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회: 3-15 -->
"뒤쪽에 대략 45평 정도의 공간이 있으니 구청의 허가를 받으면 그건 문제도 아니요."
"허가는 바로 나오나요?"
"내 땅에 내가 건물을 짓겠다는데 뭐가 문제겠소?"
"그렇다면 주방 문제도 해결될 것 같은데, 저 밖의 건물은 뭐죠?"
"그건 창고로 썼던 건물로, 지금은 텅 비어 있소. 어떻소, 계약을 할 생각이 있소? 사실 이 건물은 시세보다 많이 싸게 나온 통에 눈독을 들인 사람이 여럿 있는데 젊은이 인상이 좋아서 내가 특별히 보여준 거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곳보다 이곳이 마음에 든 지훈은 별 문제가 없다면 이곳을 계약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세에 비해서 상당히 싼 가격이 마음에 걸려서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그 부분을 물었다.
"혹시 저당이나 압류가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건 등기부 등본을 직접 떼어보면 알겠지만 아무 문제없이 깨끗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소."
"제가 직접 가서 등기를 확인 해봐도 되겠습니까?"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래야 할 것 아니오? 갑시다. 간 김에 입구의 공터 주인과도 만나서 계약을 하는 게 어떻겠소? 거기가 노는 땅이라고는 해도 세상일이란 것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미리미리 계약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일단 가시죠."
김평오는 은연중에 계약을 서둘렀다.
반면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지훈은 마침내 적당한 가게를 찾았다는 생각에 마냥 좋아서 등기소로 향했고, 등기부 등본에 아무 하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순간 계약의사를 밝혔다.
###
그날 오후, 카페 주인과 만나서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한 지훈은 김평오와 함께 공터의 토지주인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가게 앞의 공터는 주식회사 일성건설의 소유였기에 해당 건설회사의 총부부장을 만나서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한 달에 90만원이니까 90만원을 주시면 됩니다."
"한 달이 아니라 아예 3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습니까?"
"그 문제는 한 달 후에 다시 상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저희 대표님이 외국 출장 중이라 지금은 안 계셔서 결제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대표님은 언제 오십니까?"
"공교롭게도 오늘 나가셨는데 외국 현장을 둘러보고 가신 김에 관광까지 하시고 들어온다고 하셨으니, 빨라도 일주일 후에나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계약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터를 오래 사용하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 문제라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이전에도 그랬지만 저희 대표님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한 달 후에도 이지훈씨에게 임대를 하실 것이고, 그때는 원하시는 것처럼 장기로 계약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혹시 그 내용을 지금의 계약서에 삽입할 수 있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넣겠습니다."
건물을 구입한 이상 그곳에서 영업을 계속해야 하기에 지훈은 가급적이면 장기 계약을 해서 아무 걱정 없이 오랫동안 공터를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가 없다는 말에 한 달 후에도 임대를 해주고, 그때 장기 계약을 체결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90만원을 건넸다.
"한 달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한식당을 차린다고 들었는데 대박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오시면 제가 대접을 하겠습니다."
"아이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만족스런 결과를 얻은 지훈은 주방의 건축과 관련해서 김평오로부터 조언을 듣고는 구청을 찾아갔다.
한편 지훈과 헤어진 김평오는 다시금 건설회사로 돌아가서는 대표이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외국 출장 중이라던 일성건설의 대표이사가 두 명의 사내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세 사람 모두 덩치가 크고 인상이 날카로운 것이 풍기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김 사장, 그 어리바리한 놈은 돌아갔소?"
"주방을 신축할 생각에 구청으로 갔을 것입니다."
"구청 쪽에 얘기해서 신축 허가를 쉽게 내주도록 해야겠군."
"정 대표님, 본격적인 작업은 주방이 신축된 후에 하실 생각입니까?"
"돈을 쓸 만큼 쓰게 한 후에 작업에 들어가야 더 확실하지 않겠소?"
"아무튼 주방까지 지어지면 다음번에는 좀 더 비싸게 팔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훈은 모르고 있지만 오늘 구입한 건물의 별관은 일성건설의 대표이사인 정범수가 지은 건물이었다.
즉, 토지의 주인과 별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서 정범수는 합법적으로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등기부 등본에는 근저당이나 압류는 표시가 되지만 점유권은 표시가 안 되는 법이어서 김평오로부터 그 얘기를 듣지 못한 지훈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참고로 폭력조직의 중간 보스인 정범수는 지금껏 점유권을 핑계로 별관에 부하들을 보내서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며 터무니없는 금액을 별관의 건축비로 요구했다.
아울러 한 달 이후부터는 공터의 사용료도 수천만 원을 요구하며 카페 주인을 압박해서 종래에는 대략 10억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남기며 카페를 다시 구입하고 이를 되파는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형님, 이번에는 얼마나 남기실 생각입니까?"
"그거야 견적을 따져봐야 알지. 김 사장이 보기에 어떨 것 같소? 나이가 어린 것이 혹시 부모가 돈이 있거나 높은 자리에 있어서 힘 좀 쓰는 사람인 것 아니오?"
"계약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어머니는 전업 주부라고 했으니 뒤탈은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놈이 30억이 넘는 건물을 구입했다고?"
"저도 그게 이상해서 물어봤는데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그 친구의 요리 실력을 믿고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그놈이 요리사라고?"
"저도 그 친구의 얘기를 듣고야 알았는데 외국 유학까지 가서 요리를 배워왔다고 합니다."
"미친놈, 그깟 식당을 하겠다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
"형님, 그렇게 어리바리하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도 못하고 바로 걸려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작업을 더 크게 해서 돈을 더 남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형님, 그렇게 하시죠. 동생들도 2년 동안 몇 번 해본 통에 지금은 요령을 잘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작업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얼마나 남겨 먹자고?"
"형님, 차도 새로 뽑고 동생들 용돈도 두둑하게 챙겨주려면 15억은 남겨야지 않을까요?"
조폭들이 별관을 차지한 채 공포분위기를 자아내면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해서 지금껏 카페를 구입한 사람들은 그동안 제대로 된 장사를 해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정범수의 요구대로 별관 건축비를 줬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에 결국에는 다시 건물을 매각하게 되는데 그때는 이 사정이 알려져서 제 값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니 문제의 카페를 구입한 사람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큰 손해를 보고 다시 팔아야했고, 그때마다 김평오가 나서서 그 일을 마무리했다.
물론 그때마다 김평오는 복비를 챙겼을 뿐만 아니라 정범수로부터 별도의 수고비까지 받았다.
"김 사장, 생각은 어때? 가능할 것 같아?"
"대표님, 동생들이 일처리를 잘해주고 제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가능도 할 것 같은데요."
"형님, 동생들 일은 제가 직접 챙길 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다면 적당히 챙겨 줄 테니 그렇게 해봐. 김 사장도 가운데서 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