염을 앓아온 반 총장은 무릎의 통증 때문에 잠을 깊게 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벽에 깨어날 때가 많았다.
게다가 UN 사무총장의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보니까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부족한 수면시간과 맞물리면서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그런데 오늘은 몸이 가볍고 활력이 넘치는 것이 여느 아침과는 달랐다.
"똑똑~!"
"총장님, 일어나셨습니까?"
"들어오게."
"좋은 아침입니다. 총장님."
노크와 함께 침실로 들어온 40대 중년의 백인 남성은 반 총장의 수석 비서관인 핸더슨이었다.
아침인사와 함께 작은 태블릿 PC를 꺼낸 그는 오늘의 일정을 반 총장에게 설명했다.
"조찬 간담회도 엘리제궁인가?"
"그렇습니다. 오늘 조찬 간담회에서는 말리의 현 상황을 브리핑하기로 되어 있고, 오전에는 난민 수용소를 방문하는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럽 연합 소속의 각국 대사들은 언제 만나기로 되어있지?"
"그건 비공식 일정으로 이틀 후 저녁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녁 일정이면 파티인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파티라, 그날은 무릎이 남아나지 않겠군."
파티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유럽에서는 외교관련 행사도 파티 형식으로 진행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반 총장은 무릎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몇 곡 춤을 춰야 했는데 그런 날은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주치의를 통해서 진통제를 맞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날은 특별히 수면제도 준비를 해주게."
"알겠습니다."
"시간 맞추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바로 출발하세."
"의전 팀에 연락해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반 총장은 미리 준비된 정장으로 갈아입고 스위트룸을 빠져 나갔다.
잠시 후, 의전차량에 탑승한 반 총장은 약 30분 만에 엘리제궁에 당도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홀란드 대통령과 만나서 반갑게 악수를 했다.
"대통령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총장님. 얼굴 표정도 밝고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지훈 셰프의 음식 덕을 톡톡히 보셨나 봅니다."
"간만에 아주 편안하게 잤더니 몸이 무척 가볍습니다."
"그러실 거라 여겼습니다. 오늘 아침도 지훈 셰프가 준비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지훈의 특별한 능력을 알고 있는 홀란드 대통령은 반 총장의 관절염이 많이 좋아졌을 거라 여기고 그 부분을 언급했다.
반면 아직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반 총장은 홀란드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제 나누었던 의식동원과 관련된 얘기라고 여기고 무난한 대답을 하며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총장님."
"펠르랭 장관, 반갑습니다."
"총장님, 안색이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다."
"잠을 푹 자서 그러나 봅니다."
먼저 와 있던 프랑스의 여러 장관들과 인사를 나눈 반 총장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어온 아침을 먹으며 말리와 관련된 브리핑을 들었다.
"난민의 숫자가 벌써 그 정도로 발생했습니까?"
"물론입니다. 게다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북부에도 적잖은 이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난민의 숫자는 거의 두 배에 이를 것입니다."
"현재 말리에 주둔 중인 아프리카 연합군은 어떻습니까?"
"인접국에서 대략 2만의 병력을 파견했는데 무장이 너무 빈약하다 보니 반군과의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고 후방의 치안만 맡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하군요."
"저희가 더 우려하는 것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북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족 분쟁입니다."
"어떤 상태죠?"
"반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투아레그족이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종족을 학살하면서 토지를 강제 수탈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자와 아이들까지 무참히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말리의 처참한 상황을 상세히 알게 된 반 총장은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도 UN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사이 향긋한 냄새를 피워 올리는 차가 나왔는데 프랑스 장관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대통령 각하, 혹시 지훈 셰프의 홍삼차입니까?"
"맞습니다."
"오!"
"각하, 한잔 더 마셔도 됩니까?"
"각하, 저도 한잔 더 마시겠습니다."
"허~험! 반 총장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잔씩만 마시세요."
"각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왜들 그러지?'
장관들과 대통령이 고작 홍삼차 때문에 아옹다옹하는 것을 목격한 반 총장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내색하지 않았다.
그사이 홀란드 대통령이 직접 차 주전자를 가지고 반 총장에게 다가왔다.
"반 총장님, 어서 드시고 한잔 더 드십시오. 이대로 놔두면 욕심 많은 장관들이 다 마셔버릴 것입니다."
"저는 괜찮으니 다른 분들 주십시오."
"안됩니다. 이건 지훈 셰프가 반 총장님을 생각해서 우려낸 차이니 꼭 더 드셔야 합니다. 지훈 말로는 사포닌이 스테미너에도 좋지만 관절염에도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지훈 셰프와 각하의 성의는 고맙지만 차 한 잔 정도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하하~! 그리 말씀하시는 것이 밤사이에 무릎이 많이 좋아지셨나 봅니다."
"그러게요.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무릎이 아프지 않은 것이 몸이 아주 가볍습니다."
"하하하~! 총장님의 관절염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훈 셰프가 큰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왜 자꾸 그 친구를 언급하지.'
아직까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반 총장이 홍삼차를 양보하는 사이 대통령과 두 명의 장관이 남은 홍삼차를 깨끗이 비웠고, 조찬 간담회는 그로부터 얼마 후에 끝났다.
"총장님, 난민 수용소로 모시겠습니다."
"갑시다."
조찬 간담회를 마친 반 총장은 파리 인근의 난민수용소로 향했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자신이 뭔가를 깜빡했음을 알고 낮게 탄식을 터트렸다.
"아차!"
"총장님, 왜 그러십니까?"
"핸더슨, 깜박 잊고 약을 안 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