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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을 떠나서 지훈이 만든 음식은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 다들 감탄을 했다.
막말로 식당의 음식이 맛만 좋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데 지훈의 가게는 플레이팅도 훌륭했고 외국인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같은 그릇을 쓰는 문제도 해결했다.
때문에 지훈은 시간이 흐르면 외국인 고객이 점차 유입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비스 파트장을 맡고 있는 김유경이 지훈을 찾는 것은 그때였다.
"사장님, 외국인 고객이 사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주한 독일 대사인데 사장님과는 파리에서 인연이 있다면서 꼭 만나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오는 외국인들은 우연히 가온누리를 알게 되어서 온 사람도 있지만 한국의 공직자를 통해서 가온누리를 알게 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공직자와 인연이 있는 외국인은 외국기업의 임원이거나 언론인 또는 대사관 직원들이 태반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지훈과 가온누리는 외교가에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파리에서 인연이 있다고?'
독일 대사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테이블을 찾은 지훈은 자신을 보고 반색을 하는 은발의 중년인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봤다.
"훔볼트 대사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 셰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니 너무 반갑소. 나는 이번 달에 한국 대사로 부임했소."
"아! 그러셨군요."
"내가 한국 대사로 발령받은 순간 이 셰프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면 내 말을 믿겠소?"
"정말 그랬다면 영광입니다."
주한 독일 대사인 훔볼트는 얼마 전까지 주 프랑스 대사로 재직했던 이로 지훈과는 몇 번의 파티에서 만나서 친분을 나눈 상태였다.
덕분에 뜻하지 않은 재회를 하게 된 지훈은 그와 담소를 나누며 파리에서의 추억을 함께 떠올렸다.
"이 셰프, 가온누리에는 홍삼차가 없다는 말에 너무 섭섭했소."
"잣이며 곶감이 들어간 수정과도 훌륭한 음료수지만 대사님 조언대로 홍삼차도 곧 서비스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마누라의 구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발 그렇게 해주시오."
"하하~! 내일부터는 그리 하겠습니다."
"이 셰프만 믿고 내일 또 오겠소."
"알겠습니다."
"참! 이 셰프, 정원이 무척 아름다운데 내일은 정원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겠소?"
"정원에서 식사를 하시겠다고요?"
"연못이며 꽃이 만발한 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지켜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 같소."
'아차! 내가 그걸 왜 잊고 있었지.'
한국인들은 실내를 많이 선호하지만 외국인들은 실외를 더 선호해서, 파리의 카페들은 실외의 테이블은 추가 요금을 받기까지 했다.
'그래, 정원에도 자리를 만들어야겠어. 아담한 정자를 몇 개 지으면 정원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괜찮을 거야.'
훔볼트와 얘기를 나누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깨달은 지훈은 당장은 어렵지만 조만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주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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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4주가 흘렀다.
그사이 가온누리에는 적잖은 변화가 생겨서 12명의 새 식구가 들어왔고 넓은 정원에는 7개의 아담한 정자가 생겼다.
또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 손님들이 대폭 늘어나서 매출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었다.
한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던 리아가 레이나와 예은과 함께 가온누리를 찾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오빠, 축하해."
"오빠, 못 와봐서 미안해요."
"오빠, 우리가 안 와서 삐진 것은 아니죠?"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오빠도 알고 있겠지만 리아는 북미와 남미 공연을 다녀왔고 나는 신곡을 준비했어요."
"예은이는?"
"저는 그냥 지냈어요."
"오빠, 네 노래 좀 들어주실래요?"
"내가 아는 게 있어야지."
"그러지 말고 들어줘요."
"알았어.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
두어 달 만에 지훈을 다시 만난 레이나는 대뜸 MP3를 건넸고 그걸 받은 지훈은 이어폰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했다.
'이건 들어본 노래 같은데.'
노래를 듣는 틈틈이 다른 시간대의 기억을 더듬던 지훈은 레이나의 신곡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리아의 노래와는 달리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그리 큰 히트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안색이 절로 어두워졌다.
"아! 이번에도 히트를 못하나 보네."
"오빠, 이나의 신곡이 별로 맘에 안 들어?"
"맘에 안든 다기 보다는 확 와 닿는 것이 없는 것 같아.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진 탓인지 레이나는 벌써부터 낙담하는 눈치였다.
그게 마음에 걸린 지훈은 황급히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는데 레이나는 이미 시무룩해져서 아무 반응이 없었고 대신 리아가 질문을 해왔다.
"나쁘지 않다면 이 곡으로 밀까?"
"혹시 다른 노래는 없어?"
