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86화 (86/219)

<-- 86 회: 3-13 -->

작은 수첩을 꺼낸 지훈은 그나마 관심이 가는 상가의 정보와 연락처를 수첩에 옮겨 적으며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사이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주방 쪽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책상 한쪽에 올려났던 휴대폰에서 채팅 어플의 경쾌한 알람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누구지?"

-오빠, 들어왔어?

'리아구나.'

발신자가 리아임을 확인한 지훈은 그녀의 물음에 어제 밤에 귀국했음을 알렸고,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채팅을 주고받았다.

-수아가 없어서 오빠가 외롭겠다.

'적응해야지.'

-수아 대신 내가 많이 놀아줄 테니까 외로워하지 마.

'말만으로도 고맙다.'

-말만이 아닌데? 오빠, 오늘 시간 있어?

'몇 시쯤에?'

-점심, 같이 먹자.

'괜찮을 것 같아. 어디서?'

-오빠가 우리 사무실 근처로 올래?

'강남 쪽이지?'

-앙!

'12시쯤에 근처에 가서 전화할게.'

-알았어. 이따 봐!!!

채팅을 끝낸 지훈은 어머니가 아침먹자고 부를 때까지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지며 정보를 모았고, 그 이후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돌아다녀보니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허탕만 쳤다.

"이크!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인터넷을 통해서 점찍은 상가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보니 이동에도 적잖은 시간을 소모한 지훈은 리아를 만나기 위해서 강남으로 이동했다.

'중고차라도 한 대 구입해야지, 안 되겠어.'

얼마 후, 리아가 소속된 기획사 앞에 도착한 지훈은 전화를 걸었고, 몇 분 후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리아와 마주했다.

그런데 리아의 뒤에는 처음 보는 두 명의 젊은 여자가 함께 따라 나오고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오빠, 귀국을 축하해."

"잘 지냈지?"

"나야 늘 그대로지."

"신곡 반응, 정말 뜨겁더라."

"그게 다 오빠 때문이지. 고마워, 오빠."

그때 파리에서 골라준 후속곡은 가수가 리아로 바뀌었음에도 지훈이 알고 있는 것처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서 지구촌 전역을 강타했다.

그 덕에 연거푸 2곡을 빅 히트한 리아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명실상부한 글러볼 슈퍼스타가 되었다.

"네가 노래를 잘 불러서 그렇게 된 거지, 왜 나 때문이야?"

"그런 소리 마. 오빠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도 그렇고 그런 가수로 지내거나 아니면 연예계를 은퇴했을지도 몰라. 참! 인사해. 이쪽은 내 친구들이야. 내가 솔로 나오기 전, 걸 그룹 할 때 같이 했던 멤버들이야."

"안녕하세요. 레이나에요. 그냥 편하게 이나라고 불러주세요. 오빠 얘기는 리아에게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지 처음 보는데도 낯설지가 않네요."

"오빠는 광고보다 실물이 더 나은 것 같네요. 전 예은이에요."

"반갑습니다. 이지훈입니다."

"오빠, 레이나와 예은이는 나의 베스트 친구들이야. 이나는 노래도 엄청 잘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곱고 예은이는 랩과 댄스 실력이 장난이 아니야."

"리아가 이렇게 칭찬을 할 정도면 실력들이 대단하나 보네요."

레이나와 예은과 인사를 나눈 지훈은 다른 시간대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다른 시간대의 미래에서 레이나는 앞으로 몇 년 후에 섹시 디바로 자리 잡게 되고, 예은은 예능 프로의 게스트로 자주 방송에 출연했음을 떠올렸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그나저나 예은은 무슨 스캔들에 휘말렸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더라?'

"오빠, 내 친구니까 편하게 얘기해."

"초면에 어떻게 그래?"

"아니에요. 편하게 불러 주세요. 저도 오빠라고 해도 되나요?"

"나도 앞으로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당연하지, 나한테 오빠니까 너희들도 오빠라고 해야지. 오빠, 괜찮지?"

"으... 응."

