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회: 3-10( 4. 나도 끼워줘!) -->
"뭔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건 아버지께 따로 부탁을 하죠."
"또 있습니다."
"뭐죠?"
"방송광고를 더 강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광고란 것이 이름이 알려질 때 확 밀어붙여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광고는 지금도 많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말한 광고는 직접적인 광고가 아니라 간접 광고입니다."
"간접광고라면 우리가 만든 요리를 방송에 내보내자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 제작사를 섭외해서 저희 매장을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사용하게 하거나 유명 연예인을 매장으로 초청해서 이를 방송에 노출하면 직접 광고보다 더 큰 홍보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괜찮은 것 같군요. 바로 방송사와 접촉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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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졸업자로 위장한 미국인 조리기능사들이 박현식의 매장에서 일을 시작한 4월초에도 지훈 일행은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에서 열심히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꼬꼬뱅은 백성들의 가난한 삶이 안타까웠던 국왕이 일요일만큼은 닭을 먹으라고 해서 만들어진 민가의 요리인데 처음에는 물을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와인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귀족사회와 왕궁에서도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마스터, 와인을 사용하면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닭고기의 잡냄새가 사라지기에 귀족들과 왕족들도 먹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와인을 사용하기 전에는 무엇으로 닭고기의 잡냄새를 잡았을까?"
"이전에는 와인 대신 다른 것을 넣었다는 것입니까?"
"이전만이 아니라 지금도 넣고 있다."
"마스터, 혹시 월계수 잎입니까?"
"그렇지! 바로 월계수 잎이다. 그리고 지금에 있어서는 와인의 달콤하고 깊은 향기에 월계수 잎의 싱그러운 향을 살려야만 풍미를 더할 수 있다."
"마스터, 와인과 월계수 잎을 함께 끓이면 와인의 짙은 포도향이 월계수 잎의 향기를 덮어버릴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게 정상이지. 그러면 월계수 잎의 싱그러운 향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월계수 잎을 오랫동안 와인에 끓여야 합니까?"
"월계수 잎을 오래 끓인다, 과연 그게 방법이 될까?"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지훈, 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월계수 잎은 특유의 쓴맛이 있는데 오래 끓이면 아무리 와인을 많이 넣는다고 해도 쓴맛이 강하게 우러나와서 달콤한 맛이 중화될 것입니다."
"지훈, 월계수 잎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군. 맞아! 월계수 잎을 오래 끓였다가는 꼬꼬뱅을 아예 망치게 될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싱그러운 향을 살릴 수 있을까?"
"마스터, 차처럼 월계수 잎을 우려낸 물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물과 와인을 같이 사용하자고? 그건 그만큼 와인의 사용량을 줄이자는 건데, 그게 정답이 될 수 있을까?"
"마스터, 잘 모르겠습니다."
"마스터, 정답을 알려 주십시오."
"정답은 두 가지다. 그중 왕실에서 사용한 전통적인 방법은 칼집을 낸 월계수 잎을 와인에 10분 정도 담근 후에 그 와인을 조리에 사용하면 된다."
"마스터, 칼집을 내는 이유는 월계수 잎의 진액을 흘러내게 하기 위함입니까?"
"정답이다. 월계수 잎의 진액은 기름을 함유하고 있어서 와인과 섞이지 않고 떠다니다가 조리 과정에서 닭에 스며든다."
"그렇군요. 그러면 또 다른 방법은 뭡니까?"
"그건 구아바 잎을 월계수 잎과 함께 사용해서 끓이면 된다."
"구아바 잎이요?"
"구아바 잎과 월계수 잎을 함께 끓이면 놀랍게도 월계수 잎의 쓴맛이 사라지면서 싱그러운 향이 더욱 강해지고 와인의 달콤함도 진해진다."
"오~!"
"와~우!"
"마스터, 비율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꼬꼬뱅의 경우는 7:3으로 구아바 잎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는 와인 자체가 달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육수를 만들 때에는 5:5까지 사용량을 늘려도 된다."
"다른 재료와 조화를 고려해서 그 비율을 조절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뽀이도퀴시는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했고, 지훈 일행을 비롯한 셰프들은 새롭게 알게 된 생생한 지식을 노트에 적으며 암기했다.
"지금부터 꼬꼬뱅을 실제로 만들도록 하겠다. 꼬꼬뱅이 가장 자주 만들어지는 시기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 있나?"
"11월 셋째 주 목요일 이후부터입니다."
"그 이유가 뭐일 것 같은가?"
"보졸레 누보는 다른 와인과는 달리 알갱이를 분쇄하지 않고 통으로 사용한 후, 발효와 숙성과정을 짧게 해서 깊은 맛은 떨어지지만 향과 달콤함이 강해서 꼬꼬뱅의 달콤함을 잘 살릴 수 있어서입니다."
"마스터, 11월 셋째 주 목요일과 보졸레 누보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동석, 프랑스에 온지 1년이 넘었음에도 보졸레 누보가 언제 출시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네?"
"보졸레 누보는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자정 이후에 출시되지. 보졸레 누보 축제가 그날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축제 때 꼬꼬뱅을 반드시 만들어 먹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네."
"아!"
"누누이 말하지만 요리의 조리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리의 유래와 관련된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네."
"죄송합니다."
조리법에 이어서 그것과 관련된 문화까지 알게 된 지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보졸레 누보 축제와 관련된 내용도 태블릿에 필기하고는 조리에 들어갔다.
태블릿에는 르꼬르동 블루에서 배운 것부터 시작해서 이곳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에서 배운 것들이 수십 개의 파일로 분류되어서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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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도 끼워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고색창연해진 고성의 담벼락에는 싱그러움을 가득 머금은 파란 담쟁이덩굴이 줄기를 힘차게 뻗어가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피크닉을 나온 많은 시민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쉬농소 성의 정원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싸온 지훈과 수아의 모습도 보였다.
"오빠, 우리도 저쪽에 앉자."
"이곳의 정원이 무척 아름답다고 하더니 정말 좋다."
"그러게.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동석 오빠와 혜미도 무조건 데려오는 거였는데."
"둘이서도 좋은 시간 보내고 있겠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지훈과 수아는 가져온 메트를 잔디밭에 깔고 앉았다.
그리 강하지 않은 햇살사이로는 산들 바람까지 살살 부는 것이 절로 상쾌해졌다.
"저 친구들은 벌써부터 선탠을 하네."
"오빠, 민망하니까 자꾸 쳐다보지 마."
"잠깐 보는 건데 뭐 어때? 수아야, 우리도 할까?"
"됐어. 오빠나 해."
파리에 살면서 종종 느끼는 거지만 유럽인들은 선탠을 너무도 좋아해서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공원 곳곳에서 그런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난, 눕고 싶은데 누워야겠어."
"베개가 없어서 불편하지 않겠어?"
"베개가 왜 없어?"
말하기 무섭게 수아의 품으로 파고든 지훈은 그녀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웠다.
"힘들면 말해?"
"아냐, 괜찮아."
푹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아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린 지훈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의 수업 내용이 자주 나왔다.
"그때 배운 크로크 무슈도 대단하지 않니?"
"맞아. 고작 허브만 바꿨는데 맛이 그토록 변하다니 엄청난 충격이었어."
"매번 느끼는 건데 프랑스 요리는 허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도 그렇게 느꼈어. 그런데 오빠는 어쩔 거야?"
"뭐가?"
"다음 주면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의 수업이 끝났는데 그 이후에는 한국으로 들어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