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12화 (1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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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시는 거죠?

주방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을 무렵 거래처를 향해 욕설을 퍼붓던 박성훈이 지훈에게 다가왔다.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표정이 잔뜩 어두워진 셰프들을 바라보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억울하지만 오늘 하루는 영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거래처를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약자는 어떡하고요?"

"지금부터라도 전화를 걸어서 영업을 할 수 없는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면 그분들도 이해를 해줄 것입니다."

"이해를 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분들이 갖게 될 실망감은 어찌하고요? 그건 고객과의 신뢰를 깨버리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잖습니까?"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점심손님을 대접할 수만 있다면 저녁 손님은 새 거래처를 통해서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 점심 손님이 문제잖습니까?"

"우리가 발 벗고 나선다면 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우리를 믿고 예약해주신 고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수는 없습니다."

"식자재를 어떻게 구입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대형 마트와 백화점 매장을 돌면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식자재를 매입하면 막상 우리에게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은 지켜야지요."

마트나 백화점은 충분한 마진을 붙여서 판매를 한다.

그러니 그런 곳에서 식자재를 구입하면 구입단가가 월등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지훈은 그렇게 해서라도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부사장님은 서비스 파트의 직원 두 명을 데리고 여러 매장을 돌아봐 주십시오."

"꼭 그래야겠습니까?"

"부 사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움직여 주십시오."

"사장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급한 대로 마트와 백화점에서 식자재를 구입하기로 결정을 내린 지훈은 여전히 동요하고 있는 셰프들에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식자재 문제로 평소보다 준비가 늦어진 만큼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마스터, 새 거래처는 어떻게 하실 거죠?"

"그 문제는 제가 알아볼게요. 여기저기 연락하면 분명 믿을만한 새 거래처를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새로운 거래처를 구하는 것을 물어오는 정미선을 달랜 지훈은 동석을 비롯한 동문들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알리고 거래처의 소개를 부탁했다.

같은 시각,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 청소를 하고 있던 하마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온 박성훈을 통해서 가온누리에 닥친 위기를 알게 되었다.

"부사장님, 거래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식자재 공급을 중단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빨리 새 거래처를 찾아야지."

"새 거래처를 찾는 동안 식자재는 어떻게 해결하고요?"

"급한 대로 내가 몇 사람과 함께 마트와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구입을 하기로 했어."

"부사장님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구입을 하시겠다고요?"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어."

"그 많은 식자재를 제 시간에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해봐야지."

"이런!"

상황의 급박함을 깨달은 하마는 급히 정범수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한 후에 노영필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노영필 사장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노 사장님, 저 하마입니다. 가온누리에서 이지훈 사장님을 모시고 있는데 기억하시겠습니까?"

-오! 하마구나. 그래, 잘 있지?

"저는 잘 있습니다만 가온누리에 문제가 생겨서 노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문제라니, 어떤 일?

유병만의 목숨을 구해준 일로 신성 OB파는 지훈에게 큰 빚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신세를 갚고자 했지만 지훈의 거듭된 사양으로 지금까지는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일성건설 소유의 창고를 그냥 넘겨받은 것만으로도 지훈은 적잖은 도움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일은 정범수만 알고 있는 비밀로 지훈은 물론이고 노영필과 유병만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직 은혜를 갚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노영필은 가온누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무슨 사정인지 물었다.

-그러니까 식자재를 속히 구입해야 한다는 거야?

"맞습니다."

-하마야,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말해봐라.

"1등급 이상의 한우와 1등급 이상의 돼지고기 그리고 각종 야채와 해산물이 필요합니다."

-야채와 해산물은 어떤 것이 필요하냐?

"자세한 내용은 제가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양과 시간입니다. 곧 점심시간이 되는 만큼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그거라면 걱정 마라. 전 조직에 연락을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구입하도록 하겠다.

"노 사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노 사장님 말고는 도움을 청할 데가 없습니다."

-이쪽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넌 우리가 구입해야 할 식자재의 목록을 빨리 문자로 보내라.

"알겠습니다."

노영필과 통화를 끝낸 하마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정미선을 찾았다.

정미선은 식자재를 빨리 구입할 방법이 있다면서 구입목록을 불러달라는 말에 거래처와의 거래내역이 기재되어 있는 장부를 가져왔다.

"부 셰프님, 여기 있는 것들만 있으면 됩니까?"

"그렇기는 한데 하마연씨가 그것들을 어떻게 구입한다는 거지?"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은 연락부터 하겠습니다."

거래 장부를 통해 세세한 목록을 확보한 하마는 그 내용을 곧장 노영필에게 전달했고, 노영필은 그 내용을 다시 각 조직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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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OB파와 하부 조직에는 난데없는 비상이 걸렸다.

