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94화 (94/219)

<-- 94 회: 3-21 -->

광고 계약을 재계약하는 것과 관련해서 생색을 내려고 했던 이재철은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급히 말을 바꾸었다.

동시에 새로운 광고를 추가로 계약하자면서 뚜랑주르 얘기를 꺼냈다.

"뚜랑주르는 어떤 상품이죠?"

"뚜랑주르는 상품의 명칭이 아니라 우리 그룹에서 의욕적으로 런칭시키고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브랜드 명입니다."

"아! 그게 레스토랑의 명칭이었습니까?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뚜랑주르의 인지도가 얼마나 낮은지 여실히 느꼈을 뿐만 아니라 더더욱 이지훈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지훈씨 뚜랑주르의 수석 셰프를 맡아 주십시오. 대우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큼 해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뚜랑주르의 CF광고도 이지훈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전무님, 죄송합니다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지훈씨, 한국 최고는 물론 세계 톱클래스의 셰프와 비교해고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의 연봉을 보장하겠습니다. 아울러 뚜랑주르를 비롯해서 지금하고 있는 CF계약을 매년 갱신해서 추가의 수익도 보장해주겠습니다."

광고 모델료만 해도 년 간 7억 원 이상이었다.

그러기에 이재철은 그 부분을 재차 언급했고, 그 이면에는 뚜랑주르의 수석 셰프를 거절하면 더 이상 광고모델로 기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내비쳤다.

'네가 그 정도의 돈을 거절할 수 있을까?'

연봉과 광고모델료를 합치면 10억이 넘었기에 이재철은 자신의 제안을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절이었다.

"이지훈씨, 대체 할 수 없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저만의 가게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도 내 제안을 받아들여야지 않을까요?"

"이미 적당한 건물을 매입했고 함께 일할 셰프들과 직원들도 모집을 한 상태입니다."

"귀국한지 아직 한 달도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일이 벌써 거기까지 진행되었습니까?"

"귀국하기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일이라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랬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훈이 자신의 가게를 오픈할 생각이고 이미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이재철은 이름만 빌려달라고 했다.

즉, 실제로는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지만 서류상으로는 뚜랑주르의 수석 셰프로 재직하면서 마치 뚜랑주르의 일을 도맡아서 하는 것처럼 해달라고 했다.

"죄송합니다만 그 제안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어렵다는 거죠?"

"제가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명목상으로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고객을 기만하는 행위 같아서 싫습니다."

"이지훈씨, 국내의 유명한 셰프들은 다들 그러고 있습니다. 심지어 키친 마스터의 심사위원들도 그런 식의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와 그분들은 다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그분들은 치킨이나 피자처럼 단일 품목을 취급하는 프랜차이즈와 계약을 했지만 제 경우는 그게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끝까지 거절하겠다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이지훈씨, 만약 내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면 광고 계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이지훈씨 인지도를 올리고 유지하기 위해서 재계약을 체결하는 건데 일이 이렇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광고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훈의 거듭된 거절에 자존심이 상한 이재철은 광고 재계약을 언급하며 압박했다가 오히려 본전도 못 찾았다.

덕분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그는 광고와 관련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심지어는 제약회사에서 요구한 임상실험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좋은 답변을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나가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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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병원과 함께 한국 최고로 꼽히는 TJ병원의 암 병동에 세 대의 고급 승용차자 줄지어 들어섰다.

현관 앞에 멈춘 세 대의 승용차에서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들이 바쁘게 내린 직후, 유병만과 노영필이 내렸다.

"회장님, 들어가시죠."

"노 사장, 예약은 했겠지?"

"김 박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내가 병원을 다시 찾다니 감회가 새롭군."

"회장님,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렴 그럴까?"

"회장님 안색이 좋아진 것을 보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각혈을 아예 안하시잖습니까? 그것만 봐도 많이 좋아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제 말이 맞을 것입니다."

너무 늦어서 손쓰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병원을 떠났던 유병만은 시체가 되어서야 병원을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자신의 두 발로 다시금 병원에 들어서자 기분이 묘해졌다.

잠시 후, 수속절차를 모두 밟은 유병만은 바로 검사실로 직행했고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로부터 검사를 받았다.

"회장님,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 좋은 결과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목이 마른데 차를 한잔 주겠나."

"여기 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유병만은 지훈이 끓여준 차를 한 잔 마셨다.

노각나무와 민들레 그리고 엉컹퀴와 개똥 쑥을 비롯해서 각종 허브를 넣고 끓인 차는 살짝 씁쓸하기는 했지만 먹을 만해서 아예 물 대신 마시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지나갔고 마침내 금테 안경을 쓴 대머리의 50대 중년인이 밝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김 박사님, 검사결과가 나왔습니까?"

"노 사장님, 지난 3주 동안 유 회장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건 왜 묻는 것입니까? 회장님의 검사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이건 기적입니다!"

"김 박사, 궁금하니까 어서 속 시원하게 말해주시오."

"놀랍게도 3주 전에 비해서 암 세포가 많이 죽었습니다."

"김 박사, 암세포가 많이 죽었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간 전체를 차지하고 있던 암세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김 박사, 그러면 내가 살 수 있겠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지만 지금 상태라면 수술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수술이 가능하다니, 수술을 하면 살 수 있겠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회장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잖습니까?"

"유 회장님, 대체 지난 3주 동안 어떻게 하신 것인지 얘기를 해주십시오. 난 그게 너무 궁금합니다."

"김 박사님, 회장님은 식이요법을 진행했습니다."

"식이요법을 진행했다고요?"

"그렇습니다."

"하하하~! 식이요법으로 암세포를 줄였다니 이건 기적입니다. 아마 하늘이 유 회장님을 굽어 살피시는 것 같습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간혹 이런 경우가 있었기에 김 박사는 기적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수술을 하기 위한 입원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김 박사, 입원을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되겠소?"

"왜요, 무슨 사정이라도 있으십니까?"

"김 박사는 기적이라고 했지만 난 내 몸의 암 세포가 줄어든 것이 식이요법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소."

"그래서 식이요법을 계속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렇소. 앞으로도 암세포가 계속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식이요법을 계속 진행하고 싶소."

"회장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암세포가 다시 증식을 할 수도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사망통지서를 받았던 나요. 그러니 며칠만이라도 계속 식이요법을 받아보고 싶소."

"회장님, 시기를 놓치면 다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김 박사 말대로 하늘이 날 굽어 살피신다면 며칠 정도는 괜찮지 않겠소? 그리고 입원을 한다고 해서 당장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회장님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흘 이상은 어렵습니다. 수술은 나흘 후로 잡겠습니다."

"사정을 봐줘서 고맙소."

암세포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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