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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야, 태국 갔다가 또 다시 중국까지 가려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혜미, 비행기 티켓은 내가 보낼 줄 테니까 너도 와."
"그래? 그러면 나도 가야지. 그런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 나와 동석은 내년 5월부터는 호텔에서 근무해야 하거든."
"혜미야, 호텔 쪽 자리를 알아본다고 하더니 취업에 성공한 거야?"
"호근 선배가 추천을 해줘서 거기 호텔의 마스터 셰프로부터 OK 받았어."
"와~우! 축하해."
셰프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가게를 갖고 싶어 하고, 그건 동석과 혜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동석과 혜미는 경험도 쌓고 돈도 벌 생각에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예전부터 간절하게 원하던 일류 호텔에 취업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르꼬르동 블루의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다가 그 이후에는 뽀이도퀴시로부터 개인교습까지 받기로 한 점이 알려지면서 그렇게 되었다.
"수아야, 너와 지훈 선배는 어쩔 거야?"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좀 더 고민을 해볼 생각이야."
"수아야, 그냥 지훈과 함께 가게를 오픈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훈이가 CF를 여러 개 찍은 통에 그만한 돈은 갖고 있잖아?"
"그게 쉽지만은 않아. 동석 선배도 알고 있겠지만 오빠는 한식을 베이스로 한 가게를 내고 싶어 하는데 난 정통 프랑스 요리에 더 매달리고 싶거든."
지훈과 수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추구하는 요리 세계가 다르다 보니 둘이서 함께 가게를 운영하기에는 문제가 있어서 고민 중이었다.
게다가 아직 말은 안 했지만 수아는 프랑스에서 몇 년 더 머물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했다.
"아무튼 둘이서 잘 상의해서 결정해."
"그래야지."
서로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끝날 무렵 쏨이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지훈,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자주는 아니더라도 졸업 이후에도 지금 같은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는 게 어떨까?"
"어떻게?"
"1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과 중국 그리고 태국에서 번갈이가면서 하면 되잖아?"
"난 찬성이야. 그리고 너희들이 중국 올 때는 내가 비행기 티켓과 체류 공간을 제공해줄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니, 몇 번이라도 부담할 수 있으니까 태국에 자주 오기만 해."
자국에서는 최상류층에 속하는 쏨과 장쉬엔은 지훈 일행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자신들이 항공권과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했고, 그게 미안했던 지훈 일행은 거절의사를 밝혔다.
"쏨, 그러지 마. 항공권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뽀이도퀴시 셰프에게 배운 것을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알려달라는 뇌물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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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변에 자리한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는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은 뽀이도퀴시의 레스토랑이었다.
뽀이도퀴시는 몇 개의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는 다른 유명 셰프와는 달리 오직 이곳만 운영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는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가 자리한 강변의 바깥쪽에는 일명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로 불리는 작은 요리학교가 있었다.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는 요리학교로 불리지만 따로 학생을 모집하는 것은 아니고 장차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에 근무하게 될 신입 셰프들이 요리를 배우는 곳이었다.
즉, 이곳은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의 신입 셰프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자 뽀이도퀴시의 직계 제자를 키워내는 장소였는데 지훈 일행은 지난 12월부터 지금까지 두 달째 교육을 받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허브는 그 향과 맛도 독특하지만 갖고 있는 성분도 다 다르다. 그러니 요리를 할 때에는 메인 재료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부족한 것을 얼마나 채워주는지 고려해야 한다."
"마스터, 질문 있습니다."
"지훈, 뭐지?"
"요리를 할 때 허브를 이용하는 방법이 각기 다른데 그 이유가 뭡니까?"
"아주 좋은 질문이야. 허브는 야채처럼 그 자체를 식자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말리거나 아니면 빻아서 가루로 사용할 때도 있지. 그런데 요리마다 그 이용방법이 다른 이유가 뭐일 것 같은가?"
지훈의 질문에 뽀이도퀴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반문을 하면서 지훈을 비롯한 다른 셰프들을 바라봤다.
"메인 재료와 허브의 조화 그리고 맛의 조화를 위해서 그런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른 셰프들도 생각이 같은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허브의 이용방법을 달리할 때 맛은 어떻게 변할 것 같은가?"
"허브마다 그 특성과 향이 전부 다른 만큼 잘 모르겠습니다."
"맞아! 그러면 그걸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허브의 성분은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외우면 되겠지만 맛의 차이는 직접 입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답! 오늘과 내일은 다른 것 하지 말고 허브를 일일이 먹어보면서 맛의 차이를 혀와 뇌리에 단단히 새기게."
"마스터, 여기 있는 모든 허브를 다 맛보라는 겁니까?"
"이틀이면 시간은 충분할 거야."
"마스터, 여기 있는 모든 허브를 맛보다가는 아예 허브로 배를 채우겠는데요?"
"미리 말하지만 맛의 차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면 확실하게 기억할 때까지 먹어야 하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야 할 거야."
서양 요리는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의 사용이 조리의 핵심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갖가지 향신료와 허브를 사용한다.
참고로 유럽과 미주에서 명성이 자자한 유명 셰프들은 대략 150가지의 향신료를 사용한다.
그런데 향신료의 원료가 바로 허브였기에, 허브의 맛과 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기본을 바로 세우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흐미, 이 많은 허브의 맛과 향을 어떻게 구별해?"
"동석 선배, 그래도 제대로 된 요리를 하려면 여기 있는 것만큼은 모두 알고 있어야 해."
"맞아! 마스터는 여기 있는 모든 허브의 맛과 향을 정확하게 알고 계실거야. 그러니 그 많은 허브와 향신료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거고."
"당연히 그러겠지. 아무튼 오늘과 내일은 염소마냥 풀만 먹어야겠다."
"어차피 뛰어난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니까 기분 좋게 시작하자."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에는 뽀이도퀴시의 명성답게 대략 200가지의 허브가 여러 형태로 비치되어 있었다.
레몬 밤이란 허브로 예를 들자면 이제 막 들어와서 수분을 머금고 있는 원초도 있고 말려서 건조된 것도 있었고 또는 빻아서 유리병에 보관된 것도 있었다.
그러니 레몬 밤의 맛과 향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세 가지를 모두 먹어보고 그 차이를 기억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허브도 모두 그런 상태였기에 결국은 600가지를 모두 먹어보고 그 맛과 향을 기억해야만 했다.
"오빠, 이것부터 시작하자."
"이건 히솝이네."
"향은 박하향이 나는 것 같은데?"
"맛은 쌉쌀한데."
"마스터가 나눠준 자료를 보니까 식욕 증진과 등 푸른 생선의 비린내 제거에 좋다고 나와 있어."
"잠깐만 태블릿으로 인터넷을 뒤져보고."
"왜?"
"히솝의 효능이 뭔지 함께 알아보려고. 아! 여기 있다."
"뭐래?"
"감기와 천식 그리고 기침에도 좋고 살균작용 효과도 갖고 있고 소화초진 효과도 있다는데."
맛도 맛이지만 의식동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허브가 몸에 좋은 효능을 갖고 있는 만큼 허브 각각의 성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