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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건강이 많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안색이 안 좋으셨군요."
"맞습니다."
"회장님 건강이 많이 안 좋다면 병원에 입원하시는 것입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입원하면 되잖습니까?"
"후~우! 우리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노영필은 대답을 하다 말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더니 슬픔을 억누르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박성훈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회장님이 불치병이라도 걸린 것입니까?"
"간암 말기라서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답니다."
"네~에?"
"간암이 원래 그래서 뭔가 이상을 느낄 때에는 이미 늦을 때가 많답니다. 그런데다가 회장님이 그동안 고통을 참고 견딘 통에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박 사장님은 내색하지 마십시오. 의사들 얘기로는 3달에서 4달밖에 안 남았답니다."
"고작 3~4달이요?"
"회장님은 남은 시간동안 바닷가에서 조용히 지내실 생각이라 며칠 후에는 서울을 떠나실 예정입니다."
"하~아!"
"참! 회장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해주시되 가급적이면 속이 편하게 해주십시오. 의사들 말이 소화능력도 많이 떨어져서 그런 음식을 드시는 게 좋답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노영필과 얘기를 마친 박성훈은 축 늘어진 모습으로 주방에 들어섰다.
박성훈의 그런 모습을 본 정미선이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자기야, 유 회장님이 간암 말기래."
"간암?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너무 늦어서 병원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는 거야?"
"길어야 서너 달 남았네."
"아! 어떡해."
"며칠 후면 서울을 떠나서 조용한 바닷가에서 생을 정리할 생각이라 오늘이 우리 가게를 마지막으로 찾는 거래."
서로를 바라보는 박성훈과 정미선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그렁거렸다.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만 듣고 있던 지훈은 간암에 좋은 식자재를 떠올리다가 한마디 했다.
"형, 주문은 뭘 받았어요."
"바다가재를 드시고 싶데."
"다른 것은?"
"나머지는 지금껏 내가 알아서 했어."
"형, 울금 있어?"
"그거야 있지."
"혹시 향신료 중에 오레가노로 만든 것도 있어?"
"유럽 각국요리에 두루 사용하는 건데 당연히 있지."
"형, 미안한데 내가 요리하면 안 될까?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말기 간암 환자가 음식으로 병을 고친 사람을 봤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먹고 병을 고쳤는지 자세히 물어봤거든."
앞으로 같이 일을 하기로 했지만 이곳은 엄연히 박성훈과 정미선의 주방이었다.
그러기에 지훈은 먼저 양해부터 구했다.
반면 성훈 부부는 간암 말기 환자가 병을 고쳤다는 말에 크게 반색하며 오히려 부탁을 했다.
"고마워. 그러면 유 회장님이 드실 음식은 내가 할게."
"지훈아, 부탁한다. 그리고 고마워."
"그분이 우리 모임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는데,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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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룸에는 초췌한 표정의 유병만을 중심으로 4명의 중년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에피타이저를 가지고 들어온 박성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님, 혹시 이지훈 셰프를 아십니까?"
"잘 모르겠는데 유명한 사람이오?"
"작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지하철 테러 때 많은 파리 시민을 구해서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 한국 젊은이라면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기억났소.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는 것이오?"
"그 친구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총리는 물론이고 유럽 각국의 정상들, 그리고 반기윤 UN 사무총장과 미국의 오바나 대통령도 찾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셰프입니다."
"혹시 오바나 대통령이 극찬했던 요리계의 피카소를 말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그 얘기는 박 사장이 몇 번 들려줘서 잘 알고 있소. 그 친구가 박 사장의 친한 후배라고 하지 않았소?"
"역시 기억하고 계시군요."
지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훈은 유병만이 가게를 찾아올 때면 지훈과 관련된 얘기를 종종했다.
덕분에 유병만도 지훈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박 사장이 그리 칭찬한 친구인데 내가 어찌 잊겠소. 그런데 그 친구 얘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가 뭐요?"
"회장님이 오늘 드시는 음식은 그 친구가 요리하고 있습니다."
"오! 세계 최고의 셰프가 요리를 하는 것을 먹을 수 있다니 영광이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친구를 만날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주 흥미로운 말을 제게 들려줬습니다."
"어떤 얘기를 들었기에 흥미롭다고 하는 것이오?"
"그 친구가 파리에 있을 때 병원에서도 포기한 간암 말기 환자가 식이요법으로 병을 고친 것을 직접 지켜봤답니다."
"박 사장, 정말이오?"
"대체 어떤 식이요법으로 말기 간암을 고쳤다는 것이오?"
"박 사장, 그 친구를 당장 불러주면 안 되겠소?"
병원에서도 포기한 말기 간암환자가 병을 고쳤다는 말에 유병만과 동행한 네 명의 중년 사내가 큰 관심을 보였다.
네 사내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박성훈은 웃는 낯으로 유병만 앞에 놓인 샐러드를 가리켰다.
"회장님 앞에 있는 샐러드에도 그 재료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올 요리에도 그것들이 사용될 것입니다."
"박 사장, 알고 있었소?"
"회장님 안색이 안 좋기에 제가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허~참!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쓸데없는 얘기를 했군."
"회장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벌어진 일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박 사장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것이 미안해서 그러는 것이지, 화난 것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뭐요?"
"지훈은 회장님이 한동안 저희 가게를 매일 방문 해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 식이요법을 해보겠다는 거요?"
"회장님, 그렇게 하시지요."
"회장님, 프랑스인이 병을 고쳤다면 회장님도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장님,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더니 유병만과 함께 온 4명의 중년 사내가 먼저 나서서 그리하자고 재촉했다.
그들 중에는 유병만을 바라보면서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글썽이는 자도 있었다.
"회장님, 제가 아는 지훈이는 허튼 소리를 하는 친구가 아닌큼 한번 믿어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회장님, 그렇게 하겠다고 하십시오."
"회장님이 싫다고 하시면 이번만큼은 우리 맘대로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셰프가 요리해주는 음식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다니 마지막 호사치고는 과분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회장님, 잘하셨습니다."
"박 사장, 그 친구를 만나서 부탁을 하고 싶은데 꼭 좀 모셔오시오."
"지금은 요리 중이라 어렵겠지만 조금 후에 시간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성훈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지훈은 바다가재 요리에 사용할 양념을 만들고 있었는데 울금 가루와 오레가노 그리고 토마토와 복숭아를 사용했다.
"지훈아, 복숭아는 단맛과 달콤한 향을 내기 위해 사용하니?"
"그것도 있고 토마토의 신맛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도 사용해요. 그리고 복숭아에 있는 펙틴 성분이 항암효과까지 갖고 있어요."
"울금은 비린내와 함께 잡내를 잡기 위해서 쓰는 것 같은데 거기에도 항암효과가 있어?"
"그럼요. 울금에는 커큐민이 대량으로 들어있는데 그게 항암효과에 아주 좋아요."
"그러면 오레가노도 그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