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회: 3-26(9.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나?) -->
'어! 성훈형이네.'
"여보세요."
-사장님, 어디십니까?
"성훈형, 곧 가게로 들어갈게요."
-일성건설을 찾아갔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거기 대표가 자리를 비워서 못 만났어요. 그나저나 그자들은 지금도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몇 명이 더 몰려와서 이제는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요."
성훈이 걱정할까봐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은 지훈은 곧장 가게로 향했다.
비슷한 시각, 유병만은 여전히 조직의 중간 보스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 중에는 정범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만 돌아가라는 유병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하는 것을 지켜보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노 사장, 아직 멀었어?"
"지금 수속중이니까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이 쑤셔서 못 견딜 지경이니까 서두르라고 해. 참! 이 셰프는 가계를 오픈했을까?"
"오픈일이 모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픈 일이 모레였어? 그러면 오늘은 이 셰프의 요리를 먹을 수가 없겠군."
"드시고 싶으십니까?"
"매일 같이 먹다가 거의 일주일째 못 먹었더니 이제는 눈앞에서 아른거리기까지 하는 것 같아."
"하하하~! 사실대로 말하면 저도 그렇습니다."
"연락해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때?"
"박성훈 부사장에게 연락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이 셰프에게 어떤 보상을 지불해야할지 고민해봐. 누가 뭐래도 내 생명의 은인은 이 셰프야."
"알겠습니다."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던 유병만이 수술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지훈의 음식을 먹고 암세포가 현저히 줄어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유병만은 지훈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고,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것과 관련해서 충분한 보상을 할 생각이었다.
한편 유병만의 지시를 받은 노영필은 박성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이는 박성훈이 아니라 그의 아내 정미선이었다.
-안녕하세요, 노 사장님. 신랑이 없어서 제가 대신 받았어요.
"아! 정 셰프님이셨군요. 박성훈 부사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가게에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어요. 그런데 회장님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끝나서 이제는 관리만 잘 하면 된다고 해서 오늘 퇴원할 예정입니다."
-벌써 퇴원을 하신다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병원에서도 그렇고 저도 최소 2주는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회장님이 싫다고 하셔서 억지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 사장님이 얘기 잘 하셔서 좀 더 있게 하세요. 다른 수술도 아니고 암 수술인데 몸조리에 신경 써야죠.
"이미 말릴 만큼 말려봤지만 회장님이 제 말을 들어야 말이지요. 오히려 회장님은 하루라도 빨리 정 셰프님의 음식을 먹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내가 아니라 지훈이, 아니 우리 사장님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 거겠지요.
"하하하~! 회장님은 정 셰프님 요리도 아주 좋아하십니다."
-거짓말인지는 알고 있지만 기분은 좋네요.
"거짓말 아닙니다. 오죽하면 회장님이 오픈 일이 이틀이나 남았음에도 저녁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보라고 하겠습니까?"
-오늘 저녁이요?
"네. 회장님이 병원 밥은 지긋지긋하다면서 더 이상은 안 드시겠다지 뭡니까?"
-아! 어떡하죠?
"왜요, 어려운가요? 회장님은 그냥 있는 반찬에 공깃밥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식자재가 들어와서 요리를 하는 것은 일도 아닌데 가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요.
"아직 오픈 전이라 여러모로 어수선한 것은 회장님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가게에 십여 명의 불량배들이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고 있거든요.
액정 화면에 노영필의 이름이 나타났을 때부터 정미선은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즉, 정미선은 노영필이라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집 안마당인 냥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불량배를 내쫓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적당한 타이밍에 그 얘기를 꺼냈다.
아울러 그가 가게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자 기다렸던 것처럼 주소를 불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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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나?
노영필이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아까부터 그를 주시하던 유병만이 어찌되었는지 물어왔다.
잠시 주춤하던 노영필은 정미선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보고했다.
"뭐! 감히 이 셰프의 가게에서 난동을 피우는 놈들이 있다고? 영필아!"
"예! 회장님."
"당장 애들 보내서 그놈들 정리해, 어서!"
"최대한 빨리 조치를 하겠습니다."
"영필아, 서둘러! 만약 그놈들이 이 셰프의 털끝 하나라도 건들었다면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유병만은 얼마나 흥분했는지 평소와는 달리 노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질렀다.
잔뜩 흥분한 유병만의 모습에 병실 안에 있던 중간 보스들과 하부 조직의 보스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어떤 일인지도 잘 모르면서 앞 다퉈서 서로 가겠다고 했다.
"회장님, 어떤 놈들입니까?"
"회장님, 어디입니까?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다들 진정하고 성북구를 누가 맡고 있지?"
"형님, 접니다! 제가 북악파를 맡고 있습니다."
뒤쪽에 있었던 정범수도 유병만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 것은 똑똑히 들었다.
그러던 차에 노영필이 갑자기 성북구를 들먹이니까 자기도 모르게 번쩍 손을 치켜 올리며 대답을 했다.
"아! 그렇지, 북악파가 있었지. 범수야, 이쪽으로 와라."
"예, 형님."
"지금 당장 애들을 보내라."
"어디로 보내면 됩니까?"
"주소를 불러줄 테니 우선 애들에게 연락부터 해라."
"알겠습니다."
"그곳은 회장님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지켜라."
"알겠습니다."
"영필아,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회장님, 범수가 애들을 보내기로 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직접 가봐야 직성이 풀리겠어. 준비해. 어서!"
"알겠습니다."
퇴원에 대비해서 이미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던 유병만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으며 병실을 나섰다.
너무도 단호한 그의 눈빛에 압도당한 중간 보스들과 하부 조직의 보스들은 차마 말리지 못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한편 하마에게 연락을 했다가 통화가 안 되자 다른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정범수는 지금이야말로 유병만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앞으로 나섰다.
"회장님, 성북구는 제가 소상하게 잘 알고 있으니 제가 모시겠습니다."
"범수야, 네가 앞장서라. 주소는 알고 있겠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은인이 다치면 안 되니까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날치야, 뛰어."
"예, 형님."
"회장님,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회장님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라면 제게도 은인입니다."
"맞습니다. 감히 그런 분을 건드리다니 절대 용서치 않겠습니다."
"범수야, 북악파만으로 힘들지 모르니 우리 애들도 그쪽으로 보내마."
"아닙니다, 형님. 우리 애들이 숫자는 적어도 실력은 출중해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병만의 눈에 들고 싶어 환장하는 것은 다른 하부 조직의 보스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지원을 보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정범수는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면 호언장담을 하고는 후다닥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