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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김 박사가 말한 자가 내가 말한 이지훈 사장과 동일인 같네."
"동일인이라면 그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입니까?"
"몇 개월 전에 들어와서 가온누리라는 한식당을 차렸네."
"그렇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군요."
"나 역시 마찬가지네. 그 친구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전에도 그런 기적을 연출했다니 확실히 뭔가가 있는 것 같네."
"회장님, 잠시 심장병동에 연락을 해서 확인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유병만의 암 세포가 현저하게 감소한 일도 기적이었는데 만약 심장병까지 완치시켰다면 이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김 박사는 무심코 넘길 수가 없어서 심장병동에 전화를 해서 그때의 요리사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약 개발이 지지부진한 제약회사의 연구팀이 다시금 임상실험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김 박사, 어떻게 되었는가?"
"회장님 말씀대로 이지훈 셰프라고 합니다."
"역시! 내 짐작대로군."
"회장님, 그 친구를 잘 알고 계십니까?"
"잘 알고 있는데 뭐 때문에 그런가?"
"우리나라 의학 발전을 위해서 그 친구가 필요합니다."
"어렵게 얘기하지 말고 핵심만 말하게."
"제약 회사의 연구팀도 그렇지만 저도 그 친구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김형석은 심장병동의 유영용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기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잔뜩 흥분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부디 실험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해주십시오. 만약 그렇게 해서 새로운 약이 개발되면 수많은 환자들이 회장님처럼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회장님부터서 효과를 봤잖습니까?"
"그렇군, 얘기를 해보겠네. 그런데 그 친구의 도움으로 신약이 개발되면 그 친구에게도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가?"
"당연히 그래야지요."
"만약 김 박사가 그 부분을 보장해준다면 내가 나서서 실험을 주선해보겠네."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알겠네. 바로 연락을 하지. 아니, 내가 직접 가서 이 사장을 만나겠네."
유병만은 지훈의 음식을 먹은 덕에 병이 나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수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도 있고 나아가 지훈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여겨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사장, 실은 부탁이 있어서 왔네."
"말씀 하시지요."
유병만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지훈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그의 얘기를 들은 지훈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왜, 어려운가?"
"실험에 참가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병원 측에서 기대하는 효과는 발휘되지 않을 것입니다."
유병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었고, 그걸 잘 알고 있는 지훈은 그에게만큼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지훈의 얘기를 들은 유병만은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이 사장은 몸 안에 기를 갖고 있고 정성들여 요리를 하다보면 그 기가 절로 요리에 스며든다는 건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 기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애당초 대량생산을 하는 약을 만들 때는 그 기를 이용할 수 없고, 설령 기를 용케 집어넣는다고 해도 곧 소멸되어 버리니까 환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겠군."
"그런 셈이지요."
"결국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나처럼 이 사장이 직접 만든 요리를 그때그때 먹어야겠군."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입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그나저나 병원에서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데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군."
"저 때문에 그분들이 귀한 시간을 더 이상 허비하지 않게 하려면 실험에 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험을 통해 사실상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겠다는 건가?"
"그럴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얘기는 회장님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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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치솟는 가온누리의 명성은 박현식과 장철우도 들었다.
둘은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가온누리가 엄청난 호황을 누린다는 말에 배가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 각계 명사와 연예인을 비롯해서 외국 대사들까지 대기를 하며 즐겨 찾는다는 말에 심통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박 사장님, 이지훈이 차린 식당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던데 알고 계십니까?"
"나도 가온누리의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는데 어제 밤 TV를 보고 나서야 그놈이 그 가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소."
"사장님도 그 프로를 보셨군요? 저도 그 프로를 보고서야 놈이 그 식당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현식이 설립한 파밀시에테는 서울과 수도권만이 아니라 지방에까지 진출해서 전국적으로 70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나아가 이런 외형적인 성장을 발판으로 올 겨울에는 기업을 공개해서 정식으로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할 생각이었고 내부적으로는 호텔에 입점하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종 광고와 협찬을 비롯해서 마케팅에 수많은 돈을 투자한 자신들과는 달리, 돈 한 푼 쓰지 않고 오직 입소문만을 통해서 자신들 이상으로 명성을 쌓고 있는 가온누리를 이대로 좌시할 수 없었다.
"장 마스터, 어떻게 하면 놈을 물 먹일 수 있겠소?"
"사장님, 식당을 거꾸러트리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자는 거요?"
"첫째가 맛이고 둘째가 위생입니다."
"놈이 버티고 있는데 맛을 건들기는 어렵지 않겠소?"
"그러니 위생을 걸고 넘어가야지요."
"생각하는 것을 얘기해보시오."
"간단합니다. 벌레를 갖고 가서 요리 안에 집어넣은 후에, 음식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소리치면 간단합니다."
"고작 그것만 갖고 놈에게 결정타를 먹일 수 있겠소?"
"언론에서 때를 맞춰서 장단을 맞춰주면 일이 커집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구청의 위생과가 단속을 나와서 한방 터트려주면 아예 끝장을 낼 수 있습니다."
"언론이야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기자들을 동원하면 된다지만 구청 위생과는 무슨 수로 손을 쓴다는 것이오?"
박현식은 파밀시에테를 홍보하기 위해서 몇몇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들에게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에게 활동비라는 명목으로 틈틈이 촌지를 넘기고, 매달 공짜 쿠폰을 여러 장씩 제공하고 있어서 어렵 지 않게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청 위생과의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난색을 표명했다.
"사장님의 아버지가 있잖습니까?"
"그게 어쨌다는 거요?"
"이지훈의 가게가 성북구에 위치하고 있고, 거긴 사장님 아버지의 지역구입니다."
"놈의 가게가 성북구에 있었소?"
"아직 모르셨습니까?"
"방송을 중간부터 봐서 모르고 있었소.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의 지역구라고 해도 그만한 일에 아버지가 나선다는 것은 그렇지 않소?"
"사장님 말씀대로 의원님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지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제가 알기로 의원님은 성북구청장으로 재직했고, 그때부터 데리고 있던 보좌진들이 여러 명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라면 구청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보좌관을 내세우자는 거요?"
"그 정도면 구청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