처음 보는 사이이기에 호칭 문제로 살짝 불편할 수도 있는데 리아 덕에 그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덕분에 한결 자연스러워진 지훈은 예은과 레이나에게도 편하게 얘기했고, 그사이 한 대의 밴이 다가와서 멈췄다.

"오빠, 가자. 오늘은 내가 쏠게."

"근처에서 먹는 것 아니었어?"

"귀국하고 처음 만났는데 제대로 쏴야지. 오늘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 실은 오빠에게 부탁할 것도 있단 말이야."

"뭐?"

"가서 얘기할게."

"바쁠 텐데 시간 괜찮아?"

"큭큭, 아프다는 핑계로 오후 스케줄은 다 펑크 냈어."

"야! 그러다가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인기를 얻을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고 했잖아. 마음은 고맙게 받을 테니 근처에서 가볍게 먹자."

"걱정 마. 화보 촬영인데 다음으로 미뤘어. 그리고 감기에 몸살기운이 있는 것은 사실이야."

"오빠, 정말이에요. 리아, 오빠 만나기 전까지 링거 맞고 있었어요."

"이런, 괜찮아? 가수가 감기에 걸리면 어떡해?"

"많이 좋아졌어."

"아침에 말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오빠가 내 몸에 좋은 차나 음식을 준비해왔을 것 아냐?"

"그래도 몸부터 챙겨야지."

"다음에, 오늘은 내가 오빠를 대접하고 싶은 날이어서 일부러 말 안 했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시원한 강물이 보이는 양평에 당도했고, 작은 언덕에 자리한 식당의 안마당에 멈췄다.

"오빠, 여기가 토종닭과 약재를 사용한 한방 백숙으로 유명한 곳이야. 오빠가 하는 것보다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내 성의를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줘."

"고마워, 잘 먹을게. 참! 닭이 원기 회복에는 좋으니까 너에게도 괜찮겠다."

"오빠, 들어가자. 이미 예약을 해서 준비가 다 되어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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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한방 백숙을 먹기 좋게 찢어서 세 명의 여자에게 나눠준 지훈은 음미하듯 국물부터 떠먹었다.

"오빠, 어때?"

"약재의 향이 진하게 느껴지면서도 국물 맛이 개운한 것이 좋은 것 같아."

"솔직히 오빠가 하는 것보다는 못하지?"

"아냐, 요리하시는 분의 정성이 느껴져서 아주 좋아."

"지훈 오빠,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을 어떻게 느낄 수가 있어요? 뭘 보고 그걸 알 수 있죠?"

"국물 맛만 봐도 알 수 있지. 약재를 먼저 끓이고 그 약수를 이용해서 닭을 삶아서 약재 특유의 진한 향을 많이 억제해서 맛을 지키면서도 먹기 편하게 했는데 그게 다 정성이지."

"그렇구나."

"역시 오빠는 셰프라 우리와는 생각하는 것이 다르네."

"식겠다. 어서 먹어."

한방 백숙으로 시작된 얘기는 자연스럽게 요리와 관련한 얘기로 이어졌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 유학시절의 얘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 식사는 끝났고 지훈은 예은과 레이나와도 한결 가까워졌다.

"오빠, 리아 얘기로는 오빠가 두 곡을 다 골라줬다고 하던데 사실이에요?"

"그렇다니까! 심지어 지금의 콘셉트를 잡아준 사람도 바로 오빠였어."

"오빠, 정말이에요?"

"내가 무슨 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우~와! 오빠는 요리사가 아니라 연예기획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내가 연예기획자는 무슨, 순전히 우연이야."

"연거푸 두 번이나 빅 히트곡을 골랐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죠."

"맞아요."

"아니야. 그냥 느낌이 좋은 곡을 골랐을 뿐인데 리아의 실력이 워낙 좋아서 히트가 된 거야."

"느낌이요? 오빠는 노래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와요?"

"좋다, 또는 마음에 든다는 느낌은 누구나 갖는 것 아냐?"

"그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에요."

"오빠, 내 노래도 들어보고 느낌을 얘기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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