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97화 (97/219)

<-- 97 회: 3-24 -->

-이럴 때일수록 고객관리 잘해, 예전처럼 괜히 무게 잡지 말고.

"그러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정범수는 성북구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중소 규모의 조직인 북악파의 보스였다.

아울러 북악파는 국내 최대 조직인 신성OB파의 하부 조직이었는데, 지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신성OB파의 중간 간부였다.

쉽게 말해서 정범수는 북악파 내에서는 보스이지만 신성OB파내에서는 최 말단 중간 보스에 불과했다.

-회장님 소식은 들었겠지?

"어떤 소식, 말입니까?"

-회장님이 5일 전에 간암 수술 받으셨다는 것 몰라?

"네? 몰랐습니다. 회장님은 어떠십니까?"

-수술 결과가 좋아서 며칠 후에는 퇴원하신다.

"오! 다행입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입원한 병원이 어디입니까? 저도 병문안을 가야 할 것 같은데 알려주십시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전화했다. 다 같이 병문안 갈 생각인데 너도 와야지.

"당연히 가야지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1시간 후에 TJ 종합병원으로 와라.

"TJ 종합병원이요? 바로 가겠습니다."

신성OB파의 보스가 입원중이라는 말에 정범수는 전화를 끊기 무섭게 부랴부랴 출발 준비를 했다.

그사이 창고로 나가있던 부하들로부터 지훈이 이곳으로 출발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새 건물주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데요?"

"하마야, 그자는 네가 맡아라."

"제가요?"

"그동안 몇 번 봤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튕기다가 그자가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면 턱없는 금액을 부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잘 할 수 있겠지?"

"대표님, 그런 애송이쯤은 가볍게 찜 쪄 먹을 수 있습니다."

"좋아. 나는 날치와 함께 회장님 병문안을 가야하니까 너에게 맡기마."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

"오냐, 믿고 가마."

작업도 중요하지만 회장님 병문안이 훨씬 더 중요했다.

막말로 자신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회장님이나 다른 형님들의 눈에 잘못 들었다가는 한 순간에 북악파의 보스 자리를 내놓고 초야에 은둔해야 했다.

그러니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병문안부터 가야 했다.

한편 정범수를 대신해서 지훈을 상대하기로 한 하마는 의욕이 넘치는 눈빛으로 자신의 오른팔이자 가장 믿는 심복에게 전화를 했다.

"문어야, 지금 애들 몇 명 데리고 있냐?"

-저까지 해서 여섯 명입니다.

"오늘 작업 좀 해야겠다."

-도망친 계집이 있습니까?

"그게 아니고 다른 일이다. 이번 일만 잘하면 범수 형님이 널 크게 쓰실 것이다."

문어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러기에 작업이 있다는 말에 도망친 업소 여자를 잡으러 가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형님, 산으로 데려가서 파묻는 척 하면서 적당히 겁만 주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자가 우리가 요구한 금액대로 매각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끝난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데 수고비는 두둑하게 나오겠죠?

"원래 생각보다 더 많은 금액을 뜯어내면 범수 형님도 모른 척 하지는 않을 거다."

-형님, 지금 바로 움직이면 됩니까?

"그자가 곧 오기로 했으니 빨리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형님.

하마는 북악파의 넘버 3였고, 넘버 2는 정범수와 함께 병문안을 간 날치였다.

그래서 회사 내의 직책도 하마는 상무였고 날치는 부사장이었다.

그런데 하마는 자신이 날치보다 여러모로 뛰어나다고 여겼고, 그런 만큼 넘버2의 자리는 당연히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이번 일을 맡게 되자 이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자 했다.

즉, 원래 계획보다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면서 더 많은 금액을 뜯어내서 자신이 진정한 넘버 2임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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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대표이사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문어는 얼마 후에 정범수를 찾아온 지훈을 만났다.

'자식, 척 보기에도 순해 빠진 놈으로 보이네.'

