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회: 3-32(11.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 -->
주부습진으로 뒤덮인 하마의 손을 본 다른 아줌마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가 주방을 나선 뒤에도 한마디씩 했다.
"하 씨가 생긴 것은 곰 같아도 일은 잘해."
"남자가 설거지를 잘하면 뭐해? 장가라도 가려면 반듯한 기술을 배워야지."
"그러게, 사람 구실을 하려면 뭐라도 배워야 할 것 인디......"
하마의 과거를 모르는 아줌마들은 묵묵히 설거지만 하는 하마를 보면 듬직한 마음이 들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주방 설거지는 자신들처럼 나이든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지, 아직 30대 중반에 불과한 젊은 남자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아줌마들은 그 뒤로도 하마와 관련한 얘기를 계속했고 그 얘기는 지훈도 다 들었다.
'하마를 어떻게 한다?'
하마가 처음 찾아왔을 때 지훈은 그의 사과를 받아주기는 했지만 가온누리에서 일하는 것은 거절했다.
그러나 하마를 데리고 온 일성건설의 부사장은 하마를 받아주지 않으면 공터 임대를 취소하겠다는 말로 지훈이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주부습진이 아주 심한 것 같은데 마냥 설거지를 시킬 수는 없고 어쩌지?'
당시 하마에게 설거지를 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를 배우지 않은 하마를 요리사로 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한쪽 눈이 퉁퉁 부은 자를 서빙에 내세울 수도 없어서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주방 설거지였다.
그런데 하마가 의외로 설거지를 너무 잘해서 두어 사람 몫을 거뜬히 해냈고, 그러는 사이 시간이 두 달이나 흘렀다.
하지만 마냥 설거지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궁리 끝에 당분간은 도어맨을 시키기로 했다.
도어맨이란 말 그대로 문 앞에 서서 가게에 들어오는 고객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안내하는 역할이어서 하마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성건설의 사장을 내가 직접 만나서 하마의 용서를 부탁해야겠어. 그나저나 습진에는 어떤 음식이 좋더라?'
그동안 정범수와는 몇 번 통화를 한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정범수는 자신의 거듭된 초청도 여러 사정을 들며 번번이 거절한 상태였다.
사실 정범수가 가온누리에 오지 않은 이유는 지훈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즉, 자신의 호의가 철저히 계산된 것임을 지훈이 알아차릴까봐 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영필을 통해 공터를 무상으로 제공해서 가온누리의 주차장으로 사용케 하고 있으며 하마를 파견해서 지훈을 돕고 있음을 알린 상태였다.
덕분에 정범수는 유병만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일감까지 받아서 일성건설을 쭉쭉 키우고 있었다.
아무튼 그 사정을 모르는 지훈은 일성건설의 대표를 직접 만나서 하마의 용서를 빌 생각이었다.
'건달 버릇을 못 고쳤다고 자신의 부하를 이런 식으로 교육 시키다니, 일성건설 대표도 대단해.'
신성 OB파와 북악파의 상하관계를 모르는 지훈은 일성건설 부사장인 날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상대로 건달 행세를 했던 하마가 그 벌을 받기 위해서 가온누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마가 지난 두 달간 충분히 반성을 한만큼 자신이 나서서 이쯤에서 용서를 빌 생각이었다.
같은 시각, 심한 주부 습진 때문에 설거지 담당에서 도어맨으로 승진한 하마는 지훈의 지시대로 근무지를 문 앞으로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너희들은 먼저 들어가서 회장님의 예약 상황부터 체크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엥!"
"어! 너는 하마가 아니냐?"
입구에서 도어맨 역할을 하던 하마는 제법 친한 친구를 만나서 아는 척을 했다.
하마와 마찬가지로 조직에 몸담고 있는 그는 신성 OB파 소속으로 노영필 밑에 있는 자였는데, 그로 인해서 노영필과도 인사를 했다.
"사장님, 이 친구가 일성의 정범수 대표가 말한 하마입니다."
"네가 하마였구나! 얘기는 많이 들었다. 고생 많다고 들었는데 회장님을 생각해서 이 사장님을 힘껏 도와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졸지에 신성 OB파의 2인자인 노영필과 인사를 하게 된 하마는 감개무량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곧이어 가게에 들어선 유병만과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
"회장님, 여기 있는 이 친구는 일성건설의 정 대표가 데리고 있는 하마입니다."
"하마입니다.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 대표의 부탁으로 이곳에서 이 사장과 함께 일하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이 사장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사장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면 주방 일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조금 전까지 주방에서 일하다가 나왔습니다."
"오! 그래?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제대로 배워서 훌륭한 셰프가 되게. 참! 아무 때라도 좋으니까 실력에 자신이 생기면 직접 요리한 음식을 가자고 오게. 내가 평가를 해주겠네."
"예? 아... 알겠습니다."
"기대하지."
"회장님, 들어가시지요."
하마와 만난 유병만은 그가 지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말에 호기심 삼아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건 요리도 배우고 있냐는 의미였는데 그 뜻을 간파하지 못한 하마는 곧이곧대로 주방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니 더더욱 오해한 유병만은 훌륭한 셰프가 되라면서 격려의 의미로 직접 평가를 해주겠다는 말을 했고, 하마는 이제 죽으나 사나 셰프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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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변변한 광고도 하지 않은 가온누리의 명성은 널리 퍼져갔고, 온갖 방송국에서 몰려와서 앞 다퉈 취재를 해갔다.
덕분에 더더욱 유명해진 가온누리는 밀려오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어찌 알았는지 이제는 중국인 관광객도 찾아오고 있었다.
한편 암 수술을 받은 유병만은 그 후로도 한 달에 두 번씩 TJ 종합병원을 방문해서 수술 후 경과 체크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 박사,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지?"
"회장님, 암은 재발이 잦고 재발을 하게 되면 더욱 치료가 어려운 병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몸 관리를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그거라면 가온누리의 음식을 종종 먹고, 그곳에서 끓여준 차를 매일 같이 마시고 있으니 걱정 말게."
"회장님은 정말로 그곳의 음식이 암 세포를 제거했다고 여기십니까?"
암 병동 책임자인 김형석 박사는 유병만에게 가온누리와 관련한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러기에 그는 유병만의 말뜻을 대번에 이해하고 질문을 했다.
"김 박사는 의사라서 자존심 때문에도 내 말을 믿지 않겠지만 난 그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네."
"저도 아예 안 믿는 것은 아닙니다."
"김 박사도 믿는다고?"
"실은 우리 병원의 심장 병동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고, 그 때문에 연구팀을 발족시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사례라면 음식으로 병을 고쳤다는 말인가?"
"그랬었죠. 키친마스터라는 요리 대회의 참가자가 우리 병원을 방문해서 심장병 환자들에게 요리를 해줬는데, 그 대회의 우승자가 해준 요리를 먹고 몇몇 환자의 심장병이 완치되었습니다."
"가온누리의 이 사장도 음식과 의약은 근원이 같다는 말을 하더니 역시 그런가 보군. 그런데 그런 기적을 만든 셰프가 누구인기 궁금한데 알려줄 수 있나?"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대회 우승을 한 후 요리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연구팀의 연구가 지지부진하다고 들었습니다."
김형석은 당시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얘기만 했다.
그런데 그의 얘기를 들은 유병만은 프랑스 유학을 갔다는 말에 대번에 지훈을 떠올렸고, 그의 얘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