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96화 (96/219)

<-- 96 회: 3-23( 8. 이 지경이 되고도 모르겠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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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떠나간 직후 사내들의 점유권 주장이 정당한 것을 알게 된 지훈은 화가 나서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김평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사장님, 이지훈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제가 구입한 건물 내에 점유권 행사 중이라는 사실을 왜 얘기 안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때 몇 번이고 얘기했잖습니까?

"네?"

-기억 안 나세요? 건물을 직접 확인하러 갔을 때도 얘기했고 그 이후에도 몇 번 얘기했잖습니까?

"언제 그런 말을 하셨다는 것입니까?"

-허~참! 젊은 사람이 왜 그리 기억력이 없어요? 심지어는 매매계약서를 체결할 때는 나만이 아니라 이전 소유주도 그 얘기를 했었는데 생각 안 나십니까?

"김 사장님, 지금 무슨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전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난 얘기를 했는데 이제 와서 기억이 없다고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김 사장님이야말로 왜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점유권과 관련해서 들은 것이 없으니 책임을 지십시오."

-책임을 지라니, 나보고 무슨 책임을 지라는 것이오?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책임을 지시고 매매가격을 다시 조정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봐요, 이지훈씨.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 아닙니다.

"뭐라고요?"

-난 분명히 말했고 이전 소유주도 그 얘기를 했는데 이제 와서 들은 바가 없다고 하면 난 할 말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끊겠소.

뚝-!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하더니 김평오는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일곱 명의 조폭들은 뭐가 좋은지 낄낄거리며 웃더니 지훈에게 다가와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당신들 요구 조건이 뭐요?"

"이제야 말이 통하네."

"어어, 어린 친구. 우리 사장님은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 하거나 또는 적정한 가격을 지급한다면 이 창고를 넘길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제돈 주고 사는 게 어때?"

"그래서 얼마를 달라는 것이오?"

"그건 높은 사람들끼리 얘기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당신들 사장을 만나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이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일성건설이 있는데 거기가 우리 사무실이니까, 할 얘기 있으면 그쪽으로 찾아오라고."

"일성건설이라면 등기소가 있는 그 거리에 자리한 회사를 말하는 것이오?"

"잘 알고 있네."

일성 건설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로 한 공터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로, 임대 계약 때문에 지훈도 가본 적이 있는 회사였다.

'이놈들,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를 쳤구나!'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자와 토지 임대 계약까지 체결한 마당에 그들이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몰랐다고 하면 누구라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걸 역으로 말하면 김평오와 전 소유주 그리고 일성건설이 짜고 자신에게 사기를 친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너무 서둘렀어.'

생전 처음 부동산 매매계약을 한 통에 경험이 없는 점도 있었지만 일을 너무 서두른 통에 이런 상황에 빠졌다고 여긴 지훈은 자신의 성급함을 자책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를 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기에 우선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자들은 대체 얼마를 요구할까?'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런 함정을 팠다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요구할 것 같았다.

아울러 공터 사용 계약을 한 달만 체결한 것도 이런 상황을 노리고 그리 한 것 같았다.

'나쁜 놈들, 비열한 수법으로 날 엿 먹여.'

기분 같아서는 합의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으면 이자들이 추후에 어떤 짓을 할지 몰랐고 또 영업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합의는 반드시 해야 했다.

'만약 이제 와서 건물을 매각한다고 해도 큰 손해를 보겠지.'

건물 내에 점유권이 행사되고 있음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선뜻 들어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점유권을 행사하는 자들이 조폭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것이 상황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해서, 건물을 매각한다고 해도 큰 손해를 볼 것 같았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자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고, 그래야만 주차장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을 증축할 때 들었던 비용을 지불하면 될까?'

가게와 마찬가지로 2층으로 지어진 주방은 1층과 2층을 합쳐서 90평이었다.

그중 2층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자신의 방을 비롯해서 숙소가 필요한 직원들에게 제공할 생각이었다.

반면 1층으로 지어진 창고는 30평에 불과한데다가 몇 년 전에 지어졌기에 훨씬 쌀 수밖에 없었는데 지훈은 최악의 경우 그 정도까지는 지불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신들 사장은 돌아왔소?"

"이맘때면 항상 사무실에 계시니까 갈 거면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게 좋을 거야."

"성훈형, 갖다 올게요."

"가서 뭐하시려고요?"

"사용료를 지불하든 아니면 건물을 구입해서라도 영업에 지장 없게 해야죠."

"분위기가 그런데 같이 갈까요?"

상세한 내막을 모르는 성훈의 짐작에도 이 상황이 이상했다.

게다가 눈앞의 사내들로 봐서는 일성 건설이 어떠한 곳인지 대충 감이 왔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함께 가겠다고 했다.

"형은 여기서 뒷정리를 마저 하세요."

"혼자가도 괜찮겠습니까?"

"점유권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건데 무슨 일이 생길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불안한데 같이 가시죠."

"형, 총을 든 강도도 물리친 저예요."

불안해하는 성훈을 안심시킨 지훈은 이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해결할 생각에 황급히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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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지경이 되고도 모르겠냐?

한눈에 보기에도 인쇄한 것으로 보이는 모조품 동양화가 벽 곳곳에 걸려있는 이곳은 일성건설의 대표이사 사무실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정범수와 그의 심복 두 명을 비롯해서 김평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 대표님, 그자가 곧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큭큭, 생각지도 못해도 점유권을 알게 되었으니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달려오겠지."

"대표님, 이번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처음에는 공터는 물론이고 창고를 팔거나 임대할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십시오."

"김 사장, 걱정 마쇼."

정범수의 수법은 늘 똑같았다.

건물을 구매한 자가 점유권 행사를 알고 놀라서 달려오면 처음에는 임대나 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면 상대는 당황해서 사정을 하면서 매달리게 되고 그때쯤 되면 못 이기는 척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금액에 상대가 어이없어하며 합의를 포기하면 그 이후에는 정범수의 부하들이 점유권을 행사한다는 핑계로 몰려가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결국 건물 소유자는 가게 앞마당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조폭들 때문에 영업을 할 수 없게 되고 그리되면 김평오가 나서서 건물을 구매하고 싶다는 자가 있다면서 꼬드기면 상황 끝이었다.

"형님, 그쪽으로 간 동생들은 어떻게 할까요?"

"예전처럼 고기도 구어 먹으면서 술판을 벌이라고 해."

"합숙소에 있는 애들도 그쪽으로 보낼까요?"

"그렇게 해. 그리고 몇 명은 아예 거기서 먹고 자라고 해. 아! 심심하면 업소 아가씨들 몇 명 불러서 놀게 해."

"알겠습니다."

건물소유주가 빨리 포기할수록 작업은 빨리 마무리된다.

때문에 정범수는 아예 부하들을 창고에 상주시키면서 계속해서 지훈을 압박할 생각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정범수의 휴대폰에서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여보세요."

-범수냐? 나다.

"예,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잘 지내고 있지?

"형님들이 잘 챙겨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회사는 잘 돌아가고?

"아직은 조그마해서 별 문제없습니다."

-회장님이 조만간 대형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니까 너희 회사에도 괜찮은 현장이 몇 개 떨어질 거야.

"감사합니다. 저는 형님만 믿겠습니다."

-관리하고 있는 업소들은 어때?

"형님도 잘 아시겠지만 요즘은 워낙 불경기이다 보니 현상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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