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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보면 누가 보더라도 파밀시에테는 좋은 식당이고 가온누리는 가격만 비싸지 맛도 없고 서비스도 안 좋은 삼류 식당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양측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기사를 내보내서 특정 한쪽을 흠집 내는 일은 마케팅 전쟁을 벌이는 기업들이 종종 벌이는 치졸한 수법이었다.
"사장님, 이런 기사가 이 신문 말고 다른 두 개의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부사장님, 혹시 그 신문에도 파밀시에테의 광고가 실리면서 거기 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개제되었나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인해볼까요?"
"인터넷으로 바로 확인을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어쩌면 지훈의 이런 행동은 너무 지나친 과민반응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테라피스트로 살았던 다른 시간대에서 박현식의 치졸한 방해공작에 시달렸던 지훈은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서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사장님 말대로입니다."
"거기에도 박현식의 기사가 실렸습니까?"
"다른 두 개의 신문에도 파밀시에테의 대형 광고가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 대표의 인터뷰 기사도 나왔습니다."
"그 신문들도 우리 가온누리는 안 좋게 평가하면서 박현식과 파밀시에테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기사로 가득 찼죠?"
"맞습니다."
"역시 짐작대로군요."
"사장님,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파밀시에테의 박현식 대표와 저하고는 질긴 악연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세 개의 신문에 대동소이한 두 개의 기사가 동시에 실렸다는 것은 이번 일이 박현식의 작품이 틀림없음을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였다.
그 때문에 지훈은 시간이 비틀렸음에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안달하는 박현식의 이유 없는 집착과 증오에 진절머리가 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사이 박성훈은 뭔가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해왔다.
"혹시 예전에 술자리에서 얘기했던 같은 조리과 동기가 이 사람입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군요. 그자가 사장님이 잘 나간다는 것을 알고 배가 아파서 이런 짓을 했나 봅니다."
"저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나를 물고 늘어지면서 치졸한 짓을 반복하는 그 친구가 이제는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원래 찌질한 것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치졸한 짓을 계속 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는 있는데 그자가 또 다른 해코지는 안할지 걱정스럽습니다."
"제깟 놈이 해봐야 뭔 짓을 하겠습니까? 그냥 액땜 했다고 넘겨 버리십시오."
자신이 알고 있는 박현식이라면, 아니 이전 시간대의 박현식은 겨우 이 정도의 농간에서 만족하고 멈추는 자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괜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지훈은 무의식중에 신문을 넘겼다.
경제관련 기사가 담겨 있는 해당 지면에는 신약 개발에 실패한 TJ제약과 관련한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마음이 심란한 지훈은 그 기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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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굽어보겠다는 것처럼 제 혼자만 우뚝 솟은 거대한 고층빌딩은 TJ 그룹의 사옥이었다.
건물 외벽을 온통 뒤덮고 있는 까만색 유리창 때문에 더욱 위압적으로 보이는 이곳에는 방송사를 제외한 TJ 그룹에 속한 모든 계열사의 본사와 그룹 회장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그룹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 전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그리 호언장담을 하더니 이제 와서 이 꼴을 만들면 어쩌겠다는 거야?"
"면목 없습니다."
"면목이 없으면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 아냐?"
"일단은 지금도 계속해서 연구 중이며 신약 개발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겠습니다."
"그 말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 부분은 저로서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장담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
"신약 개발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말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말에 이재철 전무의 목을 걸 수 있겠는가?"
"회... 회장님."
정중앙의 상석에 앉아서 이재철을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는 반백의 신사는 TJ그룹의 총수, 이현호 회장이었다.
세월의 흔적처럼 눈 밑에 깊은 주름살이 새겨진 그는 예순 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빛나는 눈빛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그의 눈빛에 어린 빛은 분노와 실망이었다.
참고로 이현호 회장이 이토록 이재철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오늘자 신문에 실린 기사 때문이었다.
"선뜻 목을 걸겠다는 말을 못하는 것이 자신이 없나 보지?"
"죄송합니다."
"지금 죄송하다는 말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 같아?"
"최선을 다해서 만회를 해보겠습니다."
"만회를 하겠다고, 어떻게? 이 전무는 지금 우리 그룹의 주가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는 있나?"
"면목 없습니다."
"면목 없다니, 또 그따위 말이나 내뱉을 텐가? 지금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런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야. 대안!"
두 살 위 친형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후, 이현호에 의해서 차기 총수로 내정된 이재철은 약 3년 전부터 막강한 실권을 쥐고 TJ그룹의 대소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 3년의 시간동안 이재철은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이 훨씬 많았다.
아니, 이렇다 할 성과는 하나도 없이 손대는 사업마다 말아먹었다.
먼저 엔터테이먼트 기업을 표방하며 기존의 게임사와 영화 제작사를 인수해서 설립한 TJ 엔터테이먼트는 잇따른 영화의 실패로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또 그룹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진출 했던 외식사업은 2년째 현상유지만 한 채 오히려 신흥 중소기업에 밀리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신약의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잠시 반짝했던 주가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무섭게 하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일은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폭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 전무, 왜 대답이 없어?"
"회장님, 지금은 이재철 전무를 타박해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으니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대안?"
"그렇습니다. 여기서 이 전무를 닦달해봐야 실패한 신약이 개발될 턱이 없잖습니까? 그러니 다른 계열사의 성과를 포장해서 맞불을 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상무, 다른 계열사라면 어디를 말하는가?"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국내에는 아웃도어 열풍이 불면서 아웃도어 의류와 용품의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또 중국의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의류판매도 몇 배가 늘었습니다."
"그래서 TJ패션과 TJ레저의 성과를 포장하자는 건가?"
"그래야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국내 점포의 확대와 함께 아웃도어 산업의 중국 진출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웃도어 산업을 중국에 진출시키겠다고?"
"그렇습니다. TJ패션은 지난 4년간 중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충분한 지명도를 얻은 만큼 이를 발판으로 아웃도어 의류와 용품도 중국에 진출시킬 생각입니다. 동시에 중국 내의 점포도 300개 추가할 생각인데 이 사실을 알리면 제약회사의 악재를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주가의 하락세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볼 것입니다. 그리고 주가의 하락을 막고 반등을 시키고자 한다면 우리 그룹의 비젼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자는 건가?"
"전 우리 그룹이 화장품과 세제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품과 세제에 진출하자고?"
"먼저 세제는 식품회사를 통해서 충분한 유통 경험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마트를 통한 유통망까지 갖고 있는 만큼 어렵지 않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상무가 제법 고민을 한 것 같은데 그건 추진을 하도록 하지. 그런데 화장품은 어려울 것 같은데 성공할 수 있을까?"
"화장품은 브랜드 이미지가 전무한 만큼 고급 시장은 파고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10대와 20대를 주 수요층으로 하는 전략을 세우면 충분히 파고 들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를 이용하면 오히려 국내 시장보다 해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