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84화 (84/219)

<-- 84 회: 3-11 -->

에콜 드 퀴진 뽀이도퀴시는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에 일하게 될 신입 셰프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교육기간은 총 19주였는데 지훈 일행은 18주째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야지."

"가면 그때 말한 레스토랑을 바로 오픈할거야?"

"억지로 무리하게 서두를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오픈하고 싶어."

"오빠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넌, 어쩔 건데? 지금이라도 선배들을 통해서 호텔의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냐?"

"실은 그것 때문에 오빠에게 할 얘기가 있어."

"뭔데?"

"오빠,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어서!"

"알았어."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 약속."

대체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수아는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의 무게감을 상기시킨 후에 얘기를 시작했다.

"오빠, 난 에콜 드 퀴진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내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 그래서 이곳에 남아서 좀 더 요리를 배우고 싶어."

"뭐?"

수아와는 추구하는 요리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것은 진즉부터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일을 못한다고 해도 당연히 한국에 함께 있을 거라고 여겼고, 그러면 얼마든지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가게가 자리를 잡으면 내년 가을쯤에는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 지훈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수아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홀로 프랑스에 남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오빠, 나는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에서 2~3년 정도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수아야,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건데?"

"갑자기가 아냐. 르꼬르동에 있을 때부터 몇 년 정도는 프랑스에 더 머물면서 내가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었어."

"수아야, 너는 지금도 훌륭한 셰프야. 굳이 더 배우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해."

"오빠, 나는 오빠 같은 천재가 아냐. 하지만 오빠처럼 모든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셰프가 되고 싶어."

"지금도 인정을 받아서 각국 정상들의 만찬도 준비하고 그랬잖아?"

"그건 순전히 오빠 때문에 그리 된 것이지, 내 능력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잖아?"

"수아야, 꼭 프랑스에 남은 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닌데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자."

"오빠, 아예 한국으로 안 돌아가겠다는 게 아냐. 단지 2~3년만 더 머물면서 내가 내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실력을 쌓고 싶어."

"하~아!"

생각지도 못했던 수아의 폭탄 발언에 지훈은 한숨을 내쉬다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수아가 다른 시간대에서도 귀국이 늦어졌을까? 아니야. 그때는 르꼬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바로 귀국을 했었어. 그래! 강하게 반대를 하면 나와 함께 한국으로 갈지도 몰라.'

다른 시간대의 미래를 떠올린 지훈은 설득을 하면 한국으로 함께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듭해서 반대를 했다.

그러나 수아는 이미 뜻을 굳혔는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오빠, 나는 르꼬르동에서도 그랬지만 에콜 드 퀴진에서 뽀이도퀴시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너무 행복했어. 그리고 많이 부족하지만 그분의 지도를 받으면 오빠 못지않은 셰프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

"수아야, 하지만......"

"오빠, 2~3년만 기다려줘. 뽀이도퀴시 셰프에게 많은 것을 배워서 오빠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셰프로 성장해서 당당하게 돌아갈게."

많은 것이 바뀌면서 다른 시간대와는 달리 뽀이도퀴시의 지도를 받은 수아는 요리에 대한 열망이 더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수아의 간절한 눈빛에서 그 마음을 읽은 지훈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수아는 한 사람의 셰프로서 자신의 성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내가 계속해서 반대를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일까?'

프랑스에서 1년 넘게 매일같이 붙어 지내다 보니 이제는 수아가 옆에 없는 생활은 상상이 안 되었다.

그러나 수아를 진짜로 사랑한다면 한사람의 셰프로서 성장하고 싶은 그녀의 꿈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아가 없는 한국에서의 시간이 무척 외롭고 길게 느껴지겠지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수아의 뜻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수아야, 지금과는 달리 혼자인 만큼 무척 외로울 거야."

"각오하고 있어. 그리고 오빠를 마음껏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도 슬퍼. 하지만 외로움과 슬픔을 반드시 극복해서 오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셰프가 되고 말겠어."

"시간 나면 널 보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에 올게."

"오빠, 고마워. 나 진짜, 열심히 할게."

"나까지 떼어놓고 혼자만 남았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너라면 분명 세계 최고의 셰프가 될 수 있을 거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참! 나 없다고 바람피우면 알지?"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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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하순이 되면서 눈부시게 흐드러진 꽃이 곳곳에 피어난 루피에르의 정원에는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많은 이들이 음식과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지훈, 시간 나거든 파리로 종종 놀러 오게."

"자주 오겠다는 약속은 못하겠지만 기회가 닿으면 꼭 오도록 하겠습니다."

"지훈, 남편과 함께 시간을 내서 한국으로 놀러갈게요."

"한국에 오시면 제가 한국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으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얘기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오늘의 파티는 이틀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훈과 동석 그리고 혜미를 환송하는 파티로, 루피에르 부부가 준비했다.

그런데 파티의 참가자가 너무도 화려했다.

먼저 홀란드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당연했고 프랑스의 내각을 이루고 있는 각 부처의 장. 차관이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그리고 총리를 비롯해서 수많은 의원들이 참석했고, 한국 대사와 미국 대사를 비롯해서 유럽 각국의 대사들도 참석해서 지훈과의 작별을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작별을 아쉬워하는 이가 있었으니 마리안이었다.

참고로 그녀는 수아가 프랑스에 더 머문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별은 예견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임박하니 너무 슬프고 아쉽네요."

"마리안, 한국 가서도 자주 연락할게요. 그리고 SNS를 통해서 계속 소식을 주고받아요."

"그래야죠. 하지만 서울과 파리는 너무 멀어서 보고 싶을 때 볼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누구와 소주잔을 기울이죠?"

"유학생 모임이 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 친구들은 지훈과 수아처럼 맛있는 어묵 탕을 끓일 수가 없잖아요?"

"마리안, 가기 전에 맛있는 어묵 탕을 끓이는 법을 알려주고 갈게요."

"수아, 내가 끓인다고 그 맛이 날지 모르겠어요? 아! 이참에 나도 다시 한국으로 갈까요?"

"정말요? 마리안, 다시 한국으로 갈 수 있어요? 아! 마리안까지 한국으로 가면 어떡하죠? 그때는 정말 나 혼자만 남겠네요."

"수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마리안, 수아는 프랑스에 몇 년 더 있을 거예요."

"정말요? 수아, 정말이죠?"

"네. 그렇게 됐어요."

수아가 프랑스에 남는다는 말에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던 마리안은 뒤늦게 지훈을 떠올리고 질문을 했다.

"헤헤~! 수아가 남기로 했다니 너무 좋아요.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하지 않아도 괜찮나요? 난 두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고, 그래서 레스토랑도 같이 열 것이라고 추측했었는데."

"함께 할까도 생각해봤는데 오빠와 나는 추구하는 요리세계가 달라서 앞으로도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더 배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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