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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 프랑스 대사와 얘기를 나누던 그 시각, 살충제에 중독되었다가 기사회생으로 살아나서 탁자 밑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바퀴벌레는 여현구의 발밑을 지나쳐서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때마침 비어있던 그 테이블에는 하마가 예약한 손님을 막 안내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객님, 이쪽입니다."
"여기 키위 불고기가 아주 맛있던데 그것으로 주세요."
"세분 다, 키위 불고기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아뇨. 저는 허브 비빔밥을 주세요."
"다른 분은 어떻게 할까요?"
"저는 허브 비빔밥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이드 메뉴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능숙한 솜씨로 후식까지 주문을 받은 하마는 카운터로 가다가 발밑에서 뭔가가 으스러지는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헉!'
놀랍게도 발밑에서 내장이 터진 채 으스러진 바퀴벌레를 발견한 하마는 남들이 볼까 무서워 그것을 재빨리 주웠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주문 받은 내용을 카운터에 전달한 후에 냅킨에 싸서 그것을 버렸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사장님에게 오늘 일을 얘기해야겠어.'
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위생이 무척 중요했다.
지난 두 달간 하마가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가 위생과 청결이었다.
때문에 하마는 이 일을 지훈에게 반드시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같은 시각, 두 그릇의 골동면을 남김없이 비운 여현구 일당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자."
"완벽하게 하려면 음식을 먹은 척 해야지."
"대홍아, 네가 저기 있는 골동면을 빈 그릇으로 넘겨."
"니미럴, 꼭 그런 일은 나만 시켜?"
"어서!"
"알았어."
"여기요! 이봐요."
일당 중의 한명이 손도 안 된 골동면을 빈 그릇으로 옮기는 사이 여현구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여현구가 소리를 치기 무섭게 바퀴벌레가 나타난 일로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하마가 가장 먼저 달려왔고, 때마침 가게에 들어선 지훈도 그 광경을 목격했다.
"고객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봐, 식당이 이리 불결해도 되는 거야?"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드렸다면 시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점이 고객님을 언짢게 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보고도 몰라.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똑똑히 보고 입 구멍이 뚫렸으면 변명이라도 해봐."
'흐미, 올 것이 왔구나!'
"맛도 없으면서 위생까지 엉망인데 그토록 비싼 가격을 받다니 네놈들은 양심도 없냐?"
"아! 씨불, 밥 먹다가 기분만 잡쳤잖아. 이것, 어쩔 거야? 당장 사장 나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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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무슨 일인지 얘기해 주시면 사장님께 보고 하겠습니다."
"보고도 몰라? 당신도 눈깔이 달려 있으면 음식에 뭐가 들어있는지 똑똑히 봐."
"도둑놈의 새끼들, 비싼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맛은 없더라도 최소한 위생은 철저해야 할 것 아냐?"
"고객님, 제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이 사람이 장난하나?"
"혀... 현구야, 없어."
"엥!"
뜻하지 않게 바퀴벌레를 압사시켰던 하마는 여현구가 음식에 뭔가가 들어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악을 지르자 불현듯 바퀴벌레가 떠올랐다.
그래서 더더욱 공손하게 얘기했는데 어디에도 바퀴벌레는 안 보였다.
반면 죽은 바퀴벌레를 골동면에 집어넣었던 여현구 일당은 아무리 뒤져도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자 무척 당혹스러워 하면서 다른 그릇에 덜어놓은 골동면까지 뒤졌다.
하지만 이미 압사를 당해서 쓰레기통으로 사라진 바퀴벌레가 나올 리 만무했다.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어디 갔지?"
"고객님, 혹시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표고버섯 색깔이 까만색이라 착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고객님,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갑작스런 소란에 테이블로 다가온 지훈은 일단 고객을 안심부터 시켰다.
그사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이쪽을 주시했던 다른 고객들 사이에서 여현구 일당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여현구 일당이 맛이 없다고 타박한 것을 들먹이면서 돈을 내기 싫어서 수작질을 부린다고 욕을 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현직 경찰도 여러 명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힌 후에 여현구 일당의 정체를 의심했다.
반대편에 있던 파워 블로거가 호들갑을 떨며 지훈을 찾은 것은 그때였다.
그는 무심코 촬영한 동영상에 여현구 일당이 벌레를 집어넣은 장면이 담겨 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그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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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구 일당의 출현은 지훈을 비롯해서 가온누리의 모든 식구들에게 위생과 청결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그래서 그날 영업이 끝난 이후에는 대대적인 청소와 함께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찾아내고 이를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지훈은 바퀴벌레를 비롯해서 벌레들이 극히 싫어하는 레몬즙과 라벤더를 우려낸 천연 퇴치 약을 만들어서 가게 구석구석에 뿌렸고 이후에도 매일 뿌리게 했다.
구청에서 단속반이 들이닥친 것은 그로부터 3일 후, 목요일 오전이었다.
위생문제부터 시작해서 원산지 표시까지 뭐라도 꼬투리를 잡기 위해 주방과 가게를 이 잡듯이 뒤진 그들은 끝끝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허둥지둥 사라졌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여현구 일당이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지훈은 오히려 그들이 나타난 준 것을 고맙게 여겼다.
하지만 사건사고는 그게 끝이 아니어서 다음날 신문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온누리의 명성을 믿고 찾아갔지만 생각보다 맛이 없고 서비스도 좋지 않았다는 기사가 세 개의 신문에 동시에 실렸다.
"사장님, 오늘자 신문을 읽어 보셨습니까?"
"아직 신문을 못 봤는데 무슨 특별한 기사가 떴습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갖고 왔는데 직접 읽어 보십시오."
"무슨 기사인데 그리 흥분하시는 것입니까?"
"말도 마십시오. 기자란 것들이 밑도 끝도 없이 우리 가온누리를 비방하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씩씩거렸던 박성훈은 분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조간신문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신문을 펼친 지훈은 한 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파밀시에테의 이미지 광고를 접하고 지면을 넘기려다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파밀시에테의 셰프들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에는 익히 알고 있는 장철우외에도 박현식의 모습이 나와 있었다.
'박현식이 여기에 왜 있지? 양복을 입은 것이 요리사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사이이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박현식의 사진을 발견한 지훈은 의아해하면서 지면을 넘겼고 곧이어 눈에 확 들어오는 두 개의 기사를 발견했다.
하나는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머리말과 함께 가온누리에 대한 악평이 담겨 있는 기사였고 다른 하나는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는 젊은 기업가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런데 사진속의 젊은 기업가는 박현식이었고 그가 파밀시에테의 대표였다.
'박현식이가 파밀시에테의 사장이었구나.'
교통사고로 미각을 상실했기에 요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박현식이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를 경영하고 있다니 의외였다.
그러다가 문득 위아래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두 개의 기사를 본 순간 어쩌면 박현식의 농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이런 수법은 기업 간의 마케팅 전쟁에서 종종 등장하는 상투적인 수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