온순한 인상의 지훈과 마주한 하마는 만만해 보이는 것이 어렵지 않게 오늘의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여기고 씩 웃었다.

"일성건설의 대표이사님 되십니까?"

"난 이 회사의 상무이고, 대표님은 출타 중이라 자리에 안 계시는데 누구요?"

"일성건설이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건물의 주인으로 이지훈입니다."

"뭐 때문에 온 것이오?"

"점유권 문제를 해결하고 온 김에 공터의 사용계약을 연장할 생각입니다."

"혹시 창고 때문에 왔소?"

"맞습니다. 그 창고를 제가 구입하려고 하는데 매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알기로 우리 대표님은 그 창고를 매각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렇다면 임대를 하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그 창고는 우리 회사에서 계속 사용할 생각이오."

"그러지 말고 매각을 하시죠? 제가 가격은 충분하게 지불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하기로 결정이 난 이상 어쩔 수 없소."

"대표님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대가 매각도 안하고 임대할 생각도 없다고 하자 답답해진 것은 지훈이었다.

추측이지만 일성건설의 대표이사는 더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영업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에 대표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사이 문어로부터 회사 앞에 당도했다는 문자를 받은 하마는 바로 문어에게 전화했다.

"대표님, 우리 창고와 관련해서 건물주가 찾아와서 만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형님, 왜 그러세요?

"아! 그러면 제가 건물주와 함께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형님, 지금 쇼하고 있는 겁니까?

"알겠습니다. 서두르면 얼마 안 걸릴 것 같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형님, 기다리라는 말이죠?

마치 정범수와 통화한 것처럼 지훈을 속인 하마는 대표가 공사 현장에 있는데 같이 갈 것인지 물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픈 지훈은 상대가 함정을 판 줄도 모르고 따라 나갔다.

"현장이 어디입니까? 주소를 알려주면 뒤따라가겠습니다."

"길이 험한데 상관없겠소?"

"중고차라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천천히 갈 테니까 날 따라 오시오. 산자락에 있어서 네비를 찍어둬 안 나올 것이오."

"그렇게 하죠."

지훈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위치를 확인한 하마는 잠시 후 다른 사내가 운전하는 지프차를 타고 나타나서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했다.

하마의 속셈을 모르는 지훈은 적당한 속도로 앞서가는 하마를 뒤쫓았고, 그 뒤에는 문어일행이 타고 있는 봉고차가 뒤따랐다.

-하마 형님,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우리가 종종 갔던 그곳으로 갈 테니까 넌 먼저 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나와 놈이 지나치면 뒤따라오면서 길을 막아."

-형님,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고 적당한 곳에서 작업하죠.

"난 네 차가 보이면 3~40미터 가다가 멈출 테니까 네가 분위기 봐서 결정해."

-알겠습니다, 형님.

세부적인 계획을 설정한 문어가 앞서가는 동안 지훈은 한적한 지방 국도에 접어들었고, 얼마 후에는 골짜기를 따라서 산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멀었나?'

차 두 대가 겨우 지나칠 수 있는 산길을 10분 정도 따라 들어간 지훈은 앞장섰던 하마의 차가 멈추자 따라서 차를 세웠다.

그사이 조금 전부터 따라붙은 봉고차가 멈췄고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여섯 명의 사내가 다가오는 것이 룸 미러에 잡혔다.

아울러 앞쪽에서는 일성건설의 상무와 또 다른 사내가 야구배트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이것들이 미쳤나.'

상대가 조폭들이란 것은 알았지만 대뜸 실력을 행사할지 몰랐던 지훈은 순간 당황해서 망설였다.

'길이 막혀서 차로는 움직일 수가 없어.'

앞뒤가 꽉 막혀서 차로는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은 지훈은 숲이 우거진 산속으로 도망칠까 하다가 그래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블랙박스가 촬영되고 있으니까 정당방위를 입증할 수는 있을 거야. 아! 저자들의 계획까지 담아내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번 일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지훈은 핸드폰의 음성녹음 기능을 실행한 후에 주머니에 담고는 차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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