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회: 3-17(6. 나만 믿으세요!) -->
"수아, 걔는 다른 여자들이 채가면 어쩌려고 널 그렇게 풀어놓는지 모르겠다."
"제가 다른 여자에 관심이 없으니 그걸 믿고 그러는 거죠."
성훈 부부는 수아가 같이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과 함께 우려를 드러내다가 나중에는 지훈을 격려하는 말로 얘기를 끝냈다.
"지훈아, 한국에 돌아왔는데 앞으로는 어쩔 거니?"
"가게를 열 생각이에요."
"프랑스 레스토랑?"
"아뇨. 한식당이요."
"한식당?"
"지훈아, 프랑스에서 힘들게 배운 것은 어떡하고 한식당을 차리겠다는 거야?"
"충분히 살려야죠."
"그럴 거면 정식으로 프렌치 레스토랑을 차려야지."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훈 부부도 한식당을 차리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드러냈고, 지훈은 자신이 생각하는 한식당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요리는 한국식인데 서비스 방식은 유럽 스타일이네?"
"그런 셈이죠."
"가게는 계약했어?"
"얼마 전에 계약했고 모레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요."
"위치는 어디로 했어?"
"성북동 북악산 근처에 잡았어요."
"북악산 근처면 너무 외진 것 아냐?"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근처에 유명 한식당이 몇 집 있어서 자연스레 우리 가게도 알려질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가게란 것은 목이 좋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처음에는 고전하겠지만 꾸준히 자리를 지키면 나중에는 괜찮아 질 거예요. 그보다 형이랑 누나에게 물어볼게 있어요."
"뭐?"
"가게를 계약하기는 했지만 집기와 비품부터 시작해서 식자재 구입처까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도와주시면 안 돼요?"
"그런 거야 일도 아니지."
"지훈아, 그건 성훈씨가 꽉 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성훈형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함께 일할 직원들은 어떻게 뽑아야죠? 생활정보지나 구인 사이트에 올려야 하나요?"
"그게 일반적이지."
"지훈아, 오픈 예정일이 언제이지?"
"다음 달 중순쯤이에요."
"다음 달 중순이라면, 우리 가게 직원들을 데려가는 것 어때?"
직원들 모집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던 도중에 이곳의 직원들을 데려가라고 말한 이는 정미선이었다.
그녀는 다음 달 중순이면 이곳을 정리할 생각임을 솔직하게 털어놓고는 자신들과 함께 했던 직원들을 칭찬하면서 그들이라면 지훈의 가게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내를 해주던 직원을 통해서 그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성훈 부부의 자존심을 고려해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지훈은 아무 것도 모른 척 성훈 부부의 이후 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나와 성훈씨는 취직을 할 생각이야."
"누나,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을 해도 되잖아요?"
"돈이 있어야 하지."
"지금이야 그렇지만 예전에는 장사가 잘 되어서 돈을 제법 모아났을 것 아니에요?"
"장사는 잘 되었지만 은행 대출금 갚고, 가게 월세 내고 나면 얼마 안 남았어. 그리고 그나마 모은 돈도 주방용품을 비롯해서 시설에 투자해서 별로 없어."
"그나마 은행 대출금 갚은 것만큼 번 셈인데, 시설비와 비품 대를 받지 못하고 나가야 할 상황이라 실제로 번 돈은 없는 셈이야."
"그러면 시설비와 비품 대를 받아야죠."
"새로 들어올 사람이 우리와 업종이 아예 달라서 그것들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냐."
"아~후! 그러면 그것들은 전부 어떻게 하는데요?"
"업자 불러서 땡 처리 해야지."
"그럴 거면 그것들을 제게 파세요. 제가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할게요. 아! 그리고 형과 누나도 저와 함께 일하는 게 어때요?"
"우리가 너와?"
"어차피 함께 일할 셰프들을 구하고 있었는데 형과 누나가 함께 해준다면 나로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는 격이죠."
성훈 부부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는 그들이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기에 지훈은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승낙을 받아냈다.
아까 지훈을 안내했던 여직원이 다가와서 40명의 단체손님이 왔음을 알린 것은 그 직후였다.
"사장님, 유병만 회장님이 오셨어요."
"그래, 어디 계셔?"
"유 회장님과 몇 분은 1번 VIP룸으로 모셨고 다른 분들은 2번 룸과 단체석으로 안내를 했어요."
"성훈씨 나가봐야지."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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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만 믿으세요!
박성훈이 허둥지둥 떠난 작은 룸에는 지훈과 정미선만 남았다.
지훈은 어느새 자리에 일어나서 주방으로 들어가려는 정미선에게 자신도 돕겠다면서 함께 일어났다.
"됐어, 손님으로 와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40명이 왔다는데 셰프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지."
"나와 성훈 씨만으로도 충분해."
"아까 성훈형 표정으로는 무척 귀한 손님 같은데 요리를 빨리 해드리는 게 예의지. 그나저나 어떤 고객이기에 형이랑 누나가 이렇게 반기는 거야?"
"유 회장님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신 분이야."
"어떤 도움?"
"가게를 막 오픈했을 무렵에는 근처의 불량배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었어."
"그런 양아치들이 지금도 있어?"
"이곳은 상권이 크게 형성된 데다가 근처에 유흥가가 있어서 더 그랬어."
"그런데?"
"유 회장님이 나서서 싹 정리해줬어."
"어떻게?"
"자세한건 나도 모르는데 유 회장님이 오신 뒤로 불량배들이 근처에 얼씬도 안 했어. 그리고 종종 오늘처럼 단체 손님을 데리고 와서 매상을 많이 올려줬어."
"불량배들을 쫓아낸 것이 그 사람도 조폭인 것 아냐?"
"성훈씨 말로는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엿한 사업가래. 그리고 우리 가게 와서도 매너를 깍듯하게 지켰고, 매번 맛있다면서 계산을 두둑하게 하고 갔어."
"어쨌든 형이랑 누나에게는 도움을 주신 분이라니까 내가 간만에 실력발휘를 할게."
"지훈아, 유 회장님은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모임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
"무슨 도움?"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매달 우리 모임에 많은 후원금을 보내준 독지가가 유 회장님이야."
키친 마스터 이후, 장철우를 제외한 결선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서 고아원 아이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행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아울러 익명의 독지가가 계속해서 상당한 금액을 매달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훈도 인터넷에 개설된 카페의 공지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뭐! 그 독지가가 그분이라고?"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나도 요리를 해야겠어. 나도 그 얘기를 듣고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내가 만든 요리를 대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거든."
익명의 독지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어서 지훈은 미선의 등을 떠밀며 주방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유병만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VIP룸을 빠져 나온 박성훈은 뒤따라서 나온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과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 사장님, 오늘 요리는 최고로 신경 써서 해주십시오. 아마 회장님이 이곳을 찾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노 사장님, 물론입니다.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휴~우!"
박성훈은 유병만이 걱정할까 싶어서 조만간 이곳을 정리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식사를 마치고 떠날 때쯤에는 사정을 알리고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병만이 더 이상 찾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되자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연유를 물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