노영필의 급한 연락을 받은 그들은 최대한 빨리 그것들을 구입하라는 말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시장이며 마트로 뿔뿔이 흩어졌다.

참고로 노영필은 조폭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행동대에만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 건설과 금융을 비롯해서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각 사업장에도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어서 서울만이 아니라 수도권 전역과 지방의 조직에도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덕분에 신성 OB파와 산하의 하부조직원 수백 명은 시장과 마트 매장을 돌며 각종 식자재를 구입했고, 구입하는 대로 가온누리로 몰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시죠?"

"유병만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급히 필요하다해서 가져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각종 해산물을 가져왔는데 어디다 두면 됩니까?"

"누구세요?"

"유병만 회장님 지시로 가져왔습니다."

"실례합니다. 야채를 가져왔는데 어디다 둘까요?"

"이쪽입니다."

갑작스레 수많은 사람들이 식자재를 갖고 들이닥치자 당황한 지훈은 영문을 몰라서 황당해했다.

그사이 사정을 알고 있는 하마가 나서서 그것들을 주방의 한쪽 구석에 쌓게 했다.

때마침 노영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때였다.

"여보세요."

-나요, 이 사장.

"노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사장, 식자재들은 도착하고 있소?

"도착하고 있습니다."

-혹시 빠진 것이 있으면 얘기하시오. 한국에 있는 것들이라면 어디가 되었든 무조건 구해다 주겠소.

"식자재가 속속 도착해서 빠진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식자재를 보내오신 것입니까?"

-내가 가온누리의 일을 모르는 게 어디 있겠소? 그보다 내가 주제넘게 나섰다면 순수한 마음에서 그리 한 것이니 날 타박하지는 마시오.

"아닙니다. 식자재 공급이 돌연 중단되었다는 말에 눈앞이 깜깜했는데 노 사장님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사장은 우리 회장님을 구했는데 그런 소리 마시오. 다행히 급한 불은 껐다고 하니 회장님에게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얘기를 전해드려야겠소.

"노 사장님, 유 회장님께도 감사하다는 얘기를 꼭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오늘의 은혜는 다음번에 꼭 갚겠다고 하십시오."

-은혜를 꼭 갚겠다니 혹시 다음번에는 어마어마한 요리가 올라오는 것 아니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요리밖에 더 있습니까?"

-하하하~! 회장님께 이 사장의 얘기를 꼭 전하겠소. 아마 회장님도 큰 기대를 할 것이오.

"아무튼 오늘 일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사장, 또 그 소리요? 회장님이 섭섭하게 생각하실지 모르니 나중에라도 그런 말은 마시오. 회장님은 당신이 이 사장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매우 흡족해하실 것이오. 그런데 새 거래처는 구했소?"

"지인들 소개로 괜찮은 거래처를 구했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서는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오?

"그리 될 것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얘기하시오. 내가 나서서 새로운 거래처를 알아보겠소.

"아닙니다. 다들 믿을만한 사람들이 소개해준 거래처라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노영필과 통화를 하는 도중에도 식자재는 계속해서 당도했고 신이 난 셰프들은 평소보다는 잰 몸놀림으로 식자재를 다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노영필과 통화를 끝낸 지훈은 정미선에게 박성훈의 일을 물었다.

"박 부셰프에게는 돌아오라는 연락을 아까 했습니다. 아마 조금 있으면 당도할 것입니다."

"많이 늦었는데 우리도 시작해야죠."

"그래야죠. 그런데 식자재 대금은 어떻게 해야죠?"

"당연히 드려야죠. 그분들이 달라는 대로 지급하세요."

"그게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요?"

"돈을 드리려고 하는데 다들 한사코 거부하고 그냥 가고 있습니다."

"돈을 안 받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은혜를 갚는데 무슨 돈이냐면서, 만약 돈을 받았다가는 자신들이 곤경에 처한다면서 내빼듯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제가 가보지요."

지훈도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이 갔다.

그러나 식자재를 가져다주는 것도 고마운데 공짜로 받을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영필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 식자재를 가져온 자들은 기를 쓰고 돈을 거부하며 떠나갔고, 끝내는 지훈도 대금을 지급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점심 준비 때문에도 마냥 그 일에 매달릴 수는 없어서 요리에 들어갔다.

그 시각, 하마는 노영필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아무런 통보도 없이 거래를 중단한 거래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노 사장님, 그 거래처들을 손보실 생각이십니까?"

-이 사장에게 곤경을 안겨다 줬는데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이 사장님이 그 사실을 알면 되레 안 좋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에게 묻는 것이다.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시는 거죠?"

-문제가 안 생기는 선에서 적당히 교육만 시킬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상도의를 어긴 거래처를 혼줄 내고 싶은 것은 하마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기존의 거래처를 노영필에게 알려주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도어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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