"글쎄, 이나야 또 있니?"
"없어, 그 곡뿐이야."
"어떡하지. 오빠, 무슨 방법이 없을까?"
"요리라면 내가 어떻게 해보겠지만 노래는 내가 아는 것이 없어서 할 말이 없다."
"오빠, 어떤 점이 부족한지 느낀 대로 말해봐. 아직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이니까 고칠 수 있을 거야."
"계속 반복되는 후렴구는 아주 좋아. 하지만 앞부분이 너무 밋밋해서 살짝 지루한 감이 들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기에 지훈은 자신이 느낀 점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후렴구를 듣고서야 노래를 기억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앞부분을 고쳤으면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사실 리아의 경우는 아주 특별해서 그녀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노래는 기억이 너무 흐릿해서 장담할 수가 없었다.
"오빠, 뭐가 맛있어?"
"허브 비빔밥 어때? 몇 가지 허브가 들어가서 원기회복에도 좋고 맛도 아주 좋아."
"그럼 그것으로 줘."
"오빠, 갈비탕은 그냥 주는 거야?"
"응. 허브 비빔밥에는 갈비탕이 포함되어 있어."
"그러면 여기 있는 반찬들은 뭐야?"
"그건 취향대로 선택을 하는 거야."
"오~! 신기한데, 이런 식으로 하니까 꼭 패밀리 레스토랑 온 것 같다."
"맞아. 일부러 그렇게 했어."
크게 환영하는 외국인과 달리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반찬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낯설다는 반응을 보이며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한번 음식을 맛보면 그때는 한결 같아서 다들 만족스러워 했다.
"오빠, 가게가 가장 한가할 때가 언제야?"
"오후 3시쯤이 가장 한가한데 왜?"
"내일 방송사와 인터뷰가 있는데 여기서 하고 싶어서, 그래도 될까?"
"그래도 되긴 되는데 여기서 해도 상관없겠어?"
"오빠, 리아가 여기 홍보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얼른 그러라고 해."
"오빠, 리아가 여기 온 게 방송을 타고 알려지면 수많은 팬들이 찾아올 거고, 영업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리아야, 그 마음은 고마운데 홍보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그러지 마."
"그 점도 있지만 그래야 오빠가 해주는 음식을 한 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지. 솔직히 그 이유가 더 커."
"정말 여기서 해도 괜찮겠어?"
"응. 난 마음에 들어."
레이나와 예은의 말처럼 리아는 가온누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운 지훈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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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힘은 대단해서 리아의 인터뷰가 방송을 탄 후 가온누리는 더더욱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그야말로 매일 마다 손님들로 넘쳐났다.
그 덕에 며칠이 지난 지금은 어느덧 9시가 되었음에도 밀려드는 주문으로 인해서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훈과 성훈 부부를 비롯해서 모두 열 명의 요리사가 근무하는 주방 한쪽 구석에는 곰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사내가 세 명의 아줌마와 함께 설거지를 정신없이 하고 있었다.
"아줌마, 설거지가 끝난 식기는 건조기에 집어넣게 이쪽으로 주세요."
"그건 우리가 할 테니까 하 씨는 창고에서 완두콩 자루나 갖고 와."
"아! 하 씨, 간 김에 양파도 두 자루 갖고 와."
"양파는 두 자루만 가져오면 됩니까?"
"그 정도면 충분할거야."
"알았어요. 갖다 올게요."
아줌마들로부터 하 씨로 불리는 덩치 큰 사내는 한때 북악파의 넘버 3였던 하마였다.
지난 두 달간 설거지를 담당하며 주방 위생의 한 축을 굳건히 지탱했던 하마는 세제와 물기로 범벅이 된 고무장갑을 벗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해서인지 하마의 두 손은 물에 불어 퉁퉁 부어 있었고 손가락이며 마디는 주부습진 때문에 껍질이 벗겨져서 허옇게 일어난 상태였다.
"흐미, 설거지를 할 때는 목장갑을 끼고 하라고 했더니 지금껏 안 끼었나 보네?"
"목장갑을 끼면 감각이 둔해져서 설거지하기가 불편해요."
"그래도 물기가 스며들면 손에 습진이 생긴다고 했잖아? 습진 때문에 무지 가려웠을 텐데, 그걸 여태까지 참은 거야?"
"일할 때는 워낙 정신없어서 가려운 줄도 몰라요."
"쯧쯧쯧, 잔소리 말고 손에 묻은 물기와 땀부터 깨끗하게 닦아내고, 오늘 저녁에는 약을 사서 발라. 꼭!"
"예